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포도주를 준비하는 기도

러시아 정교회 예배

by 이헌철
러시아 정교회의 성찬예식 자료:tcatmon.com/wiki

동이 트기 전, 러시아정교회의 작은 문이 열린다. 여명의 어스름 속에서 사제는 홀로 제단 옆 봉헌대 앞에 선다. 아직 신자들이 모이기 전, 예배가 시작되기 전, 이미 거룩한 준비는 시작되고 있다. 러시아정교회에서 '프로스코메디아'라 부르는 이 시간은, 성찬례의 서막이자 신앙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께 올리는 봉헌의 첫 순간이다. 이 시간은 단순한 준비 작업이 아니다. 빵과 포도주라는 평범한 재료들이, 기도와 경건함 속에서 성례의 재료로 변모하는 신비로운 여정이다. 사제의 손길 하나하나에, 그가 중얼거리는 기도 한 마디 한 마디에, 이천 년 기독교 전통의 무게와 오늘 이 자리에 모일 신자들의 기대가 함께 실려 있다.


공동체가 빚어낸 빵

<프로스포라> 그리스어로 ‘봉헌’을 뜻하는 이 빵은 성찬례의 중심이 되는 거룩한 음식이다. 그런데 이 빵을 만드는 과정부터가 이미 하나의 기도이자 봉헌이다. 밀가루, 효모, 소금, 물. 단 네 가지 재료만으로 만들어지는 이 빵에는 그 어떤 불순물도, 과한 장식도 허락되지 않는다. 순수함만이 하나님께 올려질 수 있다는 고백이, 재료의 단순함 속에 깃들어 있다. 러시아정교회에서 프로스포라를 굽는 이는 주로 교회의 평범한 신자들이다. 수도원에서는 덕망 있는 수도자에게 이 임무가 맡겨지지만, 본당에서는 여성 신자들이 돌아가며 이 일을 담당한다. 교회는 이들에게 깨끗한 양심과 경건한 마음가짐을 요구한다. 프로스포라를 굽기 전,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보고, 최소 여섯 시간 이상 금식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반죽을 시작한다.

두 개의 동그란 반죽을 겹쳐 만드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 위아래 두 층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상징한다.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인간이신 그분의 신비가, 이 작은 빵의 구조 속에 담겨 있다. 윗면에는 도장을 찍는다. 'IC XC NIKA' - '예수 그리스도가 승리하신다'는 그리스어 약자가 새겨진다. 단순해 보이는 빵 하나에, 신앙의 핵심 고백이 새겨지는 것이다. 러시아 전통은 다섯 개의 작은 프로스포라를 준비한다. 예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그리스 전통이 하나의 큰 빵으로 교회의 일치를 표현한다면, 러시아 전통은 다섯 개의 빵으로 그리스도의 풍요로운 은총을 기억한다. 같은 신앙, 다른 표현. 이것이 정교회 전통의 아름다움이다.

거룩한 도구들의 춤

이제 사제는 준비된 프로스포라들을 앞에 두고 기도를 시작한다. 그의 손에는 ‘창’이라 불리는 작은 칼이 들려 있다. 예사롭지 않은 이름이다. 이 칼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던 로마 병사의 창을 상징한다. 사제가 이 창으로 빵을 자를 때, 그것은 단순한 절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기억이고 참여이다.

첫 번째 프로스포라에서 사제는 정육면체 모양의 조각을 떼어낸다. '어린양'이라 불리는 이 조각이 바로 성찬례의 중심이 된다. 사제는 이사야 53장7-8절의 말을 읊조린다. “그는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구약의 예언이 이 순간 빵을 자르는 행위 속에서 현실이 된다. 어린양을 디스코스라 불리는 성반(성찬식에서 빵을 올려놓은 접시) 위에 놓은 후, 사제는 그 밑면에 십자 표시를 한다. 그리고 창으로 어린양을 찌른다. 이때 그는 요한복음 19장34-35절의 구절을 낭독한다.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천 년 전 골고다 언덕의 그 순간이, 지금 이 봉헌대 위에서 재현된다. 시간이 무너지고, 과거와 현재가 하나가 되는 신비로운 순간이다.

이제 두 번째 프로스포라에서 사제는 삼각형 조각을 떼어낸다. 성모 마리아를 기념하는 조각이다. 어린양 옆, 임금의 오른편에 왕비가 서듯, 이 조각은 어린양 곁에 놓인다. 세 번째 빵에서는 아홉 개의 조각이 떼어진다. 천사들과 선지자들, 사도들과 순교자들, 모든 성인들을 기념하는 조각들이다. 하늘의 교회가 이 작은 성반 위에서 형상화된다.

image.png 러시아 정교회 예배 러시아 정교회의 부활절 미사 모습ⓒ모스크바정교회 공식 홈페이지 출처 : 데일리투머로우(https://www.dailytw.kr)

이름을 부르는 기도

네 번째와 다섯 번째 프로스포라는 더욱 개인적이고 친밀한 의미를 지닌다. 사제는 신자들이 제출한 명단을 펼쳐 든다. 살아있는 이들의 이름이 적힌 붉은 종이와, 돌아가신 이들의 이름이 적힌 검은 종이를 들고 사제는 한 이름 한 이름을 부르며 작은 조각들을 떼어낸다. “주님, 당신의 종 이반을 기억하소서.” “당신의 종 마리아를 기억하소서.” 이 순간만큼 성찬례가 공동체적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는 때가 또 있을까. 각각의 작은 빵 조각은 한 사람의 영혼을 대표한다. 살아있는 이든 돌아간 이든, 그들 모두가 이 성반 위에서 어린양을 중심으로 모인다. 병든 할머니, 시험을 앞둔 손자, 멀리 떠난 아들, 오래전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 모두가 이 순간 그리스도 주위에 함께 모여 있다.

신자들은 프로스포라를 직접 가져오기도 한다. 자신의 손으로 구운 작은 빵과 함께, 기억해 주기를 원하는 이들의 명단을 사제에게 건넨다. 사제는 그 빵에서 조각을 떼어내고, 빵은 다시 신자에게 돌려준다. 이렇게 해서 준비 과정 자체가 신자들의 적극적 참여로 완성된다. 성찬례는 사제 혼자만의 행위가 아니라, 전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께 올리는 봉헌이 되는 것이다. 완성된 성반의 모습은 하나의 거룩한 풍경화와도 같다. 중앙에 어린양이 있고, 그 주위로 성모와 성인들, 살아있는 이들과 돌아간 이들의 조각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다. 이것은 단순한 배치가 아니라 하나의 이콘이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인 우주 전체, 천상과 지상의 교회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물과 포도주의 만남

빵의 준비가 끝나면 사제는 포도주를 준비한다. 붉은 포도주, 피를 상징하는 이 포도주는 반드시 발효된 것이어야 한다. 생명의 역동성, 변화의 힘이 그 안에 담겨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제(사제를 보조하는 성직자)가 포도주에 약간의 물을 섞는다. 이 단순해 보이는 행위에도 깊은 신학이 담겨 있다.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물은 그분의 인성을 상징한다. 물이 포도주에 섞이면 다시 분리할 수 없듯,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은 불가분하게 결합되어 있다. 또한 이 혼합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을 기억한다. 죽음의 순간조차 생명의 샘이 되신 그분의 신비를 이 물과 포도주가 증언한다.

그리스정교회는 여기서 한 가지 독특한 전통을 더한다. 성찬례 직전에 뜨거운 물을 조금 더 넣는 것이다. '제온'이라 불리는 이 뜨거운 물은 성령의 뜨거운 임재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차가운 죽음을 이기신 뜨거운 생명, 냉랭한 세상에 부어지는 성령의 불길이 이 작은 의식 속에 담겨 있다.

사제는 준비된 성반(聖斑,프로스포라를 담는 쟁반)과 성작(聖爵,성찬식에서 포도주를 담은 잔)을 향을 피운 향로로 감싼다. 향 연기가 피어오르며 봉헌물을 감싸는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한다. 그리고 사제는 베일로 이 모든 것을 덮는다. 아기 예수를 감쌌던 포대기처럼, 돌아가신 예수를 감쌌던 수의처럼, 이 베일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을 동시에 기억하게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시간

프로스코메디아가 끝나고 사제는 세 번 깊이 절한다. “복되시도다, 이와 같이 기뻐하시는 우리 하나님, 영광이 당신께.” 천사들이 베들레헴 밤하늘에서 외쳤던 그 찬양이 다시 울려 퍼진다. 실제로 정교회 전통은 이 준비 예식을 그리스도의 탄생과 연결시킨다. 봉헌대는 베들레헴 동굴을 상징한다. 빵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그분을 맞이하는 경외심으로 사제는 이 예식을 진행한다.

이 모든 준비가 끝나면 비로소 신자들이 모이고 공적인 성찬례가 시작된다. 하지만 신자들 대부분은 이 준비 과정을 직접 보지 못한다. 성소 안쪽 깊은 곳에서 조용히 진행되는 이 예식은 그리스도의‘숨겨진 시간들’을 상징한다. 나사렛에서 보낸 침묵의 세월, 광야에서의 고독한 기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과 나누셨던 교감, 그 모든 것이 이 보이지 않는 준비의 시간에 담겨 있다.

우리 시대의 봉헌

프로스코메디아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무엇보다 그것은 준비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우리는 너무 쉽게 결과만을 추구하고, 과정을 무시한다. 빠른 성과, 즉각적인 만족, 효율성의 극대화, 이런 가치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몇 시간씩 금식하고 기도하며 빵을 굽고 한 조각 한 조각 정성스럽게 자르며 이름을 부르는 이 의식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교회는 묻는다. 진정한 만남에 지름길이 있는가? 깊은 사랑에 속성 과정이 있는가? 하나님과의 만남,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성찬의 신비에 어찌 준비 없이 나아갈 수 있겠는가. 프로스코메디아는 우리가 거룩한 것을 맞이하려면, 우리 자신이 먼저 거룩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이 예식은 공동체의 참여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성찬례는 사제의 독점물이 아니다. 신자들이 구운 빵, 신자들이 제출한 명단, 신자들의 기도가 모두 합쳐져서 이 예식이 완성된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참여할 때, 교회는 비로소 그리스도의 몸으로 온전히 기능한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함께 모여 이루어낸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다.

무엇보다 프로스코메디아는 상징과 의미의 힘을 일깨운다. 단순한 빵 한 조각이 한 사람의 영혼을 대표한다. 물 한 방울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표현하고 있다. 창으로 빵을 찌르는 행위가 2000년 전의 십자가 사건을 현재화 한다. 우리는 너무 문자 그대로의 세계에 살고 있지 않은가. 모든 것을 실용성과 기능으로만 판단하고, 상징과 의미의 깊이를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러시아정교회의 성찬례 준비 과정은 우리에게 다른 눈을 열어준다. 평범한 것 속에서 거룩함을 발견하는 눈,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실재를 감지하는 영적 감각, 밀가루와 물로 만든 빵이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은, 단순한 맹신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물질 너머의 영적 실재를, 현재 속의 영원을, 유한 속의 무한을 보는 눈이다.

새벽,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간에 시작되는 프로스코메디아, 사제 혼자 조용히 빵을 자르고 포도주를 준비하는 그 시간은, 어쩌면 우리 각자가 삶 속에서 경험해야 할 시간이 아닐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해, 우리도 홀로 조용히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손으로 무언가를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고, 기도하는 시간. 그것이 바로 우리가 프로스코메디아로부터 배울 수 있는,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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