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들 2

닮지 않기 위한 하루의 저항

by 캔디의 여백

악당을 없앨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지치게 한다.
끝내 지지 않는 얼굴들.
잡히지 않는 말들.
사라지지 않는 구조들.

1부를 쓰고 나서 마음이 오래 가라앉아 있었다.
악을 또렷하게 본다는 건
내가 더 무력해진다는 뜻 같았다.

한동안 뉴스를 껐다.
켜면 속이 뒤집혔고
끄면 죄스러웠다.
보다가 멈추고
멈추다가 다시 보았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분노는 정직한 감정이다.
그 자리에서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 더 이상하다.
그런데 분노가 하루를 다 차지하면
사람은 먼저 닳는다.
악당에게 지는 방법 중 하나는
그를 미워하다가 내가 먼저 타버리는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악당이 제일 좋아하는 것도 바로 그 무력감이었다.
우리가 지치고
익숙해지고
어차피 안 된다고 손을 놓는 순간
그 자리가 비면
악이 들어와 앉는다.

그래서 나는
이기는 법을 쓰지 않으려 한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신 닮지 않는 법을 적어두려 한다.
그건 아직 내 선택이다.

내 말이 칼이 되지 않게 하는 일.
내 확신이 면죄부가 되지 않게 하는 일.
사람을 숫자로 바꾸지 않는 일.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 일.
한 사람의 얼굴을 끝까지 지우지 않는 일.

전쟁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시위를 한다고 폭탄이 멈추지 않고
글을 쓴다고 오늘 밤 누군가의 죽음이 취소되지 않는다.
그 사실은 사람을 작게 만든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조금이라도 하는 것은 같지 않다.

시위는 몸의 말이다.
나는 이것을 정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말.

글쓰기는 마음의 말이다.
나는 이것을 잊지 않겠다는 말.

악당은 사람들이 잊기를 기다린다.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고
흐려지면 결국 없던 일처럼 지나간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기억하는 것이 저항이다.
속상하다고 말하는 것이 저항이다.
이건 잘못되었다고 끝까지 말하는 것이 저항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악당 옆에서 악당을 닮지 않는 일이 남아 있다.

잔인함 앞에서 나까지 잔인해지지 않는 것.
거짓 앞에서 나까지 비열해지지 않는 것.
지쳐도 마지막 따뜻함을 꺼뜨리지 않는 것.
약한 사람을 빨리 정리하지 않는 것.

이게 무슨 싸움인가 싶을 때가 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만 자꾸 작아지는 것 같아서.

그런데 바로 그때 생각한다.
저쪽이 가장 바라는 것도
이쪽 사람들이 결국 저쪽을 닮아 가는 일이라는 것을.

그러니 닮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한 칸의 저항이다.

크지 않아도 된다.
오늘 하루치면 된다.
내일은 또 내일치 한 칸을 살면 된다.

영화 속 영웅은 화려하게 싸운다.
현실의 영웅은 조용히 버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하루를 지키는 사람.
손해를 알면서도 끝내 한 조각을 내어놓는 사람.
세상이 차가워져도 완전히 굳어지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악당에게 다 넘겨주지 않고 있다.

악당의 얼굴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그 얼굴을 닮지 않는 쪽에 남는다.
작고 조용하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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