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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ttee Jun 12. 2020

이사 3일 전

지금 우리 집은 더럽다. 


화장실 바닥 줄눈에는 다시 물때가 끼기 시작했고, 주방 바닥은 얼룩이 져있고, 현관 앞에는 버릴지 말지 고민 중인 온갖 물건들이 너저분하게 늘어져있다. 이사가 한 달쯤 남았을 때부터, 왠지 청소하기가 싫었다. 참고 참다 '이게 이 집에서의 마지막 청소다!'라고 결심을 하고 화장실과 방 물걸레 청소를 겨우 했을 정도이다. 그 후로는 또다시 애써 외면하다 도저히 안될 때쯤 물티슈 한 장을 뽑아 거슬리는 부분만 슥슥 닦기를 반복 중이다. 지난 주말에는 에어컨까지 팔아버려 더러움에 더움까지 합쳐져 더욱 머물고 싶지 않은 집이 되어 가고 있다. 


이번 주부터는 본격적인 이사 준비로 하루에 한 방을 하나 정해 모든 물건을 뒤집어 꺼내고 있다. 원래 목표는 버리고 갈 것만 추려내어 짐 싸기 쉽게 정리해 놓는 것이었는데, 하다 보면 정리 욕심이 올라와 유튜브 정리 달인의 영상을 찾아보며 따라 하다가 계속 시간이 모자라고 만다. 예를 들어, 옷 정리에 관한 유튜브를 찾아보다 우연히 발견한 쇼핑백 활용법을 보고는 신이 나서 모든 옷들을 다시 예쁘게 접어 쇼핑백 바구니 속에 쏙쏙 집어넣는다. 세탁소 옷걸이를 활용한 아이 옷 걸기, 올바른 패딩 보관법에 따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나는 쉬지 않고 열심히 정리한 것 같은데 방 한 칸의 반도 못 끝낸 채 찝찝한 마음으로 아이를 데리러 간다. 


이렇게 이사 짐 정리라도 하는 나는 그나마 양반이다. 원래 자기의 신념대로 물건들을 널어놓는 것을 정리라고 생각하는 남편은 이삿날이 다가올수록 그 정도가 심각해져 가고 있다. 남편의 신념에 따라 식탁에 올려놓는 검토 중인 각종 종이 (고지서, 견적서, 설명서)들은 혼자서는 버틸 수 없을 만큼 높게 쌓여있고, 3년째 정리 중인 남편 방은 이제 발 뒤꿈치를 들고 빈 공간을 겨우 딛고 들어가야 티셔츠 한 장을 옷장에 넣고 나올 수 있다. 다행인 건 남편이 신념대로 모아 오고 있는 신문과 종이 쇼핑백이 너무 많아져 오래된 건 내가 슬쩍 버려도 눈치 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남편 물건을 맘껏 정리하고 내다 버리지 못하는 답답함을 내 물건과 아이 물건을 통해 해소하고 있다. 20대 중반부터 입었던 쌓아놓은 옷들을 이번에는 기어코 정리하고 말리라는 다짐으로 전투적으로 비워냈다. 10년의 세월이 녹아있는 옷들은 엄마이기 전, 주부이기 전의 나의 역사를 담고 있었다. 소개팅에 나갈 때 즐겨 입던 원피스, 첫 직장에서 교복처럼 입던 나의 첫 슬랙스,  입고 나갈 때마다 칭찬을 듣던 샤랄라 블라우스까지 이번에는 미련 없이 이별을 고했다. 옷에서 쏟아지는 10년의 기억까지 꽁꽁 봉지에 싸서 떠나보냈다. 반면 2년 반 밖에 안된 아이 옷들은 이걸 버려야 하나 말아야 계속 손에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혹시 아기 때 냄새가 나나 킁킁 냄새를 맡아보고, 아기한테 즐겨 입히던 옷은 그때 사진을 찾아보며 다시 보관 박스에 곱게 접어 넣었다. 아이와의 추억은 단 하나도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가 보다. 


대조적으로 새로 이사 갈 집은 하루가 다르게 빛을 발하고 있다. 남편과 나는 한 달 전부터 이틀에 한 번 꼴로 새집을 드나들며 줄눈 색상을 고르고, 주방 상판을 반짝반짝하게 코팅하고, 동전을 들고 다니며 벽면에 남아 있는 실리콘 흔적을 하나하나 긁어내고 있다. 마치 새로운 집에서는 모든 걸 완벽하게 시작해 내고 말겠다는 듯이 합심하여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새 집에 레일을 설치하고 그림 한 점을 걸었다. 노란 레몬이 바구니에 소복히 담겨있는 그림으로 내가 약 2주간 온/오프라인을 뒤져서 찾아낸 마음에 쏙 드는 그림이다.


임신할 때 이사와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인생의 휴직 기를 가져 본 지난 3년은 기쁨도 있었지만 마냥 즐겁지 만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그 시간은 내 인생의 그 어느 때 보다 집에 있던 시간이 많았기에 이 집에 대한 기억도 복잡 미묘하다. 부디 새 집에서는 좀 더 편한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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