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태생적 운명이 이끈 통합의학의 길

‘통합의학을 추구하는 한의사’

by 고기완

사람들은 흔히 직업을 선택의 문제라고 말하지만, 나에게 한의학은 선택이 아닌 ‘운명’에 가까웠다. 결혼하신 지 6년 동안 아이가 없던 나의 부모님께서는 간절한 기다림 끝에 한약을 드시고 나를 얻으셨다는 이야기가 나의 유년 시절의 가장 익숙한 배경음악이었다. "너는 한약 덕분에 태어났다"는 어머니의 그 말씀 한 마디는 내 존재의 뿌리를 한의학에 내리게 했고, 자연스럽게 한의대를 거쳐 의료인의 길로 나를 이끌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마주한 의료의 현장은 평화로운 공존보다는 치열한 경계 긋기에 가까웠고 양방과 한방, 과학과 비과학이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견고한 성벽처럼 서 있었다. 현대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나에게 동양철학적 패러다임은 신선한 충격인 동시에 거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 두 세계는 영원히 평행선을 달려야만 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국내 1호 통합의학 석·박사 과정을 밟으며 ‘통합의학’이라는 화두를 붙잡았다.




의학은 ‘증명’의 도구가 아니라 ‘치유’의 수단

흔히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한다. 의료도 마찬가지이다. 환자 앞에서 양방의 논리가 맞느냐, 한방의 철학이 옳으냐를 따지는 것은 본질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앞에 고통받는 이 환자를 어떻게 하면 가장 빨리, 온전하게 낫게 할 것인가’이다.


서양의학은 기계론적 생명관에 입각한 해부학적 구조와 정밀한 수치를 통해 질병을 규명하는 데 탁월하다. 응급 수술이나 중환자 관리에서 보여주는 그 위력은 한의사인 나 역시 깊이 존중하고 인정하는 부분이다. 반면 한의학은 인간을 하나의 기계적 구조물이 아닌, 기능과 흐름, 정신과 몸이 연결된 유기체로 바라본다. 검사 수치상으로는 ‘정상’인데 환자는 죽을 만큼 괴로운 경우, 혹은 수술 후에도 가시지 않는 만성적인 불편함 앞에서 한의학의 관점은 새로운 치유의 열쇠가 된다.



나는 나 자신을 ‘통합의학을 추구하는 한의사’라고 정의한다. 이는 두 의학을 무분별하게 섞는 것이 아니고 환자에게 가장 유효한 도움을 주기 위해 모든 의학적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를 의미한다.



주치의는 환자의 길을 열어주는 안내자여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좋은 의료인은 단순히 약을 처방하고 침을 놓는 기능인을 넘어, 환자의 삶 전체를 조망하는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1차 진료기관으로서 내가 지금 근무하는 한의원의 역할은 명확하다. 한방 치료로 최선의 효과를 내되, 환자의 상태에 따라 서양의학적 검사가 필요하다면 주저 없이 권하고 상급 의료기관으로 연계할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내 학문만이 옳다는 아집에 빠져 환자를 붙잡아두는 것은 의료인의 도리가 아니며 환자가 정말 나을 수 있도록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하고, 치료 후의 재활과 삶의 질까지 책임지는 주치의 마인드. 그것이 내가 한의원을 운영하며 스스로에게 매일 던지는 약속이다.



미지의 영역을 향한 겸허한 탐구


한의학이 비과학적이라는 시선이 존재함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현재의 과학이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존재 가치를 부정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미신이라 치부되던 현상들이 현대 과학의 발전과 함께 증명되듯, 우리 몸의 미세한 생체 흐름과 정신적 에너지 또한 머지않아 새로운 언어로 해석될 날이 올 것이다.


요한 것은 모르는 것을 없다고 단정 짓는 오만이 아니라, 생명의 신비 앞에서 겸허하게 탐구하는 자세이다. 나는 한의학이라는 소중한 유산을 지키면서도, 현대 과학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환자 중심의 진료를 실천하고자 한다.


결국 의료의 종착역은 ‘사람’이다.


한의학은 내 삶의 시작이었고, 통합의학은 나의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환자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경계도 기꺼이 허물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그것이 내가 가고자 하는 진정한 통합의학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