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짤리짤리 Dec 12. 2022

늬 아부지 모하시노? - 수저론

격차의 시대에 살아남기 : 자산


"born with silver spoon"

높은 사회적 계급이나 큰 자산을 누릴 수 있는 환경에서 태어났음을 뜻하는 영어권의 관용적 표현이 우리나라에서 수저 계급론이라는 신조어로 재탄생했다.

수저 계급론은 개인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부모의 소득 및 자산 수준에 따라 자녀들의 사회적 계층이 결정됨을 의미하는 용어로 2015년 SNS를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올림픽 메달처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로 나뉘고 아무것도 없는 흙수저가 더해진 구조였지만 여기저기서 패러디되고 재확산되며, 다이아 수저, 놋수저 등 많은 파생 수저가 생겨나기도 했다. 수저 계급론의 확산은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빈부 격차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한 구직 포털 플랫폼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0대, 30대, 20대로 세대가 낮아질수록 수저 계급론에 동의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다.

세대별로 다른 인식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한민국이 유례가 없을 만큼 단기간에 고속성장을 이룬 국가였기 때문이다. 성장의 속도만큼이나 사회 변화 역시 빠를 수밖에 없었고 이는 동시대를 살면서도 세대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과 가치관을 가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때문에 오늘날 한국 사회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X, Y, Z 세대들의 청년기를 묘사함에 있어서도 뚜렷한 차이가 나타난다.


* X, Y, Z 세대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기준점은 화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아래 정도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X세대: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태생

Y세대: 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 태생

Z세대: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X세대는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었던 고도 성장기의 마지막을 경험했던 세대로 그려진다. 사회 진출의 관문인 취업도 다른 세대에 비하면 용이했던 편이다. IMF라는 큰 위기도 있었지만 사회 역동성이 컸던 만큼 다양한 기회들 또한 주어졌다.

Y세대는 이전 어느 세대들보다 풍요로운 유년기를 보냈지만, X세대 보다 강도 높은 경쟁을 요구받았다. 교육열이 높아지며 대입 경쟁률은 더욱 치열해졌고, 사회에 나올 때 즈음부터는 경제 성장이 둔화되며 취업문이 좁아졌다. X세대들 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폭넓은 스펙을 쌓아도 주어진 기회와 혜택은 적었다. 노력을 해도 좋은 직장을 얻기 어려운 좌절감은 풍족했던 유년기와 대비되며 더 큰 박탈감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Z세대들이 보기에 Y세대는 의지만 있으면 아직 열려 있던 기회를 찾을 수도 있던 세대로 그려진다.

Z세대는 이전 두 세대들과 달리 어릴 때부터 커다란 격차를 보편적으로 느끼며 자란 세대이다. Y세대까지만 하더라도 부자이거나 빈자이거나 같은 학교에서 같은 수업을 받고 같이 공을 차며 어울릴 기회가 많았지만 Z세대들은 달랐다. 끼리끼리 뭉치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거주지 자체가 다르거나 영어유치원, 사립학교, 조기유학처럼 교육의 기회에서 부터 뚜렸한 차별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격차는 전에도 존재했지만, 정보통신의 발달로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쉽게 알게 됨으로써 더 크게 체감하게 되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에 비유하자면, X세대에겐 드문 드문 사다리가 보였고, Y세대는 그 사다리들이 하나둘씩 걷어 치워 지는 광경을 보았다면, Z세대는 애초에 사다리란 것을 본 적이 없는 세대로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수저 계급론은 어릴 때부터 큰 격차를 느끼고 계층 고정화를 내면화했던 Z 세대들로부터 가장 큰 공감을 받고 있다.


출처: 잡코리아


수저 계급론은 이른바 '개천용('개천에서 용 난다'의 줄임말)'과 반대 지점에 있다. 개천용에 대한 믿음은 점차 사라지고 수저 계급론이 다수의 공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의 격차가 과거 신분제와 같이 고착화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우려가 사회 전반에 드리워져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태어남과 동시에 삶의 많은 것들이 정해져 버렸고, 사회 변화의 속도 역시 빠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신분내에서 예측 가능한 삶의 경로를 따랐다. 출세의 기회나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능력과 재능이 뛰어나도 노비 출신이라면 게으르고 보잘것없는 양반을 따라야만 했다.

지금 우리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늘날 역시 기회와 가능성은 부자와 빈자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거니와 능력이 좋은 직원이라도 모든 기회를 가진 신출내기 2세 경영인을 따를 수밖에 없다. 사회적 계급 형성은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문화가 아니다. 세계 곳곳 다양한 문화에서 존재했던 인간 사회의 공통적 특성에 가깝다. 이는 소유를 주장하고 끼리끼리 뭉치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행위가 인간 본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 때문인지 유형의 신분제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취를 감추었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 스며들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기대감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기. 빠른 경제 규모의 확장과 이에 따른 사회 변화는 많은 기회를 불러왔다. 고학력 인재에 대한 수요는 급격히 늘어나는데 비해 공급은 제한적이던 시절 학벌은 출세의 발판이 되어 주기도 했다. 누구나 열심히 공부하면 더 많은 기회와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었고, 대학 진학률은 날로 높아져만 갔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 중산층의 표준적 삶의 모델이 형성된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을 얻는다. 경력을 쌓으며 진급을 하고 집을 산다. 은퇴 후 연금이나 모은 자산으로 노후를 보낸다.' 하지만 학력과 생애 소득이 대체적으로 비례하는 경험을 공유한 부모 세대들과 달리 자녀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그러하지 못하다. 대학을 가도 취업이 어렵고 취업을 해도 정년을 보장받기 어렵다. 성장을 기반으로 한 과거의 삶의 방식은 점점 희소한 가치가 되고 노동소득에 기댄 삶의 불확실성은 커졌다.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보통의 삶은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쩌면 평범한 가장이 외벌이로 네 명의 가족을 부양하던 모습은 노동자의 임금 협상력이 일시적으로 강해졌던 80~90년대에나 가능했던 것일지 모른다. 길게 보면 노동자들은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워 부부는 물론 자녀들까지도 일찍이 생업에 참여해야 하는 시기가 더 많았다.


기회의 평등을 말하던 어른들과 그것을 배우고 믿으며 자란 세대들은 어디로 갔을까. 여전히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면에선 사실이지만 안타깝게도 기회의 문은 좁아졌고 그 문을 통과한 소수만 큰 혜택을 누리는 구조가 강화되었다. 승자독식. 이른바 쏠림현상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기업'장에서 다뤄 보기로 한다. 아주 드문 케이스를 가지고 전체를 설명하려고 한다면 사실이 왜곡되기 쉬우니, 평범한 노동자의 입장에서 지난 수십 년간 부의 분배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살펴보자.


한국은행에서 제시하는 지난 40여 년간 우리나라의 노동소득 분배율은 꾸준히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국민 소득 중 노동자가 차지하는 몫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체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자산 가격의 급등과 급여 격차의 확대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높은 자영업 비율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 OECD 최고 수준의 자영업자 비율을 가진 나라이다. 10% 초반 수준의 OECD 평균에 비해 한국은 25%를 넘어선다. 평균의 2.5배에 달하는 자영업 비율은 한국인의 유별난 기업가 정신이 아니라 취업시장에서 밀려난 대규모 집단이 차선책으로 자영업 선택하기 때문이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온전히 투입해야만 하는 사업주이다. 때문에 노동자로 구분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들의 이익을 포함시킨 조정 노동소득 분배율이 대한민국의 현실을 더 제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조정 노동소득분배율은 노동소득분배율과 달리 수십년간 꾸준히 낮아지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전체 소득에서 노동자의 몫은 줄어들고 자본가의 몫은 커져왔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수저 계급론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근거이다.


출처: 중앙일보


계속.


작가의 이전글 "어디 사세요?"의 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