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원은 어떤 사람인가 _ 1
본격적으로 세계일주를 떠나기에 앞서 여행자 소개를 먼저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내 이름은 강주원, 현재 나이는 서른이다. 나는 내 나이가 서른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 전 생일에 계란 한 판을 선물로 받기 전까지는. 그때부턴 내 나이를 똑바로 인지하게 되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20대였던 나. 내 20대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어떤 게 있을까? 바로 방황이 아닐까 싶다. 난 20대에 꽤나 심하게 방황을 했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방황의 종류도 바뀌었던 것 같다. 20대 초반엔 난 도대체 뭘 해야 할 것인가, 그다음엔 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방황했다. 20대 중반에 들어서서는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20대 후반엔 내가 원하는 삶을 이루어 줄 그 무엇을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가에 대한 방황을 했다. 조금 길어질 수도 있지만 내 20대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가 방 황인만 큼 내가 겪은 방황의 흐름에 따라 내 소개를 해볼까 한다.
방황 1. 난 도대체 뭘 해야 할 것인가?
난 지극히 평범한 집안에서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다. 중고등학교 땐 공부를 열심히 했고, 한참 유행하던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도 열심히 했다. 게임은 재밌어서 했지만, 공부를 하는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 이유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부모님이 하라고 하니, 주변의 친구들이 공부를 하니 그저 따라 할 뿐이었다. 나름 하라는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는지 나쁘지 않은 대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앞으로 난 뭘 하면서 살아야 되지?'
중고등학교 땐 누군가가 나에게 공부를 하라고 해서 했지만, 대학교에 들어오니 누가 이래라저래라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 나에게 자유가 주어진 것이다. 고등학교 때 그토록 바라던 꿀 같은 자유 말이다. 근데 그 자유란 놈은 예상과 다르게 나에게 꿀이 아닌 불안을 가져다주었다. 자유가 주어졌기 때문에 뭐든 내가 선택을 해야 했는데,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 스스로 온전히 선택해 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점심시간에 누구와 뭘 먹을지, 시간표는 어떤 교수님의 수업을 어떤 친구와 맞춰서 짤지 등의 선택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날 가장 불안에 떨게 했던 건 앞으로 먹고살 길에 대한 선택이었다.
왜 나는 20살부터 그런 고민을 하게 됐을까.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학비와 생활비를 부모님께 얻어 쓰는 것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당시 즐겨 읽던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외쳐대는 꿈이나 목표의 부재 때문이었을까. 이유가 뭐가 됐건 지금 난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빨리 무엇을 할 건지 정하고 목표와 계획을 철저히 세워서 그것을 향해 달려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앞으로 뭘 하면서 살아갈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이제 막 사회에 나온 햇병아리에 불과한 내가 그 고민에 대한 괜찮은 답을 내리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땐 답을 쉽게 찾을 수 없는 이유를 지식의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꺼내 든 건 자기계발서였다. 내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하는 이유를 왜 지식의 부족이라고 생각했는지, 부족한 지식을 채우기 위해선 왜 자기계발서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암튼 그때 당시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고, 닥치는 대로 자기계발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뭔가 갈피가 잡힌다는 굉장한 착각을 하며 이상한 꿈을 그리기 시작했다.
'책에서 내 심장을 뛰게 할 꿈을 찾으려면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의 교집합을 찾으라고 했어. 그래. 그럼 일단 내가 잘 하는 것부터 찾아보자. 음. 어. 음. 뭐.. 가 있을까... 어.. 젠장. 일단 이건 좀 어려우니까 패스하고. 내가 좋아하는 거! 좋아하는 것부터 생각해보자. 음. 어.. 음... 헐.. 내가 좋아하는 거라.. 난 영화 보는 거 좋아하는데.. 영화감독이 되는 건 너무 힘들다고 했는데... 영화 말고 좋아하는 게 또 뭘까... 술?! 내가 술은 또 굉장히 좋아하지! 하하! 술이라. 내가 술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난 경영학과(당시 고작 2학년)를 나왔고, 술을 좋아하니까 술로 경영을 하는 뭐 그런 느낌적인 술집을 오픈하면 되지 않을까? 손님들하고 이야기하면서 술을 팔고 하면 정말 신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 내 꿈은 술집 사장이다!'
정말 1차원적이다 못해 무차 원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생각이었는지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난 돛이 부러진 망망대해의 배처럼 정처 없이 방황하고 또 방황했다.
젠장, 도대체 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가슴속으로 울부짖으며 답을 갈구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군대를 다녀온 후에도, 호주를 다녀온 후에도 답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다. 그런 울부짖음이 계속되던 어느 날,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귓속에다 이렇게 말했다. '야, 인마. 질문의 순서가 잘못됐어.'
방황 2. 난 어떻게 살 것인가?
내 뒤통수를 후려갈긴 건 다름 아닌 인문고전이었다. 대학 시절 어쩌다 집어 든 인문고전은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왜 사는가,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삶을 살 것인가 따위의 본질적인 고민을 던져주었다. 내 질문은 무엇에서 왜, 어떻게로 넘어갔다. 하지만 질문이 좀 더 고차원적으로 변했다 뿐이지 질문에 답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나의 어설픈 지식과 폭 좁은 경험으로 답을 내리는 건 초등학생이 미적분을 풀거라 기대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냥 머리 아픈 철학적 질문일랑 내려놓고 남들 하는 것처럼 열심히 스펙 쌓아서 대기업에 취업하면 오히려 맘이 편했을 것을. 무슨 심보인지 남들처럼 그럭저럭 살기는 또 싫었다. 힘들더라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 좋은 삶,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대학 교수님, 아카데미 스승님, 친구, 선배, 심지어 소개팅녀 등 내가 아는 모든 인력을 동원했다. 그들에게 '꿈이 뭐예요?'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지금 행복하세요?' 따위의 질문들을 던졌다. 그러나 내가 납득할만한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날 미친놈으로 생각하는 주변의 시선들만 돌아올 뿐.
결국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남들과는 다르게 살고 싶었던 나는 남들처럼 기업에 입사했다. 그리고 두 달이나 지났을까? 이건 정말 아니라는 확신과 함께 인턴 생활 도중 퇴사했다. 모든 건 시작이 어렵지 한 번 시작하면 두 번은 쉽다고 했던가? 첫 직장의 퇴사를 시작으로 공공기관, 제약회사, 청소년 진로교육단체를 연달아 퇴사했다. 퇴사와 입사 사이의 공백 기간에는 대학교 행정인턴, 행사장 단기 알바, 은행 청원 경찰, 생동성 알바 등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덕분에 나는 사회 부적응자, 끈기 없는 놈 등의 꼬리표를 달게 되었다. 그래 뭐, 내가 해왔던 일들이 타인의 시선에 그렇게 보인다면 굳이 부정하지는 않으련다. 그런데 그런 꼬리표를 달고 몇 년을 지내다 보니 드디어 찾게 되었다. 내가 20대 내내 던졌던 질문,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이 행복한 삶인가에 대한 답을.
"주원 씨는 꿈이 뭐예요?"
"전 청년들과 감동을 주고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이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자, 내가 만든 삶의 목적이었다. 청년들과 감동을 주고받으며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것. 사람들은 이 문장을 보고 포괄적이고 두루뭉술한 뚱딴지같은 소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점점 더 확신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 저런 삶을 살 때, 난 정말 행복한 삶을 살 거라는 확신.
내가 인문고전을 읽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깨달은 건, 내가 하는 모든 행위의 목적은 곧 행복으로 귀결된다는 것이었다. 밥을 먹는 이유, 친구들을 만나는 이유, 돈을 버는 이유 등 모든 행위의 목적의, 목적의, 목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다. 난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고 있었다. 근데 아이러니한 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행복이 뭔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부터는 나의 행복이 무엇인지, 나는 언제 가장 행복한지 깨달으려 무진장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너무나 힘들었다. 지금까지 철저히 타인의 시선에 따라 살아온 탓인지 나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내가 언제 행복한지 알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나 자신을 더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을 솔직히 마주하고 나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난제를 풀게 됐고, 그 후로는 나만의 방향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굳이 내가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생각들을 통해 저런 삶의 목적을 찾게 됐는지 세세하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해 나 조차도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그저 끊임없이 질문했고, 내가 스스로 선택한 자기중심적인 경험들을 많이 넓혀갔다. 그렇게 질문하고 경험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다 보니 나는 누군가와 감동을 주고받을 때, 특히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지며 살아가는 청년들과 감동을 주고받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당신에게 있어 행복한 삶은 무엇인가요?
이에 대한 공통된 답은 없다. 나의 답이 다른 사람에겐 오답일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오답이 나에겐 답일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에 옳다, 그르다 채점을 매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이기 때문에 신경 써야 할 것 또한 오로지 나 자신의 마음뿐이다. 아무튼. 난 나만의 답을 찾았고 큰 산을 하나 넘었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 산을 넘고 나니 또 다른 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산은 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청년들과 감동을 주고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질문의 초점은 어떻게에서 또다시 무엇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큰 산을 넘고 난 후라, 그 질문의 무게가 썩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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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