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청바지가 필요하다. 가장 자주 입는 청바지를 당분간은 입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분간은'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의지와 결심의 발로인데, 말 그대로 당분간만 맞지 않기를 바란다.
내 몸에 아주 잘 맞는 몇 안 되는 옷이니 말이다. 그토록 좋아하는 청바지를 입게 될 수 없음에 대해서는 차차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자발적으로 글 쓰는 자리에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늘 글이 쓰고 싶었지만 내게 속한 일 같지 않아서. 평생 직업으로 글 쓰는 일을 했다고 해서 '글을 쓰는 삶을 살아도 좋다'라는 당위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으니까. 직업이라는 타이틀을 배제한 온전한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없다는 사실은 쓰는 동력을 자꾸만 고갈시켰다. 어쩌다 한 번씩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겠어!'라는 결심에 뭔가 끼적이려 하면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져 버렸고.
쓸 수 없는 병에 걸린 것이겠지. 체념하면 일을 잘할 수 있었다.
기자, 에디터, 편집자. 직장 생활 10여 년 동안 본명을 대신해 온 내 이름이다. 이 세 개의 직업은 일의 본질에 있어 아주 유사한 듯하지만 대척점에 있는 듯 판이하다. 업무 협력의 과정, 업무 강도, 직업 생태계와 문화가 다르며, 가벼운 예로는 어떤 명칭으로 불리느냐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기도 한다.
직업명으로 불리지 않는 스스로에게 적응하는 일은 완전히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 까닭은 내가 누구였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연히 무엇이 되어 생활해 온 것이 그대로 삶으로 굳어버림으로써 내 삶은 무엇을 빼면 시체인 인생이 되었다.
지난여름 이사를 했다. 낡은 집을 고쳐 입주해야 했기에 얼마간 호텔 생활을 해야 했다. 호텔에서 한 달 동안 생활한다면 비용이 상당하게 느껴질 텐데, 운 좋게도 호텔의 용도 변경(?) 프로모션 기간과 맞아떨어져 특가(!)에 머물 수 있었다.
광화문 한복판에 자리한 오래된 호텔은 객실 일부를 공유 주택으로 전환한 사업을 막 시작한 차였고, 그 덕분에 공유 주방과 공유 세탁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호텔 생활 단점을 해결할 수 있었다. 문제는 공용 세탁기 사용이 치열하다 보니 집에서처럼 색깔별 구분 빨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였는데... 그 때문에 남편의 러닝셔츠는 모두 회색으로 물들어버렸다.
과탄산소다와 표백제를 잘만 사용하면 검거나 누렇게 변한 흰옷이 새것처럼 하얘진다기에 모처럼 빨래 실험에 나서 보았다. 과연 이게 정말로 희어질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러닝셔츠의 운명에 개입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대낮에 태평하게 빨래하는 생활.무엇으로도 불릴 수 없는 실직자의 생활은 이제 막 한 달을 막 넘겼다.
무엇으로 설명되던 삶에 제동을 건 일생일대의 사건이 있었고, 나는 최초로 원치 않는 사직을 했다. 그런데 이 하릴없음이 사직의 이유가 되는 게 제법 좋았다. 누구를 미워해서도, 과도한 업무가 징그러워서도 아닌 자연스러운 퇴사였기 때문이다. 길고도 막막한 무명의 하루를 견디는 일은 불안과의 싸움이기에 쉽지만은 않지만, 그 덕분에 흰 창 앞으로 나올 용기를 발휘한 것도 사실이니까.
새로운 청바지가 필요하다. 예뻤으면, 귀여웠으면, 편했으면, 잘 어울렸으면. 최애 청바지를 다시 입게 되는 그날까지 새로운 청바지를 숱하게 갈아입으며 나는 쓸 것이다.
쓰고 싶은 마음. 새로운 청바지를 찾겠다는 마음이 이렇게 불통을 튀길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