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두를 타는 한의사? 보이지 않는 연결을 타고 있다.

비침습 무통침을 연구하다.

by 고기완


나는 한의사로 작두를 타야만 하는 숙명인가?

무당이 서슬 퍼런 칼날 위에 서는 것 같은 진료실의 긴장감, 그리고 그 서늘한 경계 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치유의 순간들이 있었다. 35년이라는 긴 세월을 임상 현장에서 보낸 베테랑이 왜 아직도 그런 위태로운 섬뜩한 비유를 빌려와야 하는지 누군가는 물을지 모르지만 오늘 나는 그 '작두' 너머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사실 내가 타는 것은 날카로운 쇠붙이가 아니라, 환자의 몸과 마음, 과거와 현재, 그리고 기술과 전통 사이의 보이지 않는 연결 위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을 표현하는 의미 있는 용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계 위에서 발견한 보이지 않는 지도

한의학에서 말하는 '기(氣)'나 '경락'은 현재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부학 책을 아무리 뒤져도 그 실체는 손에 잡히지 않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전통 침법인 사암 스님의 사암침법(舍岩鍼法)과 사암침을 진단하기 위한 육기침법(六氣鍼法)의 원리에 따라 환자의 맥을 짚고 혈자리를 찾아낼 때, 나는 명확한 환자를 위한 <치료 지도>를 보게 된다.


환자가 호소하는 통증은 그저 결과일 뿐이며 그 통증의 뿌리는 때로 전혀 다른 곳에 뻗어 있다. 위장이 아픈 환자의 원인이 간의 기운이 맺힌 데에 있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환자의 열쇠가 신장의 차가운 기운에 있을 때, 한의사는 그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내야 한다. 이 과정은 마치 안개 자욱한 절벽 위에서 외줄을 타는 것과 같으며 조금만 치우쳐도 길을 잃게 되기에 35년의 환자를 통한 임상 경험이 있다 할지라도 매일매일 마치 그 외줄 위에서 평형을 잡는 법을 익히는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작두를 탄다는 것은, 바로 이 복잡하고 정교한 생명의 연결망 속에서 단 하나의 접점을 찾아내려는 치열한 나의 사투를 의미하기도 하다.



고통을 덜어주는 '부드러운 기술'이라는 연결

한의학적 전통 치료는 절대로 생명력 없이 박제된 의학 박물관의 먼지 묻은 쾌쾌 묵은 유물이 아니다. 나는 오랫동안 침을 놓아왔지만, 동시에 침의 통증을 두려워하는 환자들의 마음 또한 깊이 들여다보았다.

"원장님, 제발 침을 안 아프게 맞을 순 없을까요?"

이 사소한 환자의 질문이 나를 <비침습 무통 침>과 <다극 자석> 같은 현대적 디바이스의 세계로 이끌었다.


전통적인 사암침법의 원리를 현대적인 비침습 기기에 이식하는 과정은 내 한의사 인생의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금속침이 직접 살을 뚫지 않아도, 자기장과 미세한 자극이 경혈의 에너지를 깨우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구'가 아니라 '연결의 방식'임을 수많은 임상 경험에서 터득하고 알게 되었다.


환자가 느끼는 침에 대한 공포를 현대적 과학 기술로 완충하고, 그 자리에 치유의 에너지를 채워 넣는 것이며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미래 통합의학의 모습이었다. 구식과 신식의 대립이 아니라,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핵심 연결고리를 찾는 과정이었고, 그것이 내가 걷고 있는 최근의 두 번째 작두 타기이다.



데이터와 직관, AI가 그리는 미래의 한의학

이제 나는 또 하나의 거대한 연결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인간의 직관과 인공지능(AI)의 데이터다.

많은 이들이 AI가 한의사를 대체할 것인가를 묻지만 내가 보는 미래는 다르다. 한의학은 본래 '관계의 학문'이기에 개별적인 증상을 파편화하지 않고,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파악하기에 이는 AI가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패턴 인식과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수십 년간 쌓아온 임상 경험과 한국 전통 사암침법의 정교한 논리가 AI의 방대한 데이터와 만날 때, 우리는 그동안 '감'으로만 느꼈던 그 보이지 않는 연결을 수치로, 시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통합의학박사로서 내가 꿈꾸는 미래는, 가장 오래된 지혜가 가장 앞선 첨단 기술의 손을 잡고 환자에게 다가가는 세상이다.




여전히 나는 작두 위에 서 있다

사람들은 묻는다. 60대의 나이에, 35년의 경력을 가진 원장이 왜 여전히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AI를 공부하며 책을 쓰려 하느냐고. 나에게 진료는 여전히 매일매일 작두 타기이기 때문이다.


환자 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는 다시 그 서슬 퍼런 칼날 위에 선다. 그 칼날은 나태함을 베어내고, 고정관념을 깎아내며, 오로지 환자의 생명력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내가 타는 작두는 이제 더 이상 위태롭지 않으며 그것은 과거의 지혜와 미래의 기술, 그리고 고통받는 환자의 삶을 잇는 가장 견고한 다리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날 선 비난으로 조롱할지라도, 나는 오직 환자의 고통을 끊어내는 ‘치유’라는 기적을 위해서 기꺼이 그 칼날 위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