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의 격차와 갈등은 여전히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에 영향을 주고 있지만, 2000년 대 이후 각종 지표를 통한 실질적 격차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서울, 인천 그리고 경기도를 아우르는 수도권은 전체 국토 면적의 약 12% 차지한다. 이 지역의 인구는 꾸준히 증가해왔고, 2020년에는 인구통계를 조사하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비수도권 전체의 인구를 넘어섰다. 전체 면적의 88%를 점유하는 비수도권보다12%의 수도권에 더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된 것이다.
2차 산업을 중심으로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에는 지방에 소재한 대규모 생산시설을 기반으로 연관 산업들이 직접 되며 지역경제를 이끌었지만, 성장축이 3차 그리고 4차 산업으로 이어지며 기존 비수도권의 기반 산업들은 정체를 겪게 된다.
성장 정체는 양질의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데 어려워 짐을 의미했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인구 유출을 가속화시켰다. 그렇게 유출된 지역 인구의 상당수는 수도권으로 유입되었다. 기업 입장에서는 효율성 추구와 인재 확보, 가계 입장에서는 높은 수준의 임금과 교육기회 등 여러 가지 요구가 맞물리며 기업과 사람들은 지금도 수도권으로 모여들고 있다. 반대로, 비수도권에서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문제까지 겹치며 일부 지역의 소멸을 우려할 정도로 서로는 양극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지방 소멸'이란 단어가 일본을 넘어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인구가 줄어들면 필수적인 상업 시설들이 유지되기 어렵고, 병의원이나 행정 같은 각종 인프라의 접근성도 낮아지게 된다. 학교들도 문을 닫는다. 수요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공급만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이 떠날수록 거주여건이 악화되고, 악화된 거주여건으로 인해 다시 사람들이 떠나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이에 지방정부들은 출산, 이주, 창업 등 다양한 분야의 지원정책을 펼치며 인구감소에 대응해보지만 일시적 지원이나 혜택은 인근 지역 간 주민등록자 수 뺏어오기 경쟁에 머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거주 여건이 좋은 곳이라면 굳이 그러한 지원책들이 없어도 사람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는 통합을 통해서라도 장기 거주에 적합한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개별 지자체의 파편화된 지원책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균형발전을 위해 중앙정부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한 사업은 공공기관 이전과 함께 진행한 지방혁신도시 건설이었다. 강제성을 동원해서라도 양질의 일자리를 옮겨 놓으면 연관 기업과 사람들이 모일 것으로 기대했다. 여러 곳의 혁신도시가 만들어지고 해당 지역 내 인구는 늘어났지만 본래의 역할은 제대로 해냈다고 보긴 어렵다. 당초 기대와 달리 혁신도시에는 수도권보다 주변 지역으로부터 전입된 인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는 제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의 혁신도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더구나 공공기관 이전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시점부터는 수도권으로부터 전입되는 인구는 현저히 줄어들고, 역으로 수도권으로 전출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결국 명칭만 혁신도시일 뿐 내용은 대단지 조성과 판매가 주된 사업처럼 보인다. 물론 지방 곳곳에 양질의 주거를 제공한 측면은 있지만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의 연속적인 신도시 건설은 가까운 구도심의 공동화나 소멸을 부추길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침체된 지방 도시를 활성화하고 오래도록 그 지역에 살아온 원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을 고려했다면, 구도심 재개발의 방식이 더 나았을 것이다.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신규 택지 개발을 통한 확장 방식은 다수의 주민들보다는 소수의 건설사들과 토지주들에게 큰 수익을 남겨 주었다. 권력은 이들의 이익을 대변했고 이들 스스로가 권력이기도 했다.
중앙정부는 이전되는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산-학-연 연계 발전이라는 큰 그림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상 공공기관의 직원들 조차 상당수는 전세 버스에 몸을 싣고 원거리 출퇴근을 하거나, 홀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방식을 택했다. 새로 공급된 주거용지나 산업용지들이 수도권의 사람들과 기업들을 끌어 오기에는 여전히 수월해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각종 인센티브 제공에도 불구하고 상장사의 70% 이상이 여전히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입시생들에게 선호되는 상위권 대학들은 대부분 서울에 모여있다. 기업들이 수도권에 집중되는 이유는 회사 운영에 필요한 인재들과 파트너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은 선진국을 모방하며 추격하는 랠리를 마치고 그들을 추월해 가야 할 과업을 안고있다. 다양한 인재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나누고 융합하고, 혁신과 창의를 만들어가는 활동이 중요해짐에 따라 전통적인 제조기업들 마저 R&D 센터들을 소위 기흥 라인이라고 불리는 동탄, 기흥 지역 위쪽으로 전진 배치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정치권에서는 서울대학교 지방 이전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제안까지 들고 나오곤 한다. 아마도 강남 개발 당시 사람들을 이주시키기 위해 강북의 명문 학교들을 강제 이전시켜 효과를 본 수십 년 전의 일을 잊지 못해서 인 듯하다.
저출산 관련 예산을 늘려봐도 출산율은 늘어나지 않고, 국토 균형 발전을 위해 아무리 세금을 투하해도 수도권 집중을 막을 수 없다면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국토 균형발전이 중요하다는 믿음이나 전제는 그대로 둔 채,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취한다는 명분으로 더 많은 세금은 같은 방식으로 쏟아부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우리는 이미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는 공항이나 박물관 같은 각종 시설들이 지방 곳곳에 산재해 있고, 유사한 사례의 예산 낭비가 계속되는 것을 보고 있다. 고령화와 함께 세수부족 문제가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렇게 미래세대를 위한 소중한 재원을 낭비해서는 안된다.
대도시권으로 인구가 쏠리는 현상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여러 도시가 아닌 단 하나의 도시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쏠리고 있는 것이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국토의 면적을 생각하면 이 문제가 조금 달리 보인다. 대한민국은 평균적인 미국 내 주州 혹은 중국 내 성成 하나의 면적보다도 작은 나라이다. 균형발전을 논할 때 주로 거론되는 독일이나 일본에 비해서도 1/3 수준에 불과하다. 많은 것들이 한 곳으로 집중되어 가는 시대적 흐름을 감안한다면, 한국과 같이 작은 나라에서 하나의 도시권 집중도가 커져가는 것이 아주 특별하거나 부자연스러운 현상처럼만 보이진 않는다.
수도권으로 모이려는 수요를 강제로 분산하려는 시도보다 수요가 있는 곳을 더욱 고밀 개발하고 지방은 거점을 두어 통합해 나아가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세상의 흐름과 사람들의 욕망을 거스르려 하기보다,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기업과 사람은 더 많은 기회가 존재하는 곳을 향한다. 하지만 한정된 지역에 집중도가 높아질수록 주거 비용은 높아지고 혼인율과 출산율 저하의 중요한 원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한 개인이 아닌 우리 공동체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균형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사람이 없는 곳에 쏟고 있는 자원을, 사람이 모이는 곳의 가장 중요한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하면 안 되는 것 일까. 어쩌면 그 방식이 미래 세대 전체를 위해서도 더 나은 결정일 수 있다. 여러 이해관계의 충돌로 우리는 그러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그간 많은 세금을 투입하고도 균형발전과 출산율 모두를 놓치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이제 시간도 자원도 넉넉치 않다. 해외 뉴스에서 접하 듯 보트나 캠핑카에서 사는 청년들을 보고 싶지 않다면, 이제 한 마리 토끼라도 확실히 잡아야 한다.
도시가 더 고밀개발 되고 복잡해지면 한적한 지역으로 빠져나가려는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도시의 편리함도 있겠지만 자연과 가까이하려는 인간의 본능 또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밀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 또한 이탈 수요를 만들게 될 것이다.
그간 과도한 집중을 막으려는 시도들이 오히려 좋은 곳을 계속 좋은 곳으로 남게 하는 결과로 이어져 왔던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선한 의도가 꼭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란 것을 우린 반복해서 경험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