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백만불의 사나이편
필자가 어렸을 때 최고의 미드(미국드라마)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리 메이저스(Lee Majors)가 주연했던 6백만불의 사나이(The Six Million Dollar Man)를 들 수 있다. 이 드라마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아이들이 TV 장면에서 주인공의 흉내를 내다가 사고가 나는 등의 사회적 여파도 컸으며, 이후 이 드라마에서 등장했던 제이미 소머즈(린지 와그너, Lindsay Wagner분)가 주연을 맡는 미국 드라마 사상최초의 스핀오프(spin-off) 시리즈인 소머즈(The Bionic Woman)에까지 이어진 대형 히트작이었다.
리 메이저스는 우주선의 추락으로 생사의 위기에서 한쪽 눈과 한쪽 팔, 양쪽 다리를 6백만불을 들여서 생체기계로 대체를 하게 된다는 설정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속 60마일의 속도로 달릴 수 있으며 15미터 높이의 점프가 가능한 다리, 한쪽 눈은 20배로 확대가 가능한 줌 기능과 적외선 탐지가 가능하며, 한쪽 팔은 불도저의 파워를 넘어서는 몇 천 마력의 힘을 가진 것으로 되어 있다. 그의 연인으로 등장한 소머즈 역시 스카이 다이빙 사고로 사경을 헤매다가 5백만불을 들인 생체기계를 장착하게 되는데, 이 둘의 러브 스토리도 드라마 시리즈의 재미를 더했다. 제이미 소머즈는 스티브 오스틴과 달리 눈 대신에 귀를 생체기계로 대체를 해서 인간이 들을 수 없는 한계의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 유일한 차이이다. 이러한 독특한 설정과 함께 기억에 남는 것은 초능력을 발휘할 때마다 어김없이 들리는 “뚜뚜뚜뚜 … “ 하는 음향효과와 효과적으로 이용된 슬로모션 기법 등은 이후 제작된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 드라마 시리즈에서 소개된 각종 생체기계 기술들은 현재의 의공학 기술로 완전히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지고 있는 듯하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기계를 컨트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우리 몸의 신경조직과 기계나 센서를 어떻게 잘 연결하고 이를 조화롭게 만드느냐에 대한 것이다.
잃어버린 소리와 빛를 찾아라!
옛날의 TV 광고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인가? 필자는 촌스러웠던 광고의 대명사로 꼽히던 ‘안들려요 ~’로 시작한 보청기 광고가 떠오른다. 보청기는 일종의 앰프와 같은 것으로 외부의 소리를 크게 증폭시켜서 귀로 전달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들과 같이 청력이 약화된 경우에는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실제 우리나라에만 수십 만명에 이르는 진성 청각장애자들에게 소리를 찾아주지는 못한다.
이런 청각장애자들에게 희망을 준 최근의 기술이 바로 ‘달팽이관 임플란트(cochlear implant)’이다. 기본 원리는 귀 근방에 소리를 감지하는 센서를 붙이고 귀에 있는 달팽이관에서 느낄 수 있는 전기적인 신호를 만들어서 직접 전달해서 소리를 듣게 만드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볼 때 외부의 소리를 인간의 감각기관이 감지하는 것과 동일하게 신호를 처리하는 것이다. 이 기술은 많은 청각장애자들에게 소리를 듣게 해 줄 수 있지만, 여전히 청각신경에 손상을 받거나 뇌의 청각중추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 더 나아가서 가장 최근의 연구는 직접 뇌의 청각중추에 외부 센서에서 감지한 소리를 인간의 뇌가 이해할 수 있는 전기신호로 바꾸어서 전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보자. 그렇다면 눈은 어떨까 ? 수많은 맹인들에게 빛을 찾아줄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있는 걸까 ? 앞서 이야기한 몇 가지 연구들을 놓고 보면 이런 상상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안경이나 눈에 부착할 수 있는 소형 카메라 같은 것에서 감지한 영상을 뇌로 전달할 수는 없을까 ? 이 문제는 앞에서의 소리나 근육의 문제보다 훨씬 복잡하다. 인간이 영상을 감지하는 능력은 그냥 영상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정보를 같이 복잡한 중간처리 절차를 거쳐서 전달하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연구가 실제 상당한 성과를 얻고 있다.
USC의 도헤니 눈 연구소(Doheny Eye Institute)에서는 인공으로 시력을 찾아줄 수 있는 속칭 ‘아이칩(eye chip)’의 연구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맹인이 길을 걸을 때 눈앞의 장애물 정도를 자각할 수 있는 수준의 해상도를 구현하는데 성공했으며, 현재 칼텍(Caltech)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이 칩의 해상도를 증진시키고 보다 정교한 시각처리를 하는 연구가 진행 중에 있으며 일부는 상용화 단계에 들어가고 있다. 이 연구가 놀라운 점은 안경의 형태로 만들어진 카메라를 통해 입력된 영상을 실시간으로 인간의 뇌가 인식할 수 있는 형태의 전기신호로 변환하여 뇌의 시각중추에 직접 전달하는 믿기 힘든 과정을 실제로 구현했고, 시각장애인들의 실험을 통해 그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점이다. 관련한 기술이 발전하면서 현재 다양한 기관과 업체에서 상용화를 진행 중에 있기 때문에 그다지 머지 않은 미래에 관련 제품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머리가 좋아지는 비법
기계-인간 인터페이스 기술 수준이 놀랍게 발전하면서 이미 과거에는 생각하기 힘들었던 SF같은 일들이 현실화되고 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소개할 이 기술이야말로 정말 ‘SF’ 같은 것이다.
필자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수많은 독자들은 인간과 컴퓨터를 비교하면서 뇌에 고도로 집적된 메모리를 꽂아넣어서 기억력을 증진시킬 수 있으면 정말로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현실화되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 USC의 버거(Berger) 교수 연구실에서는 실제 이런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간의 뇌 중에서 기억력을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해마(hippocampus)가 실제 기억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전기 생리학적인 기전을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컴퓨터 과학적인 신경망(neural network)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며, 아날로그 VLSI 기술을 이용해서 실제 칩으로 인간이 뇌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목표이다. 현재 칩으로 뇌와 상호작용하는 하드웨어를 단기 기억력을 잃어버린 쥐의 뇌에 꽂아서 단기기억력을 필요로 하는 미로를 찾는 작업에 성공했다는 연구결과들이 발표되고 있어 마냥 꿈만은 아닌 상황이 되고 있다. 이를 실제로 인간에게 사용할 수 있는 '뇌임플란트(brain implant)' 수준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미 그 가능성을 일부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장애인들의 꿈은 이루어진다?
안드로이드가 등장하고 차갑게만 느껴지는 금속성 과학기술이 생체조직과 연결이 되는 사이버 펑크의 주요 소재들은 필자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이다. 사이버 펑크의 시초로 일컬어지는 블레이드 러너에서 나오는 안드로이드를 열연한 해리슨 포드나,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와 같은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것이 그렇게 먼 미래가 아닐지도 모른다.
SF영화나 만화에서는 이러한 기술들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켰기 때문에 언뜻 이러한 주제가 거부감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현대의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수많은 장애인들이 이러한 기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정상인과 비슷한 능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이를 꿈의 기술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