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시집 『i에게』(아침달, 2018)를 읽다
“밥만 먹어도 내가 참 모질다고 느껴진다 너는 어떠니.”(「i에게」)
김소연의 여섯 번째 시집 『i에게』(아침달, 2018)의 표제시 중 한 구절입니다. 이 소문자 i는 과연 누구일까요. 왜 대문자 I로 당당히 있지 못하고,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의 실루엣처럼 소문자로 서 있을까요.
소문자 i는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 가장 거대한 흉터라는 걸 알아챈”(「편백나무」) 존재이고, “모든 게 끔찍한”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경배」) 존재입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돌이 말할 때까지」)처럼 느껴지기에, 세계와 어울리지 못하고 자꾸 웅크립니다.
i는 가혹한 이별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마른 뿌리를 흙에 파”묻힌 채 “나무의 본분대로”(「i에게」) 서 있는 형식으로, 즉 죽음의 형태로 버려졌으면 좋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채로 버려졌기에 그/그녀는 “웅크림”으로 지은 집, 즉 “우는 돌”(「i에게」)이 되었죠. 이별이 비로소 적합한 언어의 형식을 얻었네요.
숨 쉬는 죽음, 움직이는 정지, 걷는 멈춤 등으로 이어갈 수도 있겠습니다. 역(逆)의 합일, 엘리아데에 따르면 이것이 성스러움의 정체이고, 동시에 삶에서 시가 일어서는 장면이죠.
연인과의 이별이 실은 나와의 이별이기도 한 걸 알아차리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별할 때도 ‘나’는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나와의 이별은 나를 시적 주체로 만듭니다. 일상의 I를 무너뜨리고, 시적 i를 일으키죠.
자신을 낯설게 느끼는 존재는 누구나 시인이 아닐까요. 자신이 “밥만 먹어도” “모질다고 느껴”지면,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매일매일 일어”나면, 이 사람은 아마 시인이겠죠. 화자는 묻습니다.
“요즘도 너는 너하고 서먹하게 지내니.”
예, 하고 답하신다면, 당신은 시인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