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쌓인 역사와 권력
돌길은 낭만이 아니라, 시간이 눌러놓은 자리다
로마를 걷거나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오래된 돌길과 마주치는 순간이 있다. 처음에는 그저 옛날 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둥글게 닳은 돌, 군데군데 패인 틈, 길가에 남은 무너진 벽과 무덤들은 여행자의 눈에 낭만적인 유적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로마의 길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다. 그것은 몇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이고,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기쁨과 두려움, 승리와 패배, 충성과 처벌이 반복해서 밟고 지나간 자리다.
그 대표가 아피아 가도다. 이 길은 기원전 312년에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로마에서 카푸아까지 약 212킬로미터를 잇는 군사 도로였고, 이후 브린디시까지 연장되며 로마와 동방 세계를 잇는 거대한 축이 되었다. 전체 폭은 대체로 약 6미터 규모로 설명되며, 고대의 길이라고 하기에는 놀라울 만큼 본격적인 간선로였다. 로마인들이 이 길을 ‘길의 여왕’이라 부른 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로마는 성벽 안에 틀어박혀 제국이 된 나라가 아니라, 길을 내고 사람과 병력과 명령을 이동시키며 팽창한 나라였다.
돌 하나하나에도 로마의 기술이 남아 있다
아피아 가도의 돌은 그냥 거칠게 흩어놓은 돌이 아니다. 표면에는 단단한 현무암 계열의 포장석이 놓였고, 그 아래에는 자갈과 작은 돌, 결합층이 여러 겹으로 쌓였다. 브리태니커는 이 길이 약 6미터 폭의 약간 볼록한 노면으로 만들어져 배수를 고려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지금 남아 있는 일부 구간의 돌길을 보면, 단지 오래되었다는 감상보다 먼저 “어떻게 이런 길이 아직도 남아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 돌의 모양은 일정하지 않지만, 맞물리게 놓인 구조와 단단한 기초층 덕분에 길의 형체가 오랫동안 버텨온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내구성이 아니다. 로마는 길을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제국 전체의 흐름을 안정적으로 떠받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몇십 년만 지나도 갈라지고 패이는 현대 도로를 떠올리면, 이 길은 로마라는 국가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로마는 허술하게 연결하지 않았다. 오래 지배하기 위해 오래 버티는 길을 만들었다.
이 길 위로 병사와 장군과 처형된 자들이 지나갔다
아피아 가도가 인상적인 이유는 기술 때문만이 아니다. 이 길 위를 지나간 사람들의 시간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아피아 가도는 로마 군단이 남쪽으로 진군하던 길이었고, 무장한 병사들이 줄지어 걸어가던 길이었으며, 보급 마차와 전령이 서둘러 오가던 길이었다. 지금은 닳아 있는 돌 위로, 한때는 군화와 바퀴와 짐승의 발굽이 반복해서 부딪혔을 것이다. 이 길은 로마가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에 그치지 않고, 그 영토를 실제로 움직였던 제국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길에는 영광만 남아 있지 않다. 공포도 함께 남아 있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 진압된 뒤, 크라수스가 반란군 포로 6천 명을 아피아 가도변에 십자가형으로 처형했다는 기록은 너무나 유명하다. 로마에서 카푸아로 이어지는 길가에 처형된 사람들이 길게 매달려 있었다면, 이 길은 단지 군사 도로가 아니라 제국이 공포를 전시한 무대이기도 했던 셈이다. 로마의 도로는 병력을 빠르게 움직이게 했고, 동시에 로마의 질서를 거스른 자들에게 본보기의 공간이 되었다. 잘 닦인 길은 효율적이었지만, 그 효율은 언제나 권력의 차가움과 함께 갔다.
제국은 사라졌지만, 그 움직임의 방식은 돌 위에 남았다
지금의 아피아 가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풍경으로 남아 있지 않다. 어떤 구간은 현대 도시 속에 묻혀 있고, 어떤 구간은 자동차가 오가는 현재의 길과 겹쳐 있다. 그러나 포르타 산 세바스티아노를 지나 유적과 고분이 이어지는 대표 구간에 들어서면, 비로소 오래된 돌길이 지닌 고요와 무게가 살아난다. 그때 비로소 이 길은 단순한 도로가 아니라, 시간이 층층이 쌓인 장소로 다가온다.
그 길 위에 서 있으면 묘한 감각이 생긴다. 지금 내 눈앞에는 조용한 돌길만 있는데, 머릿속에서는 계속 움직임이 들려오는 것이다. 무거운 장비를 멘 병사들의 발걸음과 마차 바퀴가 돌을 긁는 소리, 승리와 패배의 행렬이 한꺼번에 겹쳐진다.
로마의 보르게세 공원이 권력이 풍경의 얼굴로 남은 장소였다면, 아피아 가도는 권력이 움직임의 형식으로 남은 장소다. 정원은 머무는 권력을 보여주고, 길은 이동하는 권력을 보여준다. 제국은 사라졌지만, 제국이 세상을 다루던 방식은 오래된 돌 위에 아직도 남아 있다. 로마의 돌길은 단순한 옛길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 지나간 자국이며, 시간이 아직도 완전히 지우지 못한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