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Bar에서는 삶이 흐른다

일상과 문화가 머무는 공간

by 문명의 해석

바(Bar)는 왜 이렇게 많을까

한국에서 ‘바’라고 하면 대개 밤의 공간이 먼저 떠오른다. 술을 마시는 곳, 오래 머무는 곳, 하루가 끝난 뒤에 들어가는 곳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bar는 전혀 다른 뜻으로 살아 있다. 이곳에서 bar는 술집이라기보다, 사람들이 하루를 지나가며 잠깐씩 걸쳐 가는 생활의 무대에 가깝다. 이탈리아 정부가 전통적인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문화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후보로 추진해 왔다는 사실도, 이 문화가 단순한 음료 습관을 넘어 하나의 생활문화로 여겨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처음 이탈리아 거리를 걸으면 bar가 유난히 많다는 생각부터 든다. 처음에는 이상하다. 이렇게 술집이 많아도 되나 싶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 보면 바로 알게 된다. 병보다 먼저 에스프레소 머신이 보이고, 취한 사람보다 출근길에 잠깐 들른 사람들이 먼저 보인다. 많은 이들이 의자에 깊이 앉지 않고 카운터 앞에 서서 커피를 마신다. 그러니 이탈리아의 bar는 술보다 커피가 먼저 떠오르는 공간이고, 오래 머무는 곳이 아니라 하루의 흐름을 잠깐 끊어 주는 곳이라고 말하는 편이 훨씬 정확하다.


베네치아에서 시작된 커피의 길

이 장면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커피는 상인과 항해자들을 통해 유럽으로 퍼졌고, 이탈리아에서는 베네치아가 그 중요한 입구 가운데 하나였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백과사전 Treccani에 따르면 유럽의 초기 커피 상점은 1640년 베네치아에 열렸고, 그 뒤 커피를 마시는 공간은 단지 음료를 소비하는 장소를 넘어 사람과 정보가 오가는 장소로 발전했다. 그러니 오늘날 이탈리아의 bar 문화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베네치아의 상업과 교류의 역사 속에서 일찍 뿌리내린 커피 문화의 후손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이탈리아의 커피 공간이 처음부터 오늘 우리가 보는 bar와 완전히 같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커피를 둘러싼 장소가 사람과 생각을 만나게 하는 공간이었다는 사실은 오래되었다. 1764년 밀라노 계몽주의자들이 펴낸 잡지의 이름이 아예 『Il Caffè』였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커피는 단지 기호품이 아니라, 대화와 논쟁, 사교와 공론의 매개였다. 그래서 오늘날 이탈리아의 bar를 보고 있으면, 이곳이 단지 카페도 아니고 단지 술집도 아니라는 사실이 더 분명해진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만남의 공간이 생활 속으로 더 짧고 더 깊게 스며든 형태에 가깝다.


거리에서 이어지는 생활

내가 이탈리아에서 본 생활도 꼭 그랬다. 퇴근 시간 무렵이면 사람들은 큰 슈퍼마켓만 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길가의 작은 가게들, 과일 가게, 정육점, 채소 가게 같은 곳을 지나며 그날 먹을 것들을 조금씩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봉지에 담긴 양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흔히 보듯 냉장고를 가득 채워 두고 며칠치, 일주일치를 비축하는 생활과는 확실히 결이 달라 보였다. 그날 저녁이나 길어야 한두 끼 정도를 생각하며 사는 듯한 생활이었다.


이 장면을 보다 보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생활을 집 안에 모두 저장해 두기보다 바깥으로 계속 흘려보내는 데 더 익숙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필요한 것을 거리에서 사고, 사람을 거리에서 만나고, 잠깐 멈추는 일도 거리 위에서 해결한다. 그런 생활 방식에서는 bar가 단순한 커피 가게가 아니라, 거리 생활의 리듬을 이어 주는 중심점이 된다. bar가 많아서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런 생활 방식이 살아 있기 때문에 bar가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대목은 제 관찰이지만, 앞서 본 이탈리아 커피 공간의 역사와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짧게 멈추고 다시 움직이는 사람들

이탈리아의 bar 문화를 말할 때 자주 나오는 것이 al bancoal tavolo의 차이다. al banco는 카운터에 서서 빠르게 마시는 방식이고, al tavolo는 자리에 앉아 마시는 방식이다. 이것은 단순한 자세의 차이가 아니다. 이탈리아 외식업 단체 FIPE는 카운터에서의 소비와 테이블 서비스가 같은 행위가 아니라고 분명히 구분해 왔다. 그래서 같은 에스프레소라도 카운터에서 마시는 것과 자리에 앉아 마시는 것은 다른 서비스로 취급되고, 가격도 달라질 수 있다. 이탈리아의 bar는 애초에 오래 머물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짧게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게 하는 공간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는 음료이기 전에 몸에 익은 동작에 가깝다. 들어간다. 선다. 마신다. 한마디 한다. 나간다. 이 짧은 순서가 하루에 몇 번씩 반복된다. 중요한 것은 커피의 양이 아니라, 그 커피를 둘러싼 시간의 밀도다. 오래 머물지 않지만,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도 아니다. 잠깐 멈추지만, 그 짧은 멈춤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확인하고, 하루의 리듬을 다시 맞춘다. 그래서 bar는 커피를 파는 공간인 동시에 생활의 리듬을 조율하는 장치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문화가 국가 차원에서 하나의 의례로 다뤄지는 것은 매우 이탈리아적이다.

회사 안에서 보는 커피 자판기 앞 풍경도 사실 같은 맥락에 있다. 출근해서 조금 일하다 보면 사람들이 하나둘 자판기 앞으로 모인다. 처음에는 두세 명인데, 어느 순간 보면 제법 여러 사람이 모여 있다. 누군가는 자기 것만 뽑지 않고 옆 사람 것까지 눌러 주고, 누군가는 농담을 던지고, 누군가는 웃고, 또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 겉으로만 보면 비효율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보고 있으면, 그것이야말로 이탈리아식 사회성의 한 방식처럼 보인다. 이들은 관계를 일 바깥으로 완전히 밀어내지 않는다. 짧게 멈추고, 짧게 이야기하고, 다시 일로 돌아간다. 거리의 bar와 회사의 커피 자판기 앞은 서로 다른 장소 같지만, 사실은 같은 생활 감각 위에 놓여 있다. 이 부분은 내 해석이지만, 앞서 본 bar의 구조와 잘 이어진다.

느슨해 보이지만 강한 나라

이쯤 되면 저는 자꾸 bar를 넘어 이탈리아라는 나라 전체를 생각하게 된다. 같이 일해 보면 사람들은 꽤 자주 멈춘다.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길에서도 쉽게 걸음을 늦춘다. 퇴근길에는 큰 장바구니보다 작은 봉지 하나를 들고 과일 가게와 정육점과 채소 가게를 지나 집으로 돌아간다. 겉으로만 보면 이렇게 여유롭게 살아서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나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바로 그 나라가 세계적으로 보면 예술과 디자인, 패션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갖고 있고, 제조업에서도 결코 가벼운 나라가 아니다. 이탈리아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61건을 보유하고 있고, 유로스타트 자료에 따르면 2024년 EU 판매 생산액 기준으로 전체의 14퍼센트를 차지해 독일 다음 비중을 기록했다. 느슨해 보이는데도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다. 바로 그 점이 이탈리아를 이상하고도 강한 나라로 보이게 만든다.


물론 이것을 단순히 “수다를 많이 떨어서 이탈리아가 강하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게 쓰면 과장이다. 하지만 저는 이 장면들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탈리아의 힘은 혹시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빠름과 장시간 노동, 끝없는 축적의 방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 생활의 리듬, 하루를 잘게 끊어 다시 이어 붙이는 감각 같은 것이 이 나라의 깊은 저력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bar는 그 질문을 가장 작고 선명하게 보여 주는 공간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거기서 대단한 일을 하지 않는다. 그저 서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한마디를 나누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그런데 어쩌면 바로 그런 짧고 반복된 접촉이 이 나라를 오래 버티게 만드는 생활의 근육인지도 모른다. 이 대목은 어디까지나 나의 해석이다. 다만 앞서 본 역사와 제도, 그리고 오늘의 생활 장면이 그 해석을 받쳐 준다.


bar가 보여 주는 이탈리아

저녁이 되면 bar는 또 다른 얼굴을 보인다. 아침에는 에스프레소의 공간이던 곳이 저녁에는 aperitivo, 곧 저녁 식사 전에 가볍게 한잔 하며 입맛을 여는 시간의 공간으로 바뀐다. 그러니 이것도 단순히 술을 마시는 행위라고만 보면 좁다. 이탈리아의 bar는 아침에는 각성의 공간이고, 낮에는 짧은 숨 고르기의 공간이며, 저녁에는 식사 전 사람과 시간이 느슨해지는 공간이 된다. 하나의 장소가 하루 안에서 여러 역할을 맡는 셈이다.


결국 이탈리아의 bar를 한국어의 ‘바’로 그대로 번역하면 자꾸 어긋난다. 한국에서 바가 대체로 하루가 끝난 뒤 들어가는 공간이라면, 이탈리아의 bar는 하루를 살아가는 도중에 수시로 들르는 공간이다. 한국의 바가 체류의 장소라면, 이탈리아의 bar는 통과의 장소다. 그러나 그냥 스쳐 지나가는 장소는 아니다. 그 짧은 통과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확인하고, 하루의 리듬을 맞추고, 도시의 생활을 이어 간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bar는 술집이 아니다,라고만 말하면 아직 충분하지 않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곳은 생활이 잠깐씩 자기 얼굴을 드러내는 자리다.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들여온 커피의 역사와, 공적 사교 공간으로서의 caffè 전통과, 오늘도 카운터 앞에서 서서 잔을 비우는 사람들의 몸짓이 그 안에서 하나로 이어진다. 이탈리아의 bar는 커피를 파는 곳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하루가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는 생활의 무대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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