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남겨진 형태들
매일 마주하는 거리의 표지판이나 핸드폰 속의 작은 아이콘들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무심코 지나치던 그 단순한 형상들이 언제부터 그런 모습으로 존재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형태들은 어느 한순간의 우연이나 단절된 발상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시선을 통과하며 다듬어지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우리 곁에 머문 기억의 지층에 가깝다.
어쩌면 인류는 매번 새로운 것을 만들어 온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익숙한 형상을 지키기 위해 분투해 왔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장소가 바뀌어도 손에 쥔 토기의 곡선, 대지를 딛고 선 건물의 비례, 그림 속 인물의 자세와 시선은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이 다시 나타나고, 그 형상은 끊어질 듯 집요하게 이어졌다. 이 반복은 거창한 선언이나 규칙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다만 어떤 형태는 살아남았고, 어떤 형태는 조용히 사라졌을 뿐이다. 사람들은 눈에 익은 모습을 거듭 선택했고, 그렇게 남겨진 형상들은 다음 세대가 무엇인가를 빚어낼 때 보이지 않는 기준이 되었다.
디자인이 지향하는 지점도 이 지연된 변화의 흐름 위에 놓여 있다. 무조건 낯선 새로움을 쫓기보다, 사람들이 수천 년간 쌓아온 감각의 층위 위에 조심스럽게 한 겹을 보태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처음 마주하는 대상 앞에서도 우리가 당황하지 않고 그것의 쓰임을 알아채는 이유는, 그 형태 안에 이미 수많은 '기억의 약속'들이 깃들어 있어서다. 역사 속에서 끈질기게 반복해 온 형상들은 결국 인류가 언어 이전에 공유해 온 가장 오래된 소통의 뼈대였다.
블루투스(Bluetooth)로고는 북유럽을 통일한 왕, 하랄드 블로탄(Harald Blåtand)의 이름 초성을 고대 룬 문자로 결합한 형태다. 흩어진 부족을 하나로 묶었던 그의 업적은, 수천 년 뒤 서로 다른 기기를 무선으로 잇는 첨단 기술의 상징이 되었다. 거친 돌 위에 새겨졌던 고대의 문자가 디지털 속으로 스며들어, '연결'이라는 본질을 변함없이 증명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벽화는 이러한 반복이 얼마나 단단한 생명력을 지녔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사카라(Saqqara)의 무덤이나 네바문(Nebamun) 묘실에 남긴 인물들은 서로 다른 장면 속에서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닮아 있다. 얼굴은 옆을 향하되 눈은 정면을 응시하고, 어깨는 평평하게 펼친 채 다리는 다시 옆으로 흐르는 특유의 방식. 이 부자연스러운 조화는 어느 한 화가의 개인적인 취향이 아니라 시대를 투영하는 하나의 질서였다. 인간의 신체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각도들을 수집해 하나의 평면에 압축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코는 옆모습일 때 가장 선명하고, 눈과 어깨는 정면일 때 그 특징이 명확히 드러난다. 이집트인들에게 조형이란 눈에 보이는 찰나의 기록이 아니라, 그 대상이 가진 본질적인 정보를 오차 없이 전달하려는 설계였다. 왕조가 바뀌고 붓을 든 이가 달라져도 이 형태가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다. 그들은 대상을 누군가와 '닮게' 묘사하기보다, 그가 '누구인지'를 즉각적으로 알아챌 수 있게 만드는 본질에 집중했다.
불필요한 장식은 덜어내고 약속된 질서를 따랐던 이 오래된 방식은, 수천 년 뒤 피카소가 대상을 여러 시점에서 해체하고 하나의 평면 위에 다시 조합하며 사물의 실체에 다가가려 했던 시도와도 맥을 같이한다. 이렇게 찰나의 눈속임인 원근법을 거부하고 대상의 명확한 정보를 한눈에 담아내고자 했던 이집트인의 고집이, 입체파의 실험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중세의 종교화에서도 이 익숙한 재회는 반복된다. 시대를 지나며 그림에 기록된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Christ Pantocrator)'의 얼굴은 수많은 지역과 세월을 건너오면서도 변함없는 인상을 전한다. 정면을 응시하는 시선, 축복을 내리는 오른손의 제스처, 왼손에 든 복음서. 이 도상들은 새로운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보는 이가 그 의미를 단번에 알아챌 수 있게 오래도록 약속된 모습으로 머물 뿐이다. 이처럼 그림 속 예수의 조형은 개인의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모두가 공유하는 의미를 지키는 쪽을 택했다.
가문이나 도시를 상징하는 중세의 문장(Heraldry) 또한 마찬가지다. 색채와 형태를 엄격하게 규정한 사자와 독수리, 방패의 윤곽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전장에서도,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도 한눈에 식별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반복된 형태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빠른 언어가 되었다. 이러한 형상은 질문을 던지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의미를 선명하게 상기시켰고, 덕분에 사람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도 이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시간의 여과기를 거치며 어떤 모습은 계속 자리를 지켰고, 어떤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다.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여러 번 사용하고 수많은 이가 이해한 모습들이 시간의 결을 따라 자연스러운 질서로 남았다.
포르쉐의 엠블럼은 중세 독일 뷔르템베르크 왕국의 국장과 슈투트가르트 시의 권위를 증명하던 문장을 정교하게 결합한 형태다. 전쟁터에서 적과 아군을 식별하던 방패 위의 문장은, 이제 도로 위에서 브랜드의 혈통을 증명하는 강력한 기호가 되었다(좌). 스마트폰이나 모니터 하단에서 흔히 마주하는 방패 모양의 보안 아이콘도 중세의 형상을 그대로 계승한다(우).
디자인은 이 질서를 빌려와 우리 곁에 익숙한 풍경을 만든다. 비상구 표지판의 달리는 사람 형상이나 스마트폰 속 작은 아이콘들이 수천 년 전의 흔적과 묘하게 닮아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보를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디자인은 복잡한 세상을 단순한 기호로 정제하고, 낯선 세상을 이미 아는 기호로 바꾸어 놓으며 우리를 안심시킨다. 화려한 변주보다 강력한 힘은 ‘이미 알고 있다’라는 익숙함에서 나온다. 결국 형태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현상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정체가 아니라, 시대의 파도 속에서도 본질적인 의미가 흩어지지 않도록 형상을 단단히 붙잡아 두려는 '지속의 미학'이다. 그 기나긴 여과와 선택의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든 반복된 형상들은, 이제 별다른 설명이나 해석 없이도 모두가 단번에 읽어낼 수 있는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질서가 되었다.
우리는 매일 가장 세련된 모습으로 정돈된 디자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듯하지만, 어쩌면 그 정교한 마감 안에서 수천 년 전 어느 이름 모를 누군가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빚어냈던 그 견고한 약속을, 그리고 쉽게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적인 감각을 다시금 확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