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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주원 Aug 19. 2016

원래 인생은 불안이야, 그냥 받아들여

페친으로 세계일주_댄서 주얼

  “댄스 대회에서 우승한 형이 있어요. 근데 그 형 직업이 뭔지 알아요? 노가다꾼이에요. 큰 대회에서 우승을 해도 서른이 가까워지는 나이에 노가다를 뛸 수밖에 없는 게 이 세계 현실이에요. 그 형을 보고 춤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죠.”


  댄스 오디션에 참여한 한 참가자의 말을 듣고 나니 쓰디쓴 커피를 마신 듯 가슴이 쓰려온다.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이 마치 공식처럼 여겨지는 이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의 어려움은 남 이야기 같지 않다.

  나도 댄스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딱 한 달 동안만. 스물일곱의 나이에 찾아간 댄스 학원에서 나는 최고령자였다. 고등학생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댄스를 배웠다. 심지어 댄스 강사도 나보다 네 살은 어린 동생이었다. 다른 클래스를 기웃거려도 똑같다. ‘스물일곱이란 나이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댄스를 하기에는 굉장히 많은 나이인 건가.’ 댄스 오디션에 참여한 한 참가자의 말이 또다시 떠오르며 가슴이 쓰려온다.


  내가 세계일주에서 만난 댄서의 나이는 서른이었다. 하지만 “안녕하세요. 주원 씨 맞으시죠?”라며 카페로 들어오는 그의 얼굴은 전혀 서른 같지 않았다. 해맑은 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는 그에게 내가 묻고 싶었던 건 딱 하나였다. “이 나이에 춤을 추며 사는 게 힘들지 않아요?”



  그 친구의 이름은 주얼. 그가 춤을 추기 시작한 건 스물여섯이었다. 댄서는 보통 10대 또는 20대 초반에 춤을 시작해 20대 중반 늦으면 후반에 정점을 찍는다. 그런데 댄서로서 정점을 찍어야 할 나이에, 그는 춤을 시작했던 것이다. 남다른 각오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는 군대를 전역하고 깜깜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많았다. 그런 기간이 길어지자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어렸을 적 좋아했던 춤이나 한 번 다시 배워보자는 심정으로 학원에 등록했다. 어떻게 보면 불안한 마음이 그를 댄스 학원으로 이끈 것이다.

  댄스, 그중에서도 팝핀이라는 장르를 추는 동안에는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었다. 오로지 음악과 춤에 몰입할 수 있었고, 동작 하나하나를 어떻게 하면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뒤늦게 시작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4년 동안 댄스와 함께 한 얼이는 댄스로 인해 행복했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라고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했다. 그의 웃는 얼굴을 보며 나는 물었다. “댄스로 먹고 살기 쉽지 않을 텐데. 뭐 해 먹고살아?”


  내 나이 서른. 난 비영리로 꿈톡이라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대표라고 부른다. 그리고 꿈톡의 사정을 대충 아는 사람들은 항상 나에게 묻는다. “그래서 뭐 해 먹고살아요? 꿈톡 돈 안 될 것 같은데.” 이런 식상하고 귀찮은 질문을 수없이 받아온 나이지만, 나 또한 이게 가장 궁금했다. 아무리 좋아하는 걸 하면서 행복하게 산다고 해도 먹고사는 문제는 인간에게 떼놓을 수 없는 숙제니까. 그렇기에 그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민감할 수도 있는 질문에 그는 주저하지 않고 입을 뗐다.

  “나 지금은 대학교 우체국 총무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어. 이제 몇 달 있으면 계약 만료야. 24시간 춤만 추고 싶은데 내 밥그릇은 내가 책임져야 할 거 아냐. 그래도 지금 하는 일 할 만 해. 주말에는 쉬고, 방학에는 단축 근무하고 그러니까 여가 시간이 많거든. 그 여가 시간엔 맨날 춤추면서 살고 있다.”


대학교 우체국 총무팀 계약직 / 3달 뒤 계약 만료


  나이 서른을 맞이한 대한민국 남성이 가지고 있는 타이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엔 민망한, 누군가는 떳떳하지 못한 타이틀이다. 하지만 얼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처지를 말하는데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고 오히려 당당했다. 그리고 난 그가 당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난 스물아홉에 뒤늦게 은행에 취업했다. 하지만 부모님께 내 취업 소식을 말할 수 없었다. 다른 은행원들과는 다르게 가슴엔 배지, 허리엔 가스총을 차고 문 앞에서 손님을 맞이하며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난 은행원이 아닌, 청원경찰 일을 시작했다.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받아 저축도 좀 하고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노후도 좀 대비하며 살 수 있었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하루하루 죽어가는 느낌을 주는 곳이 아니라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직장을 찾고 싶었다. 스물여섯, 첫 직장에 들어가고 3년 동안 그런 직장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내가 운이 없었던 건지 그런 직장이 존재하지 않는 건지, 스물아홉이 되기까지 난 퇴사를 거듭했다. 그리고 난 모아둔 돈이 없었다.

  스물아홉의 나이에 알바를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카페 알바나 해볼까 했지만 카페에서는 여자를 선호했고 내 나이를 부담스러워했다. 한 커피숍 사장님은 “여긴 주원 씨가 들어와서 일할 곳이 아니에요.”라며 빨리 다시 취업 준비를 하라고 애써 조언까지 해줬다. 집으로 돌아와 덤덤히 구인구직 사이트를 뒤졌다.


  <오전 6시부터 오후 2시. 청소 구함>

  

  이 정도면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내 사정을 아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청원경찰이나 해봐라”

  처음 들어본 직업이었다. 알고 보니 은행에서 보안 경비를 하는 직업이었다. 가끔 가는 은행에 서있던 직원들을 떠올리며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구인구직 사이트에 ‘청원경찰’을 검색했다.


<근무시간 : 08시 30분 ~ 5시 30분. ※ 추가 근무 절대 없음>


‘추가 근무 절대 없음이라니. 이건 뭐지. 딱 나를 위한 일이잖아.’ 무엇보다도 내 여가시간이 가장 최우선 순위였던 나에게 딱 적합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스크롤을 쭉 내렸다.


<보라매동 국민은행 청원경찰 모집>


  “여기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은행이잖아!” 난 주저 없이 지원했고, 거침없이 면접을 봤고, 다행히도 합격을 했다. 큰 키, 큰 체격, 나쁘지 않은 인상 덕분이었는지 1:3(3명 중 1명)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5시 30분까지는 청원경찰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꿈톡에만 온전히 전념할 수 있겠구나.’

  이후로 난, 보라매동의 한 은행에서 청원경찰 일을 약 7개월 동안 하게 되었다. 내 스물아홉은 그랬었다.


은행 청원경찰 파견직. 1년 계약. 월급 143만 원


  나이 서른을 맞은 대한민국 남성이 가지고 있는 타이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민망한, 누군가에게는 부끄러운 타이틀이었다. 하지만 난 그렇지 않았다. 사실 청소부를 했더라도, 커피숍 알바를 했더라도, 어느 회사의 계약직으로 일을 했더라도 떳떳했을 것이다. 내가 이 일을 하는 목적과 이유는 또렷했다. 내 생은 스스로 책임지되 남는 시간엔 내 삶의 의미를 만들어주는, 내 삶을 숨 쉬게 하는 일에 바치기 위해서였다. 장시간 서서 근무하는 일이었기에 체력은 바닥을 쳤지만, 그 기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을 해냈다. 그리고 청원경찰 배지를 달던 7개월 동안 꿈톡은 정말 많이 성장했다.


  얼이는 자기가 현재 계약직으로 일하는 이유를 자기가 좋아하는 ‘춤’을 추기 위해서라고 당당히 말했다. 계약직 인생이라 앞으로도 직업은 또 바뀌겠지만 춤을 평생 출 것이라는 마음엔 의심이 없었다. 자신을 살아 숨 쉬게 하는 매개체는 서로 달랐지만 그것을 실현시키려는 삶의 태도는 나와 정말 비슷한 친구였다.

  하지만 난 이런 길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항상 불안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내 경험이 증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래도 우리 서른이잖아. 솔직히 좀 불안하지 않냐?”

  얼이가 대답했다.

  “물론 불안하지, 근데 불안한 걸 어떻게 할 순 없잖아? 피할 수도 없는 거고. 그냥 불안하다는 걸 인정하고 내가 갈 길 가는 거지. 나에게 행복은 춤이야. 난 춤을 출 때가 제일 행복하고, 날 행복하게 만드는 춤을 평생 추는 게 내 꿈이고. 그러니까 난 이걸 그냥 평생 하면 되는 거야.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 뭐.”




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부모님 때문에 못했어"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못했어"

"너무 늦은 나이라 포기했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하고 싶은 게 있어서,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고 있어"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도 하고 있어"

"내가 좀 늦은 건 알지만 그러니까 더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똑같은 어려움,

똑같은 좌절,

똑같은 환경.

하지만

누군가는 "~때문에" 포기하고,

누군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한다.

그리고

결과가 어떻든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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