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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 Mar 07. 2024

something about nobody


『아무도 아닌』은 황정은의 네 번째 소설집으로, 2014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 「누가」, 2014년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 「상류엔 맹금류」, 2013년 젊은작가상 수상작 「上行」을 비롯해 총 여덟 편의 단편 소설이 담겨있다. 보통의 소설집과 차이가 있다면, 소설집 제목이 표제작이 아니라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대개 소설집을 대표하는 수록작의 제목을 단행본 전체의 제목으로 삼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그 점이 어쩐지 더 이 소설집의 존재와 퍽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上行」에서 시작해 「복경」으로 끝나는 이 소설집은 정말 ‘아무도 아닌’이라는 표현의 본질을 관통하는 작품들로 엮어져있다. 


“아무도 아닌,을 사람들은 자꾸 아무것도 아닌,으로 읽는다”로 시작하는 『아무도 아닌』의 서문과 가장 맞닿아 있는 이야기는 「양의 미래」다. 「양의 미래」는 “아무도 아니”라는 문장을 여러 번 등장시킴으로써, 이 소설집의 표제작처럼 느끼게 한다. 소설 속 사회에서 아무도 아닌 주인공 ‘나’의 이야기는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무엇’이 되지 못한 서글픔으로 끝난다. 그가 지나간 자리들, 그가 만난 사람들의 묘사는 자세하지만, 자신에 대한 설명은 삼간다. 자신이 아무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모든 존재들이 ‘지금 이 순간’을 넘기면 그대로 ‘아무도 아닌’ 것이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마지막은 새드 엔딩’이라는 것을 기실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황정은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개 소시민이다. 사회적 주류가 되지 못한 사람들, 단 한 번도 제 힘으로 주인공이 되어 본 적 없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곧 우리들의 이야기이자 내 친구와 가족과 먼 미래의 내 자식이나 그들 친구들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우리는 쉽게 “그애가 누군데요? 아무도 아니고요, 나한텐 아무도 아니라고요”라고 말하곤 한다. 


힘이 없는 존재들의 무력감은 전이되고, 체화된다. 이 서늘한 사실은 소설을 통해 고스란히 묘사된다. 이로써 삶의 모든 희망을 꺾인다고 말하는 것은 이 소설의 존재 가치는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현실 고발적인 소설은, 사회의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더불어 훼손된 자존감을 회복하는 일을 가능케 한다. 처참한 마음으로 한 편 한 편의 소설을 읽다 마지막 장에 다다랐을 때, 허탈함보다 선명히 눈을 뜨는 이성과 그 안의 자기반성을 명징히 깨닫는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황정은의 소설은 자정작용을 돕는 훌륭한 촉매다. 헬조선에도 희망이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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