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담론의 공백

이건 누가 할래? (기획노동)

by 곽작가

왜 기획노동 이야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을까.

답은 단순하다. 인지의 차이 때문이다.

기획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안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지금 이 순간에도 머릿속 어딘가에서 돌아가고 있는 것들. 다음 주 부모님 방문 준비, 이번 달 카드값 정산, 아이 학원 상담 일정, 슬슬 바꿔야 할 것 같은 세탁기. 이것들이 동시에, 쉬지 않고 돌아간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지치는 일인지를.


그런데 기획노동 밖에 있는 사람은 모른다. 정말로, 진심으로 모른다.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게으른 사람이어서도 아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기획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 지쳐 보여도, 왜 지쳤는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오늘 특별히 힘든 일을 한 것 같지 않으니까.


이것이 성별의 문제가 아닌 인지의 문제인 이유다.

기획노동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사이에는 거대한 정보의 비대칭이 생긴다. 한 사람은 가정 전체의 운영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다.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이번 달 어디서 지출이 컸는지, 다음 주에 무슨 일이 있는지, 누가 요즘 힘들어 보이는지. 이 모든 정보가 한 사람의 머릿속에 축적되어 있다.

다른 한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실행만 하고 있다. 시킨 것을 한다. 부탁받은 것을 한다. 그것을 성실하게 한다. 하지만 전체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보려고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그림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은 같은 집에 살면서 완전히 다른 수준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 정보의 차이가 곧 인지의 차이가 된다. 정보가 다르면 보이는 것이 다르다.

기획노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히 보이는 것들이, 기획노동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휴지가 두 칸 남았다는 것. 아이가 요즘 부쩍 예민해졌다는 것. 이번 달 말에 큰 지출이 몰려있다는 것. 보일러 필터를 갈아야 할 시기가 됐다는 것. 이것들이 한 사람에게는 선명하게 보이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대화가 반복된다.

"이것 좀 신경 써줄 수 있어?" "그게 문제였어? 몰랐어." "어떻게 몰라, 뻔히 보이잖아." "나는 진짜 몰랐다고." 한 사람은 답답하고, 다른 한 사람은 억울하다. 둘 다 거짓말이 아니다. 실제로 보이는 것이 다른 것이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 대화가 잘 안 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기획노동을 설명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기획노동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얼마나 많은 걸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라고 말하려면, 그것을 꺼내서 언어로 정리하고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그 과정 자체가 에너지를 쓰는 일이다. 이미 지쳐있는 사람에게 "지쳐있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많은 경우 이 대화는 시작되지 않는다. 설명하기가 너무 힘드니까. 말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으니까.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라는 결론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기획노동은 다시 한 사람의 것으로 남는다.

"도와줄게"와 "같이 책임질게"의 차이도 여기서 나온다.

도와주는 것은 실행이다. 시켜서 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누군가 알려주면 그것을 수행한다. 이 구조에서 기획은 여전히 한 사람의 것이다. 도움을 받는 사람이 기획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실행한다. 도움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기획의 무게는 나눠지지 않는다. 오히려 도움을 요청하고, 설명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기획노동이 더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같이 책임진다는 것은 다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인식하는 것. 말하지 않아도 보이는 것. 상대가 요청하기 전에 이미 생각하고 있는 것. 이것이 기획노동을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려면 기획인지가 먼저 생겨야 한다.

기획인지란 가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곧 문제가 될지를 읽는 능력이다. 이 인지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완전히 다른 것을 보고 있다. 그리고 이 기획인지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가정의 운영에 실제로 참여해야만 생긴다. 참여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면 인지가 생기지 않는다. 인지가 없으면 참여할 수가 없다. 이 순환이 기획노동의 공백을 만든다.

그러니 논의가 시작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기획노동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기획노동을 나누자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 주파수의 소리와 같다. 먼저 그 주파수를 맞춰야 한다. 기획노동이 존재한다는 것을 함께 인식하는 것, 기획인지를 함께 키우는 것, 그것이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다.


가사노동은 보였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었다. 기획노동은 아직 충분히 보이지 않는다. 보이게 만드는 것이 먼저다. 이름 없는 것에 이름을 붙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언어로 꺼내는 것. 그것이 담론을 여는 방식이다. 가사노동이 그렇게 이름을 얻었듯이, 기획노동도 이제 그 이름을 얻어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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