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원은 어떤 사람인가 _ 2
3.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청년들과 감동을 주고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이뤄놓은 것 하나 없는 퇴사자 주제에 대학교의 강단에서 강연을 할 수도 없고, 가슴 아픈 청년들의 심리를 치유하는 심리상담센터를 오픈할 수도 없었다. 근데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규모가 작은 한 온라인 플랫폼에 청년들과 2~3명 남짓의 청년들과 소통하자는 취지의 작은 모임을 오픈하는 것이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많은 청년들과 함께할 수는 없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꿈다방이라는 모임을 시작했다.
"여긴 도대체 왜 오셨어요???"
놀랍게도 첫 모임에 나타난 두 명의 동생들에게 물었다. 상담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잘 나가는 직장인도 아닌 나를 보기 위해 찾아온 두 동생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시간을 내서 나와 이야기하기 위해서 와준 두 동생을 위해 열심히, 아주 열심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들려줬다. 누구 한 명 값진 조언과 충고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지만, 우린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야, 가자. 여기 맛있는 순대집 있어."
모임 시간은 끝났지만 어느새 두 동생에게 형, 오빠가 된 나는 멀리서 온 동생들을 그냥 보낼 수가 없어 동네 순대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였다. 물론 소주와 함께. 집에 오는데 가슴이 따뜻했다. 술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늘 만났지만 마치 오래 알던 사이처럼 나눴던 허물없는 대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실했던 서로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감동시켰다. 전에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고, 앞으로 계속 느끼고 싶은 감정이었다. 그래서 거의 매주 꿈다방이란 모임을 열었고 매주 새로운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 모임이 10회쯤 진행됐을 때, 갑상선 암을 이겨내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며 자신을 소개한 연지라는 동생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빠, 오빠가 지금까지 이 모임에서 만났던 다른 사람들 이야기도 한 번 들어보고 싶다."
지하철을 타고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문득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던 연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모임에서 만났던 사람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발표해보라고 시킬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예전 같으면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10회 정도의 모임을 지속한 그 시점에선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할 일은 그저 모임에서 만났던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좀 풀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다들 처음엔 내가 무슨 강연이냐며 당황했지만, 원래 강연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해야 더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나의 말에 그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내 부탁을 들어줬다.
연사가 확정됐으니 이제 할 일은 공간을 구하는 일이었다. 좋은 공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했다. 좋은 공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마이크와 책상, 의자가 있는 대학교의 강의실을 무료로 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원래 하던 것처럼 온라인에 모임을 공지했고 내가 꿈다방에서 만났던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2014년 5월 11일, 4명의 연사와 20명의 청중이 대학의 강의실에 모였다. 그게 바로 꿈톡의 시작이었다.
4. 내가 원하는 삶을 이루어 줄 그 무엇을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가
전율, 소름, 감동. 꿈톡 1회를 마친 이후의 내 감정이었다. 벅찬 감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집에 들어와 사진들을 보며 오늘 하루를 되돌아봤다. 여운이 떠나지 않았다. 이 감정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고 난 내가 느낀 감동을 블로그에 그대로 옮겨 적기 시작했다.
1회 꿈톡 강연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책상에 앉아
창문을 15cm 정도 열어 비 오는 밤의 바람을 맞으며
오늘 있었던 일을 돌이켜본다.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내 꿈은
감동을 주고받아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꿈톡도 그런 삶을 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꿈톡을 거창하게 성공시켜 돈을 얻거나, 명예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하며 내가 행복을 느끼는 삶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즐겁기 때문에, 행복하기 때문에 그냥 하는 하나의 수단.
오늘 꿈톡을 통해 감동을 주고받았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았다.
정말 행복했다.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것을 꿈으로 설정하는 순간
그것을 성취하지 못하면 우울에 빠지고, 자신의 삶을 실패로 규정지을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삶을 살겠다는 것이 꿈이 되는 순간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의 가짓수가 넓어지고
그 수단 중에 하나가 실패한다 해도 목적이 견고하니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서로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모임을 지속하다 보니 어쩌다 꿈톡이라는 것을 하게 됐다. 꿈톡을 시작하기 전에는 전혀 몰랐다. 꿈톡이 내가 그토록 바라던 청년들과 감동을 주고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게 해줄 최고의 수단이 될 거라는 사실을.
2회, 3회. 누군가 인정해주지도 않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내가 행복하기 때문에 계속했다. 그러다 보니 국회에서도 꿈톡을 할 기회가 생겼고, 이 행복에 동참하는 멤버들도 생겨났다. 10회가 지났다. 알리지 않아도 꿈톡을 먼저 찾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20회가 지났다. 강연이나 청년 관련된 커뮤니티 또는 단체들 중에서 꿈톡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꿈톡은 2년 동안 25회 이상의 토크쇼를 지속해왔다. 이제는 1,000명 이상의 청년들을 모객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수익은 없다. 2년이 넘게 수익 없이 꿈톡을 지속해오면서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생계는 유지해야 했기에 직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근데 그 직장이 꿈톡을 하는 데 있어 방해가 된다면 직장을 그만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꿈톡은 날 행복하게 하는 최고의 수단인데 그것을 방해한다는 것은 내 행복을 침해한다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스물아홉의 나이에 카페 면접을 보다가 퇴짜를 맞기도 하고, 행사장에서 단기 알바를 뛰기도 했고, 은행의 청원경찰을 하기도 했다. 직장을 자주 옮겨 다녔기 때문에 돈이 모일 새가 없었다.
이런 과정들이 힘들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물론 힘들었다. 근데 내가 꿈톡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힘들기 때문에 꿈톡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꿈톡 때문에 다른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힘든 상황들을 극복할 수 있었다. 꿈톡이라는 공간 안에서 청년들과 소통하며, 청년들과 감동을 주고받는 순간 내 삶의 의미가 되살아났고 피로가 스르르 녹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은 너무나 행복했고, 그 순간을 준비하는 기간 또한 너무나 행복했다. 처음부터 내 생각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꿈톡을 진행하면서 강한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내 삶의 목적에 대한 확신도 더욱더 강해졌다.
내가 가장 행복할 때는 청년들과 소통하며 감동을 주고받을 때구나.
계속 이렇게 산다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구나.
내가 원하는 삶을 실현해줄 그 무엇은 바로 꿈톡이 되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그것을 지속시키는 일이다. 예전에도 고민했고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나가야 할 숙제다. 때문에 난 이 부분에 있어서 아직 방황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꿈톡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순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고민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얻은 깨달음이 있다.
무언가를 지속하는 방법은 수단이 목적을 짓밟게 놔두지 않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꿈톡의 지속성을 곧 수익모델의 유무로 판단했다. 물론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있는 일 자체에 대한 사랑, 감사함이 꿈톡을 지속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수단들에 정신이 팔려 그 일 자체에서 느끼는 행복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꿈톡은 언제까지 할 거예요?"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앞으로도 계속할 거예요. 단, 내가 꿈톡을 하면서 행복할 때까지."
난 앞으로도 계속해서 방황하며, 고민하며 내 행복을 위해 삶을 살아갈 것이다. 꿈톡 외에도 여러 가지 수단들로 청년들과 감동을 주고받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페친으로 세계일주 또한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수단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