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숙의 『1914년』(현대문학, 2018)을 읽다
나의 생년월일입니다.
나는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서
죽은 친구들을 많이 가진 사람입니다.
죽은 친구들이 나를 홀로 21세기에 남겨두고 떠난 게 아니라
죽은 친구들을 내가 멀리 떠나온 것같이 느껴집니다.
오늘은 이 세상 끝까지 떠밀려 온 것같이
2014년 4월 16일입니다.
_김행숙의 「1914년 4월 16일」
김행숙의 「1914년 4월 16일」 전문입니다.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1914년』에 첫 번째 작품으로 실려 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에 우리는 어린 수백 목숨이 산 채로 수장되는 것을 충격 속에서 보았습니다.
시란 무엇일까요. “죽은 친구들”을 기억하면서 죽음으로부터 “멀리 떠나온 것”이죠.
죽음을 잊지 않으면서, 그러나 죽지 않는 방식으로, 죽음에 굴복하지 않고 한 세기 동안 생명의 메시지를 계속 발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친구들이 나를 떠난 게 아니라 내가 친구들을 멀리 떠난 것 같다는 미안함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나는 “죽은 친구들”을 도무지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죽음을 잊지 않겠다, 살아서 끝내 기억하겠다는 걸까요. ‘4월 16일’입니다. 바다 밑에서 죽음을 견디면서 아직도 생명의 신호를 보내는 ‘친구들’이죠.
그날, “이 세상 끝까지 떠밀려 온 것” 같은 느낌 속에서 시인은 다시 태어났습니다. 아마 시도 마찬가지겠죠.
이 시가 시집 첫머리에 서시로 놓인 것은 이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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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에 속합니다. 오은, 임승유, 이원, 강성은, 김기택 등 한국시의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시인들이 이 시인선에 시의 집을 마련했습니다. 시집 표지가 너무나 아름답네요.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화가 지니 서의 작품이랍니다. 시와 미술의 만남은 예전에는 자주 있었는데, 최근에 와서 드물어졌죠. 한국 시의 미래와 한국 미술의 미래가 만난 듯한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