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를 대표하는 기념품을 떠올리면 마트료시카 인형이 먼저 떠오르지만, 그 못지않게 러시아의 정체성을 담은 것이 있다. 바로 그젤(Gzhel) 도자기다. 눈처럼 하얀 바탕 위에 코발트 블루로 그려진 장미와 새, 풍경이 어우러진 찻잔과 주전자이다. 이 아름다운 청백자가 한때 완전히 사라질 뻔했고, 한 수용소 출신 학자와 극장 무대 디자이너의 집념으로 되살아났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차르의 약병에서 러시아의 상징으로
그젤은 모스크바 동남쪽 6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마을 이름이자,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도자기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지역은 14세기부터 풍부한 점토층으로 유명했다. 18세기에는 다채로운 색상의 마이올리카 도자기가 유행했고, 19세기에는 본격적으로 백자 제작 기술이 발전하며 그젤의 황금기가 찾아왔다. 당시 러시아는 중국과 유럽에서 비싼 값에 수입하던 백자를 자체 생산하게 되었고, 그젤은 ‘러시아 자기의 요람’으로 불리며 전국에 도자기를 공급했다. 흥미롭게도 청백자 스타일은 표트르 대제가 유럽 문물을 받아들이던 시기 네덜란드 타일의 영향을 받았다. 원래 그젤 도자기는 다채로운 색상이었지만, 19세기 후반부터 청색과 백색만을 사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20세기 초, 러시아 제국의 붕괴와 볼셰비키 혁명, 그리고 세계대전은 그젤 공예를 거의 절멸시켰다. 1918년 공장들이 국유화되고, 대량생산 체제로 전환되면서 수백 년간 전승되던 기술과 미감이 사라져갔다. 도공들은 정부 주문으로 화학 제품용 용기, 잉크병, 전력 공장용 자기 절연체를 만들어야 했다. 장식이 있는 고급 도자기는 더 이상 이윤을 내지 못했고, 장인들의 지식과 기술은 잊혀져갔다. 20세기 중반, 그젤 공예는 완전히 소멸 직전이었다. 마을에서는 여전히 도자기를 만들고 있었지만, 그것은 조악한 품질의 점토 장난감과 냉전 시대 소비재에 불과했다.
감옥에서 나온 학자와 무대 디자이너의 기적
그젤의 부활은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로 시작된다. 1940년대, 미술사학자 알렉산더 살티코프가 소비에트 수용소에서 석방되어 그젤로 보내졌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늙은 도공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듣고, 국립역사박물관 수장고에 잠들어 있던 19세기 그젤 도자기들을 연구하며 잃어버린 기술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살티코프는 극장 무대 디자이너이자 조각가였던 나탈리야 베사라보바를 영입했다. 베사라보바는 민속 무용 무대를 디자인하며 민속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박물관 수장고에서 오래된 그젤 작품들의 스케치를 무수히 그리며 전통 문양과 붓놀림을 분석했다.
그들이 만든 가장 중요한 업적은 ‘붓놀림의 ABC’였다. 이것은 그젤 특유의 붓질 기법을 체계화한 교육 매뉴얼로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들을 훈련시킬 수 있게 했다. 베사라보바는 붓의 양쪽에 서로 다른 양의 물감을 묻혀 단 한 번의 붓질로 음영과 깊이를 표현하는 ‘그림자가 있는 붓놀림’ 기법을 완성했다. 그젤의 상징인 장미는 단 3-4번의 붓질로 완성된다.
코발트의 마법: 검은색이 파란색으로
그젤 도자기의 가장 신비로운 점은 제작 과정이다. 도공은 하얀 도자기에 코발트 산화물로 그림을 그린다. 이때 코발트는 검은색으로 보인다. 도공은 검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며 완성된 모습을 상상해야 한다. 그림이 완성되면 투명한 흰 유약을 입히고 섭씨 1,400도의 고온에서 굽는다.
가마에서 나온 작품은 마법처럼 변해 있다. 유약은 투명하게 변하고, 검게 보이던 코발트는 선명한 파란색으로 탄생한다. 그젤의 장인들은 구운 후에 나타나는 20가지의 파란색 음영을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하늘색부터 짙은 남색까지, 모든 작품은 손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세상에 똑같은 그젤 장미는 하나도 없다.
한국의 청화백자와 공명하는 역사
그젤의 이야기는 한국 독자들에게 낯설지 않다. 조선시대 세조 때부터 만들어진 청화백자 역시 같은 코발트를 사용했다. 조선의 청화백자는 순수함과 절제라는 유교적 이상을 담았고, 러시아의 그젤은 민속적 생동감과 겨울의 냉철함을 표현했다. 두 전통 모두 20세기에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의 전통 도자기가 산업화와 일본식 도자기 제작으로 위협받았던 것처럼, 그젤 역시 소비에트 산업화로 거의 소멸했다. 그리고 두 전통 모두 집념 있는 장인들의 노력으로 부활했다.
오늘날 그젤은 다시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화 상품이 되었다. 마트료시카와 함께 러시아의 정체성을 상징하며, 전 세계 박물관과 수집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3달러짜리 기념품부터 수백 달러대의 예술 작품까지, 그젤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췄다. 그젤의 부활은 현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통 공예가 박물관 유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살아 숨쉬는 문화로 계승될 수 있다는 점이다. K-pop이 전통 음악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해 세계적 성공을 거둔 것처럼, 전통 공예 역시 그런 가능성을 품고 있다. 수용소에서 나와 흙을 만지던 살티코프, 극장 무대에서 민속을 연구하던 베사라보바, 이 두 사람은 전통이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창조적 행위임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