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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ttee Aug 30. 2020

워킹맘에게 재택근무란

재택 근무+육아+집안일

육아 동지 워킹맘과의 점심 약속이 있던 금요일. 거의 일 년 동안 보지 못한 그녀에게 아이는 잘 자라는지, 회사 적응은 어땠는지, 새로운 팀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볼 것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담아 가며 점심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띠링~ 회사 PC에 카톡 알림이 떴다.


'J, 저희 재택 전환되어서 오늘 점심은 어렵겠죠?'

'네? 저희 재택이에요?'

'아 아직 공지 못 보셨구나! 저희 재택 한대요. 저희 팀은 지금 다 짐 싸서 집에 가는 중이에요'


서둘러 회사 인트라넷에 접속해 보니, 코로나 확진자 수 증가로 오늘부터 일주일간 재택으로 전환한다는 공지가 올라와있었다. 점심시간을 1시간도 채 남기지 않고.


칸막이 너머 사무실 안을 둘러보니, 짐을 챙기는 사람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하는 사람들, 짐을 잔뜩 들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사람들로 여느 때와는 다르게 부산스러운 풍경이었다. 우리 팀도 한 명 두 명 짐을 싸서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다들 설레는 표정이다. 나는 우리 팀 사람들이 다 퇴근하는 것을 보고, 그리고 할 일을 좀 더하고, 그리고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우리 재택 전환이래. 확진자가 많이 나와서... 나도 곧 아이 데리고 집으로 갈게'


그러고도 한 시간쯤 더 사무실에 있다가 노트북, 충전기, 각종 자료들을 챙겨 직장 어린이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일주일이었던 재택근무는 확진자 증가세가 심상치 않아 무기한 연장되었고, 그렇게 2주일째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아이를 계속 어린이집에 보내며 회사에서 반나절 정도 근무를 하고 일찍 하원 해서 같이 집에 올 계획이었다. 그렇게 하면 대충 중요한 업무는 오전에 회사에서 보고, 오후에는 집에서 개인 업무를 하며 아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확진자가 200명, 300명, 400명까지 늘어났고, 아이 어린이집 건물 근처에도 확진자들이 생기면서, 아이를 등원시키는 건 이기적인 엄마의 직무유기 같은 일이 되어 버렸다. 어린이 집에서도 '되도록 가정보육해주시길 바란다'는 공문이 하루 걸러 올라오고 있었다.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말귀를 알아듣고 의사소통이 되는 아이에게 반복해서 알려주었다.


'엄마가 컴퓨터로 일 두 번하고, 그다음에 준이랑 한 번 놀 거야. 그리고 다시 두 번 일하고 다시 준이랑 한 번 놀고. 알았지?'


처음에는 좀 알아듣고 내가 일 할 때는 혼자 노는 듯했다. 블록하고 놀다가, 내 옆에 앉아 자기도 뭔가를 끄적이다기, '엄마 이건 뭐야' 물어보다 혼자 스티커도 붙이며 놀았다. 그렇게 두 번 일하고 한 번 놀기가 자리 잡나 싶었다. 하지만 아직 세 돌도 되지 않은 아이에게 엄마가 내 눈앞에 있는데 나랑 놀아주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엄마 컴퓨터 다했어?'가 점점 잦아지더니, 급기야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엄마 일 그만해' 라며 울음을 터뜨린다.


두 번 일하고 한 번 놀아주는 와중에 난 삼시 세 끼 아이 밥도 챙겨야 하고, 간식도 줘야 하고, 아이 똥기저귀도 갈아줘야 한다. 점심을 먹고 나면 30분은 옆에 누워 낮잠도 재워야 한다. 가장 문제는 화상회의다. 업무 전화는  TV를 잠깐 보여주며 어떻게든 하겠는데 한 시간 이상 이어지는 화상회의는 도저히 무리다. 그래서 회의가 잡힌 날은 남편이 회사를 늦게 가던지 일찍 퇴근해서 아이를 커버한다. 회의와 업무가 많았던 지난주 초에는 결국 아이와 노트북을 싸들고 시댁으로 갔다. 3일 동안 머무르며 급한 일과 화상회의는 방에서 처리하고 일이 끝나면 바로 나와 아이와 시부모님과 시간을 보냈다.




속 사정을 잘 모르는 어른들은 네가 재택이라 얼마나 다행이냐며, 얼마나 좋은 회사를 다니고 있는지를 얘기하신다. 코로나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신속하게 재택 결정을 내리고, 이렇게 업무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우리 회사는 분명 좋은 회사이다. 하지만 나의 지난 2주를 돌아보면 재택근무란 아이가 옆에 있어도 마음 놓고 놀아줄 수도, 내 업무를 제대로 할 수도 없는, 더 어정쩡하고 어려운 과제이다. 반면, 워킹대디 우리 팀원은 재택근무 기간에 자기 서재에서 집중해서 일하고, 휴직 중인 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필요하면 강남 어느 카페에 미팅하러 나가는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부러운 사람 같으니라고...


내일은 또 회의가 잡혀 남편이 회사를 하루 쉬기로 했다. 이 마저도 미리 잡힌 미팅이라 남편과 조율 가능했던 것이지, 아니었으면 이번엔 40km 떨어진 친정으로 아이와 노트북을 바리바리 싸들고 갈 뻔했다.


코로나 시대의 뉴 노말이라는데, 왜 나에게는 노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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