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일하기 vs 소모하는 일하기
일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차곡차곡 역량을 쌓아가며 성장하는 일하기와, 자기가 갖고 있는 지식과 기술을 이용만 하는 소모적인 일하기. 이 중 어느 쪽에 가까운 방식으로 일을 하느냐에 따라 쌓이는 연차와 함께 내가 성장하는지, 아니면 점점 소모되어 밑천이 바닥나는지가 결정되는 것이다.
전자의 일하기는 당연히 열심히 일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열심히와 더불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전체의 그림에서 어떤 부분인지, 다른 일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 일에서 내가 꼭 체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름 단계로 가려면 이 일에서 어떤 것을 더 얹어야 하는지, 그 일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내려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잘 해내기 위해 내가 필요한 것들을, 그것이 관련 공부를 하는 일이든, 사람을 만나는 일이든,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늘리는 것이든, 하나하나 갖춰나간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방법이 맞는 것인지, 쓸데없는데 시간을 쓰고 있는지 의심이 드는 순간이 있고, 노력에 비해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원래 과정이란 다 그런 것이다. 그 시간이 일 년, 이년 지나면 내가 어느 순간 껑충 컸다는 것을 느끼는 날이 온다.
후자의 일하기는 열심히 하는 것과는 별 관계가 없다. 열심히든 아니든 내가 지금까지 얻은 지식과 노하우를 활용하여 업무를 처리해 낸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멈추거나 고민은 하지만 이 정도면 됐지 라고 생각해 배움을 멈춘다. 쳐내야 할 일이 많아져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이 부족한 걸 수도, 그렇게 까지 안 해도 사람들이 잘한다고 하니 자만에 빠진 걸 수도 있다. 그렇게 가진 것을 소모만 하며 일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갈고닦아왔던 무기가 무뎌지고 밑천이 바닥나게 된다.
길게 설명했지만 결국 '생각하며 일하냐, 생각 없이 일하냐'의 차이인 것이다.
나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일을 처음 시작하고 나서부터 5-6년은 전자처럼 일해왔다. 신입이라 배울 것도 많은 것은 물론, 생각하며 일하지 않으면 하루하루 버틸 수 없는 환경인 탓도 있었다. 그 후에는 딱히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성과를 낼 수 있게 되었고, 생각을 좀 덜하며 일해도 괜찮은 환경을 만났고, 결혼을 했고, 아이가 생겼다. 예전처럼 열심히 안 해도 내 일은 충분히 쳐낼 수 있고, 일 외에도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아졌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경험은 쌓이니 이게 다 내 것이 되는 거라고 ‘착각’ 하고 있었다. 별 생각 없이 일하는 동안 직급은 올라가고 연차는 10년이 가까워 오지만 그만큼 나는 성장했을까?
자전거를 타다 페달을 멈추면 이 전에 달리던 힘으로 어느정도 앞으로 갈 수 있다. 페달을 멈추기 전 온 힘을 다해 바르게 페달을 굴러왔다면 페달을 멈춰도 꽤 앞으로 더 갈 수 있다. 거기에 운 좋게 내리막 경사까지 만났다면 바람을 즐기며 신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자전거의 관성에는 한계가 있고, 내리막길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 자전거에 남아있는 공짜 동력이 끝나기 전에 다시 페달을 굴러야 계속 앞으로 굴러갈 수 있다.
페달을 다시 밟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이 페달이 맞는 걸까?' '페달을 열심히 밟는다고 될까?' 한 번 머릿속에 자리 잡은 회의와 의심은 커져만 간다. 이러다가 페달에 녹이 슬어 다시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어쩌지. 아니면 이번엔 바구니 달린, 천천히 달려도 되는 예쁜 자전거로 옮겨타 볼까? 딴 생각만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