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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Nov 15. 2024

n가지 가족, n가지 추석

 


  부쩍 무더웠던 날씨가 한풀 꺾이고, 긴소매 옷을 꺼내입을 때 추석이 온다. 추석이면 선명한 가을 아침 공기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큰댁에 차례를 지내기 위해 이른 아침 집을 나섰던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전날에 미리 챙겨둔 잘 다려진 옷을 챙겨입고, 양손에는 추석 선물과 명절 음식을 보자기에 담아 집을 나섰다. 추석 아침은 분주하지만, 일상과 사뭇 다른 풍경에 조금 들뜨기도 했다. 나는 어렸을 때, 전통적인 추석 문화와 우리 가족의 개성이 반반 섞인 추석을 보냈다.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 차례를 지냈고, 송편을 빚기보다는 만두를 쪄먹었다. 웇놀이나 전통 놀이 대신 친적들과 보드게임을 하거나 놀이터에서 뛰어놀았다.        


-이억배 그림책 『솔이의 추석 이야기』(1995,길벗어린이)



             

   전통적인 추석 문화는 어땠을까? 대가족의 전통적인 추석 문화를 담은 그림책을 꼽으라면 이억배 작가의 『솔이의 추석 이야기』가 떠오른다. 추석 문화와 가족의 형태가 다양화된 이 시점에 위 그림책은 요즘 어린이에게 생경한 풍경일 것이다. 위 그림책은 주인공인 솔이네 가족이 추석을 보내는 이야기로 ‘두 밤만 지나면 추석입니다’라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명절 며칠 전부터 명절을 맞이하는 분주하고 들뜬 분위기를 만날 수 있는데 연휴의 설레는 분위기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가 보다. 그림책 속에서는 목욕탕에서 씻는 사람, 이발하는 사람, 시장에서 선물을 사는 사람 등 각자의 방식으로 연휴를 기다린다. 작가는 추석을 준비하는 분주한 도시의 모습을 원경으로 표현했다. 인물들을 숨은 그림처럼 찾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솔이네 가족은 아침 일찍 일어나 시골 할머니 댁으로 향한다. 귀성길 자동차 행렬에 고속도로는 정체되고 꽉 막힌다. 차에서 내려 도로 위에서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하고, 잠깐 바람을 쐬기도 한다. 기나긴 기다림 속에 얼굴을 찌푸린 사람이 없다는 점이 재밌다. 도로 위 정체도 그때 그 시절 하나의 문화이기 때문에 위처럼 표현한 것 같다. 그렇게 도착한 시골엔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와 대가족이 솔이를 반갑게 맞아준다. 온 가족이 모여 음식을 만들고, 송편을 빚으며 달에게 소원을 빈다. 달 아래 소원을 비는 가족들의 행동과 표정들도 각기 다 다르다. 대가족 속에 각 개인의 모습을 표현한 점이 재밌다. 다음 날 아침 정성껏 차례를 지내고, 온 가족이 성묘에 간다. 그리고 전통 놀이인 풍물놀이와 강강술래를 통해 가족을 넘어서, 온 마을 사람이 함께 추석을 즐긴다. 이억배 작가는 사람과 사람이 함께하며 정을 나누는 추석 문화를 담았다. 익숙한 세대에게는 옛 추억을 되새길 수 있고, 생경한 세대에게는 추석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그림책이다.      



  그렇다면 어른이 된 솔이는 어떤 추석을 보내고 있을까? 이 그림책이 1995년에 세상에 나왔고, 그때 그 당시 솔이의 연령대는 6~7세 혹은 초등학생처럼 보인다. 솔이의 나이를 추정해 보자면 대략 30대일 것이다. 어른이 된 솔이는 아마 새로운 방식으로 추석을 보내고 있을 것 같다. 나도 성인이 되면서 추석을 보내는 방식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제사 음식을 함께 만드는 대신 가족과 좋아하는 음식으로 외식하기도 하기도 했으며, 여행을 가기도 했다. 다양화된 추석 문화는 세대가 변했기 때문만은 아니라,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진 점도 한몫을 할 것이다. 독립한 뒤 나는 1인 가장이 됐는데, 일 때문에 고향으로 내려오기 여의치 않은 상황일 때도 많았다. 그때면 타지에 남은 친구들과 추석을 보냈다. 우리만의 추석 음식을 먹고, 새로운 추석 문화를 만들었다. 그때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이었다.         



    

-마리아나 페레스 두아르네 그림책 『우리는 가족 : 누가 나의 가족일까?』(2021,키다리)



  추석은 예로부터 가족과 함께한다는 의미가 깊다. 추석을 맞이하기 앞서서, 다양한 가족 형태를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그림책 『우리는 가족: 누가 나의 가족일까?』는 다양한 가족의 다양한 형태를 이해하기 쉽게 소개하는 그림책이다. 첫 페이지에 이런 글이 적혀있다. ‘사람들은 가족이면 다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가족은 저마다 달라요. 어떤 가족은 구성원 수가 많고, 어떤 가족은 적으며, 공간만 함께 쓰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가까운 가족도 있어요. 혈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족도 있고, 순전히 사랑만으로 연결된 가족도 있지요.’ 위 그림책이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를 잘 표현한 문장이다.     

 


  한국에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강하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는 아빠, 엄마, 자녀로 이루어진 핵가족의 형태를 주로 일컫는다. 작가는 정상 가족과 비정상 가족을 나누지 않는다. 대신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또한 위 그림책은 다양한 가족의 형태에 이름을 붙이는데, 작가가 붙인 이름엔 차별이 없다. 그 이름들은 명징하고 문학적이다.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한 지붕 여러 가족’, 이혼 가정은 ‘두 개의 둥지’, 재혼가족은 ‘합쳐진 가족’,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가까운 ‘멀리 떨어져 지내는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소개한다. 또한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비친족 가족도 소개한다. 특별한 사연을 가진 누군가와 함께하는 ‘맞이하는 가족’, ‘사람과 동물로 이루어진 가족’, ‘가족 같은 이웃사촌’ 등 다채롭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처럼 추석을 보내는 방식도 다양하다. 1인 가구가 많아짐으로써 비혈연 가족 혹은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도 많다. 결혼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가족도 있으며, 다문화가족, 반려동물이 가족 구성원이 되기도 한다. 어떤 모양의 가족이든 상관없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추석이다. 그리고 추석엔 크고 밝은 보름달이 뜬다. 누군가는 보름달에 소원을 비는 대신, 사랑하는 가족의 눈을 바라볼 수도 있다. 송편 대신 빵을 만들 수도 있고, 강강술래 대신 가족과 노래방을 갈 수도 있겠다. n가지 가족이 있다면 추석을 보내는 방식도 n가지다. 중요한 건 나만의 방식으로 추석 기념하고, 추석을 잘 보내는 것이다. 긴 연휴인 추석을 잘 보내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어떤 형태의 가족이든 옛말처럼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기를’ 바란다.      






<팽샛별의 심심 心心한 그림책>은?

 그림책 작가 팽샛별이 공감과 치유가 담긴 그림책을 소개하는 코너로, 이원수문학관 소식지 <꽃대궐>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정해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그림책을 소개하고, 다채로운 세상과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팽샛별

그림책작가,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쓰고 그린 그림책으로 <여보세요?>(2017,위즈덤하우스), <어떡하지?>(2017,그림책공작소)가 있습니다. 글과 그림을 기반으로 한 전시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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