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양재 AT센터에서 열렸던 ‘2018 우리술 대축제’에 다녀왔다. 전국의 양조장이 한곳에 다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 시간을 내 들렀다. 각 지역, 각 양조장을 대표하는 전통주들을 한 곳에서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정말 많은 전통주가 전시장에 가득했다. 나는 신중해야만 했다. 이 모든 술을 모두 시음하다가는 주량을 넘어 정신을 잃고 전시장을 좀비처럼 돌아다녀야 할 판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왼쪽부터 차분히 살펴보기로 했다. 그곳에서 만난 첫 전통주는 ‘청명주’였다. 청명주에 대한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었다. 그냥 지나갈까 하다가 일단 처음이니 가볍게 시음해보기로 하고, 직원분께 시음을 부탁했다. 아주 작은 시음 잔에 노란색의 청명주가 담겼다. 마치 와인을 시음하듯,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입에 담고 그 맛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카드를 꺼내 결제를 하고, 그 자리에서 청명주 한 병을 구매해버렸다. 살 수밖에 없었다.
약주라는 것은 원래 약효가 있다고 인정되는 종류의 술이거나, 약재를 넣고 빚는 술을 뜻했다. 하지만 그 의미는 맑은 술을 뜻하는 것으로 변했고 요즘은 술의 높임말로 쓰이기도 한다. 내가 평소에 인식하던 약주는 ‘약재를 넣고 빚는 술’이었다. 가령 전에 마셨던 능이, 송이, 해방주와 같은 약주는 각각 능이버섯, 송이버섯, 해방풍 잎 따위가 들어갔다. 때문에 각 술을 마시면서 약재의 맛과 향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청명주에게도 그런 걸 기대했다. 하지만 청명주는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청명주는 맑음 그 자체였다. 막걸리의 탁한 부분을 걷어내고 남은 최고로 맑은 부분만 마시는 그런 느낌이랄까. 세상에서 가장 맑은 막걸리를 마시는 느낌이었다.
집에 가져온 청명주는 차갑게 마실수록 좋다는 직원의 이야기에 따라 냉장고에 보관해뒀다가 요즘 제철이라는 대방어를 안주로 마셨다. 청명주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술인지, 약인지, 맛난 전통 음료인지 모를 정도로 맛있고 부드러웠다. 마시면서 감탄사를 몇 번이나 내뱉었는지 모르겠다. 회와 이렇게 잘 어울리는 술이 또 있을까 싶었다. 궁금한 마음에 청명주에 대한 조사를 해보니, 나만 그런 감탄을 한 게 아니었다.
이익은 ‘성호사설’에 "나는 평생 청명주를 가장 좋아하며 청명주의 양조 방법을 혹시나 잊어버릴까 두려워서 기록해 둔다"고 적었다. 전통주의 명가 충주의 중원당에서 제조되는 청명주는 이토록 역사가 깊고, 과거부터 사랑을 많이 받아온 것이다.
청명주는 현재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인 김영섭 장인의 손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오로지 찹쌀과 누룩으로만 만들어지며, 저온에서 장시간 발효하고 숙성하여 여느 약주에 비해 도수가 높은 게 특징이다.
우리술 대축제는 끝났지만 www.청명주.com 에서 언제든 청명주를 구매할 수 있다. 500mL는 25,000원에, 750mL는 35,000원에 구매할 수 있으니 주머니 사정 보지 말고 구매하길 바란다. 주머니는 비었을지라도, 청명주를 담은 여러분의 마음은 풍족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