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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해 Mar 29. 2023

인간은 AI를 재능으로 이길 수 없다

해당 포스팅은 유튜브 '스튜디오 샤' 채널의 영상을 보고 작성하였습니다. 해당 썸네일은 비평의 용도로 인용하였고, 썸네일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스튜디오 샤 채널에 있습니다.


 공부가 노력이라는 말은 어디서 나왔을까? 수능이 청소년기의 목적이 되자, 전국에 사교육 열풍이 돌며 공부는 노력이 되었다. 공부는 누구나 시간을 많이 투자하면 되는 문제라 생각한다. 처음엔 조금 더딜지라도, 그 끝인 수능은 창의력을 보는 것이 아닌, 모두 같은 객관식 문제로 시험을 보기 때문이다. 답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알고 있음을 판단하는 것인데,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치가 낮은 것이 알고 있음이다. 유튜브에서 실시간으로 온갖 종류의 지식들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그것을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 착각한다.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양자역학을 예시로 들어 상황을 설명하려고 한다. 모든 것이 공짜라서 가능하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10초 안에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현재 지식 자체의 가치는 거의 없는 수준이다. 사람들은 지식을 길가에 자라난 풀 정도로 바라본다.


 시대가 지날수록 지식은 점점 더 풀리고,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다. 그 결과 지식을 배우는 것을 종이에 깜지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속도에 차이는 있지만 지식을 배우는 것쯤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로 포장하고, 재능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 모든 과정이 사교육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교육은 더 자극적인 워딩으로 내 수업을 들으면 깜지를 쓰는 속도를 빠르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광고한다. 재능의 격차는 어느 정도 있지만 그것을 줄여주는 것이 자신의 수업의 장점이라 말하고, 재능에 상관없이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광고한다. 나는 이 말이 실제로 맞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일반인들의 재능의 격차를 줄여줄 수 있다. 상대방에게 더 쉽게 말을 전달하는 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일타강사라 불리는 사람들을 나는 외장재능이라 생각한다. 오늘은 재능의 뜻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썸네일에 나온 유튜브 채널은 서울대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채널이다. 서울대생들은 공부를 재능이라 생각할까 노력이라 생각할까? 이들은 둘 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 자체가 재능이라고 이야기한다. 만일 재능을 유전의 다른 말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맞는 말이다. 실제로 뇌과학에서도 노력하는 것 자체가 재능이라고 이야기한다. 유전적인 요인이 가장 강하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많은 서울대생들도 공부 자체는 노력만 하면 되는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들은 공부에 있어서 전문가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다른 분야의 경우 자신이 뛰어넘을 수 없는 천재를 만나면 재능의 차이에서 졌다고 이야기한다. 흔히 이야기하는 예체능뿐만 아니라 수학과, 과학등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영업도, 미장도 사람이 하는 일이면 주식 말고는 재능의 차이에서 진다고 이야기한다. 


 공부만 특별해서 그런 것일까? 이는 입시제도 때문에 그렇다. 한국에서는 어쨌든 서울대에 들어가면 공부로써 이룰 수 있는 목표의 끝에 도달하는 것이다. 다른 영역들은 끝이 없고,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하지만 공부에서는 서울대에 들어가면 마라톤에서 1등으로 완주하는 것과 같은 성취를 이루는 것이다. 서울대생들은 자신이 전문가가 될수록 재능이 많은 사람들을 보고서 허탈감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이겨내, 나도 서울대생이 되었다는 안도감에 노력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자신이 겨우겨우 이겨낸 10년이 넘는 과정이 재능으로만 치부된다면 기분이 나쁠 것이다. 전문가의 눈으로 봤을 때,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같은 학과에만 몇십 명씩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볼 수 없는 차원이 다른 노력이 있었기에 여기에 들어왔는데, 노력이 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들도 인정을 한다. 노력을 하는 것 자체가 재능이라는 것을. 서울대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에 재능이 하나도 관여하지 않았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과학적 사실도 증명한다. 그러나 공부는 정말 사교육만 받으면 제대로 받으면 누구나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는, 종이에 깜지를 쓰는 과정일까? 우리는 재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재능이 그래서 대체 무엇일까? 재능이 가장 많이 거론되는 곳이 바로 예채능이다. 대중들은 미술, 음악은 순도 100% 재능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그곳에 종사하는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미술과 음악에 비해서 체육은 노력이 더 강조되지만, 어쨌든 재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루에 18시간씩 연습을 한다고 해도 우리가 메시가 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인정하기 때문이다. 체육의 경우 육체적으로 괴롭기 때문에 노력이 강조된다. 일반적인 노력으로는 자신의 잠재력을 100%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노력이 강조되는 경우는 몸이 고통스러운 정도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미술과 음악은 배울 수 있다. 심지어 커리큘럼도, 공부와 다르지 않다. 미술은 펜을 처음 잡는 순간부터 선의 표현과 필압을 통한 강약조절, 빛의 반사를 이해하며 명암을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졸라맨 조차도 어눌하게 그리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배우고, 공부한다면 후자인 사람도 충분히 잘 그려낼 수 있다. 그러나 후자인 사람이 막히는 순간은 바로 성장할 때이다. 모두가 너는 못한다고 했지만, 수없이 많은 연습과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었을 때, 한번 좌절이 오고, 정말 업계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할 때, 다시 좌절이 오고, 모두 극복해 내고, 세계 최정상 실력자의 세상에 들어갔을 때 다시 좌절한다. 나는 이렇게 죽을 듯, 살듯 노력하는데, 평온한 표정의 세계 챔피언은 말한다. "그냥 하는 거지 뭐.."김연아 선수가 남긴 말이다. 결국 세계챔피언의 벽 앞에 재능의 한계를 느끼고 더 이상의 성장은 멈추게 된다. 그렇지만 이 사람은 누구보다 노력을 믿을 것이다. 자신이 수없이 부숴온 성장의 한계는 분명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기 때문이다.


 재능의 벽 앞에 성장을 더 이상 하지 못하고 좌절한 사람이 노력을 이야기한다면 과연 이 사람은 재능이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 사람이 뚫고 나간 모든 벽의 단계는 분명 재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벽에서 재능의 한계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은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다. 정말 그것에 대해 엄청난 열정이 있어야지만 벽을 뚫을 수 있다. 이 벽을 뚫기 위해선 재능과 재미, 운, 환경, 노력까지 받쳐줘야 한다. 단지 재능은 나머지 요소들보다 훨씬 더 강한 무기로써 작용한다. 재능이 뒷받침된다면 나머지 4가지의 부담이 덜어진다. 반대로 생각한다면 재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나머지 4가지가 정말, 정말 정말 많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고통스러운 길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자동차에 엔진이 달려있는데, 나는 자전거 페달인 경우이기 때문이다.


 역시 재능이 중요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재능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 따져볼 차례다. 재능은 부모님이 물려준 유전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물론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의 경우 부모님도 운동선수인 경우가 많지만 아닌 사람들이 더 많다. 이들은 환경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까? 우리나라는 예체능 천대 문화가 강하다. 부모님들은 예술하면 굶어 죽는다면서 자식들이 예체능의 길로 빠지지 않길 바란다. 부모님이 예술적 감각이 없는데, 네가 어떻게 예술을 하냐며 타박을 하신다. 그러나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미술은 배울 수 있다. 기술을 배우고, 예술의 재능을 꽃피우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단지 부모님이 해당 교육을 받지 못해서 예술의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것이라 단언할 수 있을까?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한다면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의 아이는 항상 세계 최고가 되어야만 한다. 축구를 할 환경은 완벽하고, 또래보다 훨씬 잘하는 재미를 느끼며, 최고의 재능을 물려줬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가문이 대대손손 항상 세계 최고를 유지하는 곳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유전학적으로 얼마나 물려받았는지 차이에 따라서 다르다고 반박할 수 있다. 그래서 재능의 대한 정의가 재정의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얼마나 물려받았는지, 어느 정도 영향이 있는지, 필요한 재능이 없으면 세계 최고가 될 수 없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고, 시각적 자료와 객관적 수치로 정확히 나타낼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되면 재능이라는 단어는 어쩔 수 없었다는 도피를 상징하는 단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재능을 정의하려면 재능의 역할을 알아야 한다. 음식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 크게 반박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정의에는 철학적 요소가 들어가면 안 된다. 정의는 보편적 대중들에게 합리적 동의를 구할 수 있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음식의 용도는 명확하다. 먹는 행위로써 영양분을 얻을 수 있는 것. 재능의 용도는 무엇일까? 어떤 일에 대해서 깨달음을 얻는 속도이다. 재능이 있을수록 그 속도가 빨라진다. 용도를 이렇게 정의한 뒤, 재능이란 단어를 내가 다시 정의하자면 어떤 일에 대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지능이다.


 재능은 지능이다. 우리는 어떤 분야든 계속해서 벽을 마주한다. 낮은 벽들은 넘어가면 되지만 결국 넘어가지 못할 거대한 벽을 만나게 된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또래보다 그림을 너무 잘 그려서 그림을 전공하고 나니 내가 가진 재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이를 애매한 재능이라고 일컫는다. 재능의 힘을 맛봤기 때문에 이것을 놓을 수는 없지만 성공하기 위한 벽을 넘기에는 부족한 재능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일찍 깨닫게 된다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 사람들이 과연 노력이 부족해서 벽을 뚫지 못한 것이었을까? 이들에게 우리는 일반인들보다 너는 재능이 많은데 열심히 한번 더 해봐라고 조언을 해준다면 과연 벽을 뚫을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뚫고 나간 사람들의 조언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위에서 이야기한 사교육이다.


 공부가 재능이 아닌, 노력의 영역으로 들어간 것은 사교육의 힘이다. 80년대에 공부 못하는 사람 보고 노력하면 공부 잘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을까? 그냥 일이나 빨리 배워라, 너는 공부머리가 없다.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가장 잘한다고 이야기를 들으려면 그냥 서울대에 들어가면 된다. 서울대 들어가서 뭘 하든지, 대학만 들어가면 된다. 세계 최고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서울대에만 들어가면 된다. 그렇다면 서울대에 들어가기까지의 벽을 허무는 방법을 알려주면 되지 않을까? 스스로는 절대 깨우치지 못할 방법을 이미 그 벽을 허문 사람들이 알려주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 맞는 방법으로. 물론 노력도 재능이라 방법을 알아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노력할 수 있는 방법과 환경을 만들어주면 된다. 어떻게 해서든 방법은 있다. 서울대라는 벽을 깨부술 방법이.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던 사람이 펜을 잡자마자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 그리고 보통은 그 정도 수준은 교육으로 따라잡을 수 있다. 단지 전자는 남들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고 있었을 뿐이다. 첫 번째 벽을 허무는 법을 그래서 후자보다 빠른 것이다.


 서울대에 들어간 이후에는 2번째 벽이 기다리고 있다. 1단계 벽은 전부 다 허물었던 전부 모여있다. 고등학생 때는 아니었다. 주위에 한 두 명? 그러면 여기서 1등을 하기 위해선 다시 벽이 보인다. 그리고 그 방법을 이제 사교육의 힘을 받아서 뚫을 수는 없다. 제한된 시간 내에 그 벽을 먼저 허무는 사람이 1등을 할 것이고, 벽을 끝내 허물지 못한 꼴찌 학생은 재능을 탓할 것이다. 그 뒤의 삶에서도 사람은 늘 벽을 만나고, 뚫지 못하면 재능을 논할 것이다. 그리고 재능이 부족해서 벽에 막힌 이들에게 강제로 뚫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바로 이 길을 먼저 걸어간 선배들과 멘토들이다. 그렇다면 세계 1등, 최정상에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멘토가 없는데 어떻게 세계 1등의 자리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이 바로 재능이 중요하고, 지능이라는 이유이다. 세계 1등은 계속해서 벽을 만나도 그것을 뚫는 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불 위에 끓고 있는 주전자가 배우지 않아도 뜨거울 것이란 것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


 남들이 못 푸는 문제를 푸는 사람에게 지능이 높다고 이야기한다. IQ에 열광하는 것이 그 때문이다. 사람들은 똑똑해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똑똑하다는 것이 단순히 암기를 잘하고, 새로운 것들을 발견해 내는 학자들에게만 쓸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일 잘하는 사람들에게도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붙이는 것처럼 지능은 다양한 분야에 세분화되어 있다. 음식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음식에 대한 지능이 높은 것이다. 과학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과학에 대한 지능이, 미술을 잘하고, 음악을 잘하는 사람은 그 두 가지의 지능이 높은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하나를 잘하면 그에 파생돼있는 것이나, 정반대의 분야도 잘하게 된다. 잘하는 법은, 재능의 벽을 느꼈을 때, 그것을 뚫는 법은 어느 업계나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현재 AI가 사용하고 있다. 그림과 영상은 AI가 그래도 어렵다고 이야기하던 2023년 1월과 이제는 그림만으로는 설자리가 없다고 하던 2023년 3월의 반응이 이를 입증한다. 


 나는 재능과 노력의 관계를 방향과 힘이라고 생각한다.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방향키를 돌린다. 구불구불 산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일반인과는 다르게 터널을 이용해 가는 것이다. 노력은 힘이다. 얼마나 더 빨리 갈지, 뛰어갈지, 자동차를 탈지, 자전거를 탈지는 노력이 결정한다. 방향이 산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어도, 노력이 있다면 꽤 빠른 시간 안에 도착할 것이고, 재능은 지능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다음 산에 터널이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처음에 터널을 이용했어도, 다음엔 산길을 가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가장 못하던 것은 미술이었다. 그리고 대학생 때 예술계열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림으로는 아니고, 점수 맞춰 갔더니 영상학과였다. 초등학생 그림을 그리던 내가 예술을 배우는 법을 배웠더니 세상을 대하는 법이 달라졌다. 그리고 AI는 내가 했던 방법과 같은 방법으로 내가 10,000년 동안 공부해야 할 것을 1초에 완성시킨다. 나는 재능이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그냥 문제를 해결하는 지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평범한 인간의 두뇌는 따라갈 수도 없는 AI는 재능이라 치부되던 모든 분야를 어떻게 뚫고 나갈지 두려우면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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