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치]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품

웨일스어 '쿠치(Cwtch)'가 가르쳐주는 진정한 온기와 피난처에 대하여

by 에반 환 Evan H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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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어 '쿠치(Cwtch)'가 가르쳐주는 진정한 온기와 피난처에 대하여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과 어깨를 스치며 살아갑니다.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타인의 온기가 숨이 막힐 듯 답답하게 느껴지고, 직장이나 모임에서는 예의 바른 미소와 가벼운 악수가 오갑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빽빽하게 밀착된 채 살아가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슴 깊은 곳에서는 지독한 피부 결핍증을 앓고 있습니다.


누군가와 가볍게 포옹을 나눌 때조차,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시리고 외로웠던 적이 있으신가요. 현대인에게 신체적 접촉이란 때로는 가벼운 인사치레에 불과하거나, 친밀함을 과시하기 위해 SNS에 올릴 사진 속 포즈로 소비되곤 합니다.


등은 맞대고 있지만 각자의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연인들, 의무적으로 안부를 묻지만 서로의 진짜 상처에는 가닿지 못하는 얄팍한 관계들 속에서 우리의 영혼은 갈 곳을 잃고 잔뜩 웅크리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사전의 페이지를 넘기며, 저는 다시 한번 안개 낀 영국의 서쪽 끝, 웨일스(Wales)로 당신을 안내하려 합니다. 앞서 다루었던 '히라에스(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애도)'를 탄생시킨 이 척박하고도 아름다운 땅에는, 얄팍해진 우리의 관계를 깊고 다정하게 감싸 안아줄 마법 같은 단어 하나가 더 존재합니다.


바로 ‘쿠치(Cwtch)’입니다.


사전에서 이 단어를 찾으면 영어의 ‘Hug(포옹)’로 단순하게 번역되곤 하지만, 웨일스 사람들에게 '쿠치'는 그저 두 팔을 벌려 상대의 몸을 끌어안는 가벼운 물리적 행위가 아닙니다.


이 투박하고도 따뜻한 발음의 단어는 본래 집 안에서 석탄이나 소중한 물건들을 안전하게 보관해 두는 '작은 다락방'이나 '은밀한 은신처'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길고 혹독한 겨울, 밖에는 매서운 눈보라가 치더라도 '쿠치' 안에 보관된 석탄만큼은 젖지 않고 뽀송뽀송하게 가족의 밤을 덥혀줄 준비를 하고 있었지요.


이 공간의 의미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옮겨오면서, '쿠치'는 "내 두 팔로 너를 둥글게 감싸 안아, 세상 그 무엇도 너를 해칠 수 없는 가장 안전하고 견고한 피난처를 만들어 줄게"라는 아주 깊고 숭고한 영적 행위를 뜻하게 되었습니다.


거대한 역사의 비극 한가운데서 휩쓸리는 인물들이나, 차갑고 잔혹한 현대의 뒷골목에서 상처 입은 주인공들의 굴곡진 삶을 소설로 빚어낼 때면 저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합니다. 벼랑 끝에 몰린 인간을 결국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대단한 기적이나 완벽한 문제 해결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그저 주인공을 향해 두 팔을 벌려 기꺼이 '쿠치'를 내어주는 단 한 사람의 체온입니다. 세상의 거친 돌팔매질을 자신의 등 뒤로 대신 다 맞으면서, 내 품에 안긴 너만큼은 이 잔인한 현실로부터 완벽히 격리시켜 주겠다는 결연한 보호의 의지. 그 은밀하고도 다정한 도피처 안에서 주인공은 비로소 숨을 고르고 잃어버린 자신의 영혼을 회복합니다.


현대 사회라는 전쟁터에서 우리는 모두 상처받기 쉬운 맨몸으로 비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밖에서는 유능하고 강한 척 단단한 갑옷을 입고 버티지만, 누구나 마음속에는 세상의 평가나 시선으로부터 완벽하게 숨어들 수 있는 작고 안전한 다락방을 하나쯤 간절히 원합니다. "너 왜 그랬어", "앞으로 어쩔 거니"라며 섣불리 잘잘못을 따져 묻는 대신,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둥글게 감싸 안아줄 사람. 무너져 내리는 내 무게를 온전히 지탱해 주며, "괜찮아, 내 품 안에서는 네가 아무리 약하고 못난 모습이어도 완벽하게 안전해"라고 말해주는 그 무언의 위로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목마릅니다.


영어의 'Hug'가 반가움을 나누는 가벼운 접촉이라면, 웨일스어의 'Cwtch'는 타인의 슬픔과 고단함을 향해 내가 지어줄 수 있는 가장 견고한 마음의 집입니다. 누군가에게 '쿠치'를 해준다는 것은, 내 심장의 박동을 상대방의 심장에 가장 가까이 맞대고, 나의 체온을 나누어 상대방의 얼어붙은 두려움을 녹여내는 아주 헌신적인 사랑의 방식입니다.


단어들이 점차 그 깊이를 잃고 납작해져 가는 소란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이 아름다운 단어 '쿠치'를 다시 우리의 일상으로 불러와야 합니다.


오늘 저녁, 사랑하는 사람의 어깨가 유난히 무거워 보인다면, 혹은 당신의 아이가 알 수 없는 불안에 떨고 있다면, 굳이 유창한 위로의 말을 찾으려 애쓰지 마세요. 그저 말없이 다가가 온몸으로,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단단히 끌어안아 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두 팔이 만들어낸 그 작은 공간이 오늘 밤 그 사람을 살게 하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요새가 될 테니까요.


매서운 현실의 바람 앞에서 갈 곳을 잃고 서성이는 당신에게, 오늘은 영국의 서쪽 끝에서 날아온 푹신한 담요 같은 단어 '쿠치'로 안부를 전합니다. 오늘 하루쯤은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지고 누군가의 품이라는 다정한 피난처에 숨어들어, 당신의 얼어붙은 영혼이 뽀송뽀송하게 마를 때까지 평화롭게 머물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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