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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 Mar 05. 2024

육전 부치기

사진을 찍는 걸 또 깜박했지만 오늘 저녁도 요리하는 데 성공했다. 매일 한 끼 식사를 꼭 해내고 싶다는 마음은 지켜지고 있다.


마켓컬리에서 항상 구입하는 육전용 고기와 우연히 전 부치기에 써먹었던 프랑스산 밀가루를 샀다. 이 두 가지 재료가 내게는 필승 조합이기에. (다른 재료로 시도해보지도 않았다.)


요리를 하기까지 얼마나 귀찮았는지 모른다. 아침에 선언하듯 ‘육전을 해주겠다’고 남편에게 말했지만 막상 저녁이 닥쳐오니 정말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또 시켜 먹을까 싶었는데, 이미 너무도 빈번하게 배달음식을 먹었던 터라 밖의 음식은 무엇이 됐든 먹고 싶지가 않았다. 배달앱만 봐도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어떻게든 의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보상이 필요했다. 좋아하는 매실 에이드를 한 잔 만들어 벌컥 벌컥 마시기 시작하니 육전용 고기를 냉동고에서 꺼낼 수 있게 됐다. 국 끓여둔 것도 없어서 가볍게 미소국이라도 끓일까 하는 마음도 생겼다. 냉장고에 시금치 한 단이 있어서 건더기가 전혀 없는 미소국을 만들지 않을 수 있게 돼 다행이었다.


키친타올에 육전용 고기를 하나씩 꺼내 올렸다. 육전용 고기는 얇기에 금방 해동된다. 금세 녹은 고기에 후추를 뿌린다. 소금 간은 하지 않는다. 밀가루가 제법 간간하기에 얇은 고기에 소금을 올리면 지나치게 짤 것 같다. 조금은 슴슴한 전을 만들고 싶다.


파전이나 갓김치 같은 곁들임 메뉴를 만들거나 준비했으면 좋았겠다 싶다. 대파만 있었어도 어떻게 해봤을 것 같은데 대파가 동났다. 갓김치도 없고. 아쉬운 대로 지난 주일에 엄마가 주신 깍두기를 꺼냈다. 요즘엔 반찬을 통채로 먹지 않고 덜어 먹는다. 설거지가 늘어나지만 그래도 예쁘게 먹는 습관이 우리의 하루를 더 소중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육전은 성공적이었다. 부드럽고 슴슴하게 원하던 대로. 남편이 아주 맛있게 먹어주어 기쁘다. 시금치 된장국(미소보다 된장을 더 많이 넣게 되었다)도 제법 맛있게 만들어졌다.


하루를 망치기 십상인 무직자에게 작은 성취는 하루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싶은 의지를 연장해준다. 오늘의 육전과 시금치 된장국이 그러하다. 내일은 사진을 남기는 것까지 해볼 참이다. 내일의 허들은 장보기다. 아침에 몸을 일으켜 내일 해낼 메뉴의 재료를 구비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오늘의 성공이 만들어낸 에너지가 내일 아침까지는 이어지리라 믿는다. 


정 어렵다면 매실 에이드 한 잔을 마시는 일에 기대를 걸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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