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에 새겨진 오각형의 별빛

by 양종이

맞지않는 퍼즐 : 2, 3, 4, 6의 질서와 ‘금지된’ 5
평면을 빈틈없이 채우는 테셀레이션(Tessellation)의 세계에서 도형은 오직 두 가지 운명으로 나뉜다. 질서에 순응하거나, 혹은 질서를 거부하거나.
삼각형, 사각형, 육각형은 '복사'와 '붙여넣기'만으로 무한한 평면을 완벽하게 채운다. 이를 병진 대칭(Translational Symmetry)이라 하며, 결정학적으로 안정된 격자 구조를 이룬다.

반면 오각형은 평면 채우기의 규칙을 위반한다. 오각형의 타일을 이어 붙이는 순간, 균열이 발생한다. 정오각형의 한 내각은 108도로, 세 개를 모으면 324도가 되어 36도의 빈틈이 생기고 네 개를 모으면 432도가 되어 서로 겹쳐버린다. 결국 오각형은 격자(Grid)라는 강요된 질서와 결코 조화를 이룰 수 없다.

수학자들은 이를 '결정학적 제한 정리'라 부르며, 5중 대칭을 평면 도배가 불가능한 '금지된 구역'으로 규정했다. 우주의 격자 속에 완벽히 녹아들 수 있는 숫자는 오직 2, 3, 4, 6뿐이며, 5각형은 반복되는 규칙 속에서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남는 듯했다.
하지만 우주는 이 '불가능함'을 즐기듯 새로운 길을 열어두었다. 반복되지 않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준결정(Quasicrystal)'의 세계를 오각형을 통해 창조해냈기 때문이다. 오각형은 뻔한 반복 속에 있기를 거부하고, 비주기적이고 독특한 구조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우리가 '맞지 않는 퍼즐'이라 부르며 포기하려 했던 그 틈새와 엉킨 선들 사이에, 이해하지 못했던 고차원의 질서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이 금지된 대칭이 어떻게 엔트로피를 이겨내고 가장 정교한 질서의 무늬이 되었는지 강연을 통해 알아보자


금지된 5중 대칭으로 무한을 정복하는 법

(낡은 영사기의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강의실을 채운다. 펜로즈 경이 손때 묻은 OHP 필름 한 장을 꺼내 기기 위에 올린다. 강렬한 빛이 필름을 투과하며 스크린 위에 기하학적 형상을 투영한다. 그는 안경 너머로 청중을 바라보며 나직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입을 뗀다.)

"자, 여러분. 이 스크린 속 패턴을 한번 보시죠. 아주 묘하지 않습니까? 분명히 강한 규칙성이 느껴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네 종류의 모양이 절묘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오각형의 대칭이 보이고, 또 다른 곳에서는 평행한 질서가 느껴지기도 하죠. 이제 제가 이 '금지된 5중 대칭'을 이용해 어떻게 평면을 무한히 채우는지, 그 마법 같은 과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주 단순한 발상에서 시작합니다.”

1단계: 확대하고, 쪼개고 (Blow up & Subdivide)

"먼저 커다란 정오각형 하나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이 안에 여섯 개의 작은 정오각형을 집어넣어 보죠. 그러면 완벽하게 메워지지 않고 미세한 '틈'들이 생깁니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 없습니다. 여기서 제가 할 일은 간단합니다. 안에 들어있는 작은 오각형 하나를 원래 커다란 오각형만큼 다시 확대(Blow up)하고, 그 안을 또 다시 더 작은 오각형들로 세분화(Subdivide)하는 것입니다."

2단계: 틈새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모양

"이 과정을 반복하면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작은 틈들이 서로 합쳐지면서 마름모 모양의 구멍이 생기고, 이 마름모들은 다시 뾰족한 가시 모양으로 자라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뾰족한 공간 안에 오각형 하나를 더 쏙 집어넣을 수 있는 기막힌 공간이 생겨나죠!

계층이 올라갈수록 이 뾰족한 부분들은 점점 자라나 '광대 모자(Jester)'라 불리는 독특한 형태가 됩니다. 결국 우리 앞에는 오각형, 별, 마름모, 그리고 광대 모자들이 어우러진 화려한 기하학적 군단이 나타나게 됩니다. 질서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던 아웃사이더들이 모여, 세상에 없던 거대한 하모니를 이루는 셈입니다."


3단계: 무한을 향한 신중한 선택

"확대하고, 채우고, 다시 확대하고... (Blow it up, Fill it up and that will end up) 이 과정을 반복하면 이론적으로 평면을 영원히 덮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아주 미묘하고 조심스러운 '선택'이 필요합니다.

패턴을 확장하다 보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중앙의 마름모를 기준으로 무늬가 반사될 때, 위(Top)에 있으면 위(Top)에 있어야 하고, 아래(Bottom)에 있으면 아래(Bottom)에 있어야 합니다. 이 대칭의 규칙을 단 한 번이라도 틀리면, 다음 단계에서 패턴이 서로 충돌하며 전체 구조가 무너져 버립니다. 하지만 이 규칙만 지킨다면? 이 패턴은 영원히, 우주 끝까지 뻗어 나갈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여기 큰 오각형이 있습니다. 이 거대한 오각형을 아까 설명해 드린 방식대로 다시 쪼개보는 겁니다. 자, 갑니다. 한 번 더 쪼개볼까요? 자, 보십시오. 그리고 한 번 더...!

(그는 투명한 필름을 한 장씩 추가하여 겹친다.)

여기서 잠깐. 방금 우리가 쪼개기 시작했던 그 '큰 오각형'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시나요? 분명 제가 방금 여러분 앞에 보여드렸는데, 패턴이 완성되고 나니 그 경계가 감쪽같이 사라졌군요. 사실 저도 지금 그게 어디 있는지 한눈에 찾기가 어렵네요. 찾으려면 찾겠지만... 음, 굳이 시도하진 않겠습니다."

(그는 가벼운 농담에 섞인 미소를 지으며 청중을 돌아본다)


4단계: 단 두 조각의 변주-뚱뚱한 마름모와 날씬한 마름모

“우리가 방금 수행한 '무한한 쪼개기'의 역사, 즉 거대한 계층 구조가 언제나 이 속에 숨어 있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오각형을 쪼개고 확대하며 복잡한 계층을 쌓아왔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화려한 무대 장치를 걷어내면 무엇이 남을까요? 놀랍게도 그 본질은 단 두 개의 조각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뚱뚱한 마름모'와 '날씬한 마름모'입니다. 각도는 각각 72도와 36도죠. 이 두 마름모의 넓이 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네, 바로 황금비입니다. 이 단순한 두 조각만 있으면, 아까 보셨던 끝없는 우주의 미로를 전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하학이 부리는 마법입니다. 우리는 오각형이라는 복잡한 퍼즐 조각을 깎고 다듬어, 가장 순수한 형태인 이 두 마름모를 얻어냈습니다. 이들을 이어 붙이면 때로는 별이 되고, 때로는 꽃이 됩니다. 이 두 조각은 서로의 틈을 완벽하게 메우며 영원히 뻗어 나갑니다. 물론 아무렇게나 붙여서는 안 됩니다. 조각의 변마다 정해진 규칙, 즉 서로가 서로를 허락하는 특정한 '결'이 있어야 하죠. 그 결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우리는 반복되지 않으면서도 완벽한 질서를 갖춘, 이 세상에 없던 평면을 마주하게 됩니다."


5단계: 마름모(Rhombus) 사이에서 솟아오르는 결

(영사기 위의 필름을 천천히 교체한다. 스크린 속의 작은 마름모들이 살아 움직이듯 증식하며, 작은 ‘오각형’에서 거대한 ‘십각형’으로, 다시 거대한 ‘원형’의 바다로 무한히 줌아웃(Zoom-out)된다..)

(그는 이제 마지막 필름을 마름모 패턴을 가져와 위에 겹쳐 올립니다. 그러자 딱딱한 마름모 위로 타일들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신비로운 곡선들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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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이 무한한 확장 속에 숨겨진 진짜 '결'을 보여드리죠. 여기 갈색의 날씬한 마름모와 뚱뚱한 마름모 안을 자세히 보십시오. 날씬한 녀석 안에는 두 개의 작은 원형 호(Arc)가, 뚱뚱한 녀석 안에도 두 개의 원형 호가 그려져 있습니다. 타일 어디를 보아도 이 규칙은 동일합니다. 이렇게 표시된 두 종류의 마름모 타일만 있으면 됩니다. 이제 여러분은 마법을 보게 됩니다. 각 타일의 경계를 넘어 이어지는 녹색 원형 선들을 보세요. 원형 패턴이 마름모 사이를 가르며 솟아오르는(coming out)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타일은 각자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이 선들이 그들을 하나의 거대한 질서로 묶어주고 있습니다.”

“이 사진은 옥스퍼드 옛 수학 건물 앞에 깔린 이 타일입니다. 단단한 화강암으로 빚어낸 이 패턴 위로, 우리가 방금 본 그 곡선들이 스테인리스강으로 정교하게 상감(Inlay)되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타일이 날씨에 따라 표정을 바꾼다는 점입니다. 화창한 날에는 은빛 스테인리스가 태양 빛을 반사하며 빛나고, 비가 내리는 날에는 젖은 화강암의 어두운 빛깔과 어우러져 한층 깊고 고요한 은빛 무늬를 드러내죠."


강연 마무리: 질서 너머의 질서

"결국 오각형은 아웃사이더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우리에게 '질서란 반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가르쳐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죠. 우주는 2, 3, 4, 6이라는 뻔한 숫자 뒤에 이 '금지된 5'를 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고정관념이라는 격자를 부수고 나왔을 때, 비로소 이 아름다운 무늬를 허락해주었죠. 질서는 때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리고 반복되지 않는 선율 속에서 가장 완벽하게 완성되는 법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 오각형의 씨앗 하나가 심어졌기를 바랍니다."

(영사기의 전원이 꺼지고 여기까지 매혹적인 강연이 막을 내렸습니다.)


타일링이 우주에 던지는 질문

이 마법 같은 테셀레이션은 초기 우주의 탄생 원리와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 아주 작은 오각형 안을 쪼개고 다시 확대하여 무한한 평면을 채워 나가듯, 우리 우주 역시 태초의 미세한 에너지 요동을 확대하고 세분화하며 지금의 거대한 구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현대 우주론이 설명하는 '급팽창(Inflation)'은 펜로즈가 보여준 '확대(Blowing up)'의 과정과 닮아 있다. 찰나의 순간에 우주가 비약적으로 커지며 그 안에서 물질이 응집되고 별과 은하가 탄생하는 모습은, 타일링의 '세분화(Subdividing)' 과정과 닮아 있다. 결국 무한히 확장되는 질서란, 아주 작은 씨앗 속에 담긴 규칙이 전체로 퍼져나가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우주라는 광활한 캔버스 위에 펼쳐진 이 끝없는 무늬는, 사실 초기 우주의 미세한 떨림이라는 단 한 조각의 퍼즐이 만들어낸 인과의 물결이다. 우리는 펜로즈의 타일 속에서,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질서가 어떻게 우주 끝까지 뻗어 나가는 거대한 실체가 되는지를 목격할 수 있었다.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극한의 경계에서 피어날 테셀레이션
이제 이 질서의 추적을 우주의 가장 극단적인 경계로 옮겨보려 한다. 우주에서 가장 곧게 뻗어 나가는 '직선'인 빛조차 블랙홀의 지평선 근처에서는 원형으로 궤도를 그리거나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곡선'이 된다. 즉, 직선(빛의 본성)이 곡선(중력의 영향)으로 강제 전환되는 경계가 바로 사건의 지평선이다. 다음 편에서는 직선과 곡선이 만나는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에서 테셀레이션을 시도할 것이다.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근처는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돋보기와 같다. 그곳의 뒤틀린 시공간은 지평선 부근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사건들을 거대하게 확대하고,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 속에 우리의 관측 장비로 현상을 노출시킨다. 우리가 블랙홀 근처에서 '진공 요동'이라는 유령의 장난을 목격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치 끓는 물의 표면처럼 들끓는 이 미세한 동요는 평소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블랙홀의 거대한 중력 곡률은 이 보이지 않던 틈을 선명하게 확대한다. 찰나의 ‘가상 입자’를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실제 입자'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제 이 극한의 경계 위에서, 입자들이 빚어내는 새로운 테셀레이션을 이어가 보려 한다.


엔딩 크레딧. ‘블랙홀을 만지는 아이’
역사를 가장 좋아하고, 그다음으로 SCP 재단, 백룸(Backrooms), 요괴 등 미스터리와 위험, 그리고 멸종이라는 키워드에 탐닉하는 아이, '떠종이'의 책장은 늘 분주하다. 어린 시절 가장 먼저 마음을 빼앗겼던 자동차와 공룡 시대를 거쳐, 아이는 성장하며 점차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의 세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책장 왼쪽에는 《어린 왕자》부터 《노인과 바다》까지 엄마와 함께 완독한 기록들이 훈장처럼 꽂혀 있다.

순수한 진공처럼 늘 예측 불가능한 질문을 던지는 떠종이. 평소 보이지 않는 것들, 혹은 정답을 숨긴 채 낚시 미끼를 던지듯 엄마에게 수수께끼를 던지는 것이 아이의 주특기다. 오늘도 떠종이는 엄마가 있는 곳으로 달려와 우주에서 가장 강력하고 기묘한 존재, 블랙홀의 ‘촉감’에 대해 묻는다.

“엄마, 블랙홀을 직접 만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왠지 꾹 누르면 들어갈 것 같아.”

지금까지 블랙홀의 엄청난 중력과 사건의 지평선에 대해서는 수없이 대화했지만, ‘촉감’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감각적인 접근은 생소했다. 하지만 그 순간, 흥미로운 기억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바로 브라이언 콕스의 저서에서 읽었던 ‘블랙홀 간지럽히기’ 이야기였다.

우리가 만지는 모든 실체는 사실 보이지 않는 ‘양자 진공(Quantum Vacuum)’의 미세한 떨림에서 비롯된다는 놀라운 통찰. 그 연결고리를 찾아내기 위해 다시 한번 우주의 엔진룸이 있는 지평선 가까이로 안내한다. 그곳에서 가상 입자와 실제 입자가 교차하는 순간을 포착하며, 새로운 테셀레이션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과연 블랙홀이라는 절벽 위에서 새롭게 피어날 질서도, 저 오각형의 조각들처럼 눈부신 별빛의 무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차갑게 얼어붙은 기하학의 구조 속에서, 우주를 움직이는 뜨거운 힘이 솟아오를 수 있을까.


참고자료.
펜로즈 테셀레이션 강의 캡쳐 강의내용/그림자료 발췌 인용 재구성
https://youtu.be/th3YMEamzmw?si=5cZO1HReNZJotLj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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