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럭무럭, 잘
이십 대 초반을 순천에서 보냈다. 순천을 떠나고, 마산, 서울에서 시간을 보내고 겨우 순천에 서 1박 2일을 머물 수 있었다. 뭐가 그렇게 바빴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엄마가 된 후배는 후배와 꼭 닮은 여자아이를 데리고 왔다. 내게 아기 같았던 후배는 식당에서 아이의 밥을 먹이고, 아이의 외투를 챙겼다. 내가 태어나서 되어보지 못한 일을 해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만난 건 거의 2년만이었다. 2년만큼의 이야기가 이렇게 한두 문장으로 짧게 요약이 될 수 있을까. 시간이 참 빠르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서로 많은 일이 있었지만, 우리는 변하지 않은 듯 변한 것 같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름들의 안부를 물었다. 이제는 시를 쓰지 않고 회사에 다닌다는 복학생 선배와 별로 말도 섞지 않았던 과 동기의 결혼 소식. 오늘 들었던 이름들은 집에 돌아가면 다시 잊히더라도, 다들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잘 지내자. 따뜻한 잔을 둥글게 쥔 손처럼, 꼬리를 동그랗게 말고 잠든 고양이처럼, 동그란 마음으로. 따뜻한 잔을 홀짝이며 잘 지내라는 말을 연신 하고는 헤어졌다. 요즘의 사건들이 시시한 이야기가 되도록. 무럭무럭 자라서 우리, 또 만나자. 우리의 앞날이 동그랗게 무럭무럭 지나갔으면 한다.
<순천소식 겨울호, 2019> 에 글과 그림을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