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나는 왜 우리 집에서 이방인인가

이건 누가 할래? (기획노동)

by 곽작가

집에 있는데 집에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본 적 있는가.

몸은 거실 소파에 앉아있다. 가족들이 주변에 있다. 저녁밥도 같이 먹었다. 그런데 묘하게 겉도는 느낌이 든다. 대화에 끼어들기가 어색하다. 아이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배우자가 이번 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른다. 이 집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체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이방인이다. 내 집에서.


이 감각은 어디서 오는가.

가정은 살아있는 시스템이다. 그 안에는 흐름이 있다. 돈의 흐름, 일정의 흐름, 관계의 흐름, 감정의 흐름. 이 흐름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가정의 안쪽에 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가 어떤 상태인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다. 이 사람에게 가정은 살아있는 공간이다.

반대로 이 흐름의 바깥에 있는 사람은 가정의 겉면만 보게 된다. 밥이 차려져 있고, 청소가 되어있고, 일상이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 뒤에서 무슨 생각이 오고 갔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결과만 보고 과정을 모른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겉돌게 된다.

기획노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집안일을 덜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정의 운영 정보에서 소외된다는 의미다.


관계가 그렇다.

관계는 공유된 맥락 위에서 깊어진다. 같은 것을 걱정하고, 같은 것을 기뻐하고, 같은 것을 준비하는 경험이 쌓일 때 두 사람은 진짜 파트너가 된다. 하지만 기획노동이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어 있으면 이 공유된 맥락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사람은 이번 달 생활비가 빠듯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모른다. 한 사람은 아이가 요즘 친구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모른다.

같은 집에 살지만 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다. 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다른 현실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 간극이 쌓이면 어느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설명하기 어려운 거리감이 생긴다.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다. 싸운 것도 아니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깊은 이야기가 안 된다. 같이 있어도 따로 있는 느낌이 든다.

그게 이방인의 감각이다.


아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일상을 기획하는 사람은 아이를 안다.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요즘 어떤 것에 관심이 생겼는지, 어떤 친구와 어울리는지. 이것들은 아이의 일정을 챙기고, 준비물을 챙기고, 상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쌓이는 정보다.

기획노동 밖에 있는 사람은 이 정보가 없다. 아이와 같은 공간에 있어도 아이의 맥락을 모른다. 그래서 대화가 표면에서 맴돈다. "학교 어땠어?" "그냥요." 이 대화가 더 깊어지지 않는 이유는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맥락이 없어서다.


한편 기획노동을 혼자 하고 있는 사람도 외롭다.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아무도 함께 생각해주지 않는다. 걱정을 혼자 한다. 결정을 혼자 한다. 문제가 생기면 혼자 해결한다. 잘 해결되어도 아무도 모른다. 이 외로움은 "나를 도와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나와 함께 생각해주지 않아서"다.


결국 기획노동을 나누지 않으면 두 사람 모두 외로워진다.

한 사람은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는 외로움을 느끼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가정의 바깥에 서있는 외로움을 느낀다. 표현되는 방식은 다르지만, 둘 다 연결되지 않는 것에서 오는 감각이다.

가정은 함께 운영할 때 비로소 '우리'가 된다.


설거지를 같이 하는 것이 파트너십이 아니다. 이 집의 다음 달을, 다음 해를, 10년 후를 함께 생각하는 것이 파트너십이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이방인처럼 느껴진다면, 혹은 내가 이 집에서 이방인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사이가 나빠진 것이 아닐 수 있다. 함께 기획하는 자리에서 멀어진 것일 수 있다.

그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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