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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주원 Oct 01. 2016

리빈라비다로카, DJ 바가지

페친으로세계일주_DJ바가지(박한진)

  “준선아, 네가 제일 존경하는 DJ가 누구야?”

  “바가지요. DJ 바가지. 제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DJ에요.”

  “바가지? 그분 페이스북 주소 알아?”

  세계적인 DJ가 되고 싶다는 준선이의 이야기를 듣고 탑클래스의 DJ는 어떤 생각으로 디제잉을 하고 있는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나도 그냥 '하는' 성격이라 만남을 미룰 필요는 없었다. 내가 준선이의 롤모델을 만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그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는 것뿐이었다. 나는 준선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곧바로 답장이 왔다.

  “페친으로 세계일주라니 굉장히 흥미로운 프로젝트네요. 참여할게요.”

  그와 메시지를 주고받고 약속 날짜를 잡는 나를 지켜보던 준선이는 연신 “대박”이라고 소리쳤다. 내가 그를 만난다는 사실을 신기해하는 준선이를 보니 갑자기 방송인 김제동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맘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한테 가세요. 그리고 말하세요.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어떡하지 고민하면 안 돼요.
그 사람 평생 다시 만날 수 없습니다. 고민하지 말고 고백해야 합니다.


  꼭 사랑고백이 아니더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으면 그저 만나고 싶다고 말을 건네면 되는 것이다. 말을 건네고 나서 할 일은 상대방의 답을 기다리는 것이다. 나를 만날지 안 만날지는 상대방이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이니 우리는 당신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할 뿐이다. 그게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가장 심플하면서 확실한 방법 아닐까. 아무튼 준선이의 롤모델이자 대한민국의 TOP DJ로 꼽히는 DJ 바가지와의 만남은 이렇게 이뤄졌다.


  늦은 저녁, 신도림의 한 카페. 먼저 도착한 나는 그의 페이스북에 들어가 이런저런 사진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큰 덩치, 근육질의 몸매, 잘 다듬은 턱수염 굉장히 마초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디제잉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굉장히 카리스마 넘쳐 보였다.

  "안녕하세요."
  그의 강렬한 이미지에 살짝 긴장을 하며 음료를 들이켜고 있는데  한 남자가 해맑게 웃으며 들어와 인사를 건넸다. 반전이었다.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은 DJ 바가지를 보고 만든 속담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는 나의 예상과 정반대의 이미지였다. 박력 넘치고 터프할 것만 같았던 그는 매우 겸손하고 공손한 동네 형 느낌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그에게 말을 편히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는 한사코 거절했다. 결국 그는 나에게 존대를, 나는 늘 하던 대로 그를 형님이라 부르기로 했다. 난 첫 이야기를 준선이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형님, 전에 만났던 준선이라는 친구가 형님을 롤모델로 생각한다던데. 그 친구는 디제잉을 시작한 지 이제 1년이 됐거든요. 형님은 언제부터 디제잉을 시작하셨어요?"

  "하하, 제가 롤 모델이요?"

  자신이 누군가의 롤모델이 됐다는 사실을 굉장히 어색해하며 그가 대답했다

  “전 2002년부터 시작했어요. 계산해보면 14년 정도 됐나?”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되던 시절에 그는 디제잉을 시작한 것이다. 난 그 사실에 깜짝 놀랐다. 당시에 EDM이란 장르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EDM이 국내 어딘가에서 울려 퍼지고 있을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그에게 다시 물었다.

  “준선이한테 들었는데 대한민국에서 DJ로서 살아남는 게 쉽지만은 않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엔 지금보다 디제잉을 하는 게 훨씬 더 힘들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면 수입도 생기고 하겠지만, 그땐 그럴 기회도 별로 없었을 거 아니에요. 14년 동안 디제잉을 하면서 힘든 적은 없었나요?”

  “물론 수입이 안 되는 시절이 길었죠. 근데 전 이런 마인드를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어요. ‘덜 벌면 덜 쓰면 되지.’ 어느 날, 아침에 집에서 나와 호주머니를 뒤지니까 3천 원이 있는 거예요. 근데 예전에 제가 자주 가던 도시락 가게에서 파는 콩나물 비빔밥이 970원이었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콩나물 비빔밥 세 개로 끼니를 때우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재밌었어요. 뭐 디제잉을 돈 벌려고 시작한 게 아니었으니까요. 예전엔 DJ 장비들이 거대해서 그걸 리어카에 싣고 나가서 홍대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기도 하고 지하철 역 안에서 혼자 디제잉을 하다 쫓겨나기도 했어요. 정말 즐거웠어요. 그리고 전 DJ라는 걸 단 한 번도 제 직업으로 생각한 적이 없어요. 이력서 같은 곳의 직업란에도 전 제 직업을 DJ라고 쓰지 않아요. 디제잉은 그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였죠. 그래서 오랫동안 디제잉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돈에 묶여서 이걸 일이라는 생각으로 했으면 못했을 거예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그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분해되고 재조립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난 그가 성공하기 위해 미친 듯이 디제잉 실력을 갈고닦아 지금의 위치에 올라왔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살아남기 쉽지 않은 바닥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위해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목적은 성공이 아니었다. 그가 디제잉을 하는 이유는 즐거움이었다. 그는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과정을 즐기며 걸어가는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면서도 아직까지 직업란에 DJ라는 직업을 쓰기 꺼려하는, 디제잉을 직업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취미로 보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의 음악에 대한 태도와 디제잉에 대한 열정을 그저 취미라고 말하기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그만큼 자기가 추구하는 음악에 큰 애정과 자부심이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는 디제잉을 정말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다른 것이 목적이었다면 수없이 흔들릴 수 있었던 상황에서도 그는 절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제가 예전에 한 클럽에서 디제잉을 할 때였어요. 근데 그 클럽의 갑질이 말도 안 될 정도로 심했죠. 제가 원하는 음악을 틀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우리가 왜 이런 취급을 받으며 디제잉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 이 사태를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클럽의 모든 DJ가 모여있는 단톡 방에 말했어요. 다 같이 나가버리자고. 근데 결국 그 클럽을 나온 사람은 저 혼자였죠.”

  꽤나 괜찮은 수입을 주는 대형 클럽의 레지던스 DJ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돈이라는 수단에 휘둘리지 않았다. 디제잉으로 돈을 버는 것보다 중요한 건,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하는 것이었고 디제잉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일관된 태도로 디제잉을 해온 것이다. 그 즐거움에 대한 일관성이 14년 동안이나 EDM을 지켜온 그의 힘 아니었을까.

  짬에서 나오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2시간이 넘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브라질에 가서 경험하며 느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가 예전에 디제잉을 하러 브라질에 간 적이 있었어요. 근데 브라질 자동차 바퀴에는 이런 문구가 굉장히 많더라고요. 'LI VIN LA VIDA LOCA' 한국말로 풀이하면 '미친 삶을 살아라' 또는 '지금을 살아라' 정도로 말할 수 있어요. 실제로 브라질 사람들은 그래요. 정말 내일이 없는 것처럼 정열적으로 살아요. 그 사람들은 심지어 저축도 잘 안 해요. 나쁘게 말하면 대책 없이 산다고 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보면 인생을 정말 제대로 살고 있는 거죠. 근데 브라질에서 즐겁게 디제잉을 하고 한국에 귀국해서 받은 첫 전화가 뭔지 아세요? 어떤 보험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고객님의 노후를 위해서 지금부터 연금을 들어야 한다며. 브라질 사람들과 굉장히 대비가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도 모르는데 연금은 무슨 연금이야.' 내일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자기가 하기 싫은 일 하고 저축하고 그런 것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즐겁게 하는 게 중요한 거 아닌가요?"

  

  반전의 사나이(?) 바가지 형님을 만나고 집에 오는 길,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일을 한다.  하지만 일을 하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일을 한다. 지금 하는 일을 미래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써 하는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은 그 일 자체가 즐거워 일을 한다. 지금 하는 일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둘 중 어떤 사람이 그 일을 통해 성공할지 알 수 없다. 오히려 후자가 더 더디게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성공의 속도가 중요할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공의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즐기는 것, 그리고 그것을 되도록 오래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홍철도 항상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If it's not fun, Why do it?" 자기가 하는 일을 지금 이 순간 즐기면서 오랫동안 하는 것,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오지 않을 미래의 행복을 위해 계속 저축만 하는 우리들, 노후를 위해 연금을 들며 미래를 기다리는 우리 고객님들에게 필요한 주문은 이게 아닐까.

LI VIN LA VIDA LO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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