악당들 3 :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빌런

스크린 밖에서 더 자주 마주치는 얼굴들

by 캔디의 여백

영화 속 빌런을 오래 보다 보면 알게 된다.

영화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
기어이 따라붙는 빌런이 있다.

극장에서 소리 지르던 놈은 금방 잊힌다.
크게 웃던 놈도,
크게 울부짖던 놈도 그렇다.
말없이 조용히 따라오는 놈이 오래 남는다.

진짜 무서운 빌런은
스크린 안이 아니라 돌아오는 길목에서 보인다.

빌런을 오래 보다 보니 알겠다.
무서움에도 얼굴이 있다.

어떤 빌런은 웃는다.
화를 내지 않는다.
화내는 빌런은 차라리 덜 무섭다.
속이 다 보이니까.

웃는 빌런은 속을 보여주지 않는다.
웃으면서 선을 넘고,
웃으면서 칼을 꽂는다.
맞는 쪽은 비명도 못 지른다.
그 웃음은 영화가 끝나고도 오래 시리다.

어떤 빌런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다.
나쁜 짓을 하면서도 그게 정의라 믿는다.
명분이 있고,
논리가 있고,
따르는 사람도 있다.

이 빌런은 자기를 빌런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멈추지 않는다.
악을 악이라 부르는 자보다

악을 선이라 우기는 자가 훨씬 더 무섭다.

어떤 빌런은 아무 말이 없다.
때리지도 않는다.
대놓고 선을 넘지도 않는다.
다만 옆에 서 있다.
다 보면서,
못 본 척한다.

카메라는 이런 얼굴을 오래 비추지 않는다.
주인공과 별 상관없는 얼굴처럼
대수롭지 않게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혼자 돌아오는 길에
이상하게 떠오르는 건 늘 이 얼굴이다.

영화 밖도 그렇다.
나를 때린 사람보다

나를 외면하며 돌아선 사람이 더 오래 남는다.

그리고 어떤 빌런은 낯익다.
얼굴이 아니라 태도가 그렇다.
잘 들여다보면
내 침묵에도,
내 말투에도,

그 그림자가 조금씩 묻어 있다.

돌아선 사람들 사이에
내 얼굴도 있었다.

그래서 미워하다가도
끝내 다 미워하지는 못한다.
이 빌런은 밖에서만 오지 않는다.
내 말로도 오고,
내 침묵으로도 온다.

주먹은 이제 덜 무섭다.
사람들은 말로 사람이 무너지는 걸 봤다.
웃으면서 선을 넘는 것도 봤다.
옳다고 우기면서
누군가를 밟는 것도 봤다.

빌런이 세진 게 아니다.
영화 밖이 먼저 변했다.
영화는 그 뒤를 늦게 따라올 뿐이다.

그래도 영화는 끝이 있어서 견딘다.
크레딧이 올라가면
빌런은 사라지고,
영웅은 이긴다.

현실의 빌런에겐 크레딧이 없다.
사라지지 않는다.
현실은 엔딩이 없다.
다음 편이 아니라 내일이다.

그걸 알면서도 영화를 본다.
영화 속에서라도

져야 할 놈이 지는 걸
한 번 보고 싶어서.

두 시간 남짓.
그게 작은 위로다.

일요일 연재
이전 14화악당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