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 이야기
보통 병원의 환자들은 자신에 대한 진단명을 들으며 안도감을 느낍니다. 그것이 설령 중병이라 하더라도 진단명이 있다는 것은 자신의 병이 왜 생겼고, 어떻게 진행될 것이며,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환자분은 지금 꽤 중한 정도의 우울증입니다"
진단명의 역할은 정신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다른 과에 비해 진단명을 들을 때 안도감을 넘어 일종의 위로를 느끼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신과 환자는 병원에 오기 전에 이미 오래 고통을 참다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진단명을 듣는다는 것은 많은 고통의 시간을 지나 일종의 '종착역'에 도착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제 문제가 그거였군요"라는 환자의 반응은 그런 안도감을 말합니다.
"우리 애가 게을러서 공부를 못하는 줄 알았어요. 학습장애가 있는 것도 모르고 무조건 밀어붙인 게 너무 미안해요"
진단명은 환자의 가족들에게도 큰 도움이 됩니다. 병에 대한 미흡한 인식이나 잘못된 정보로 환자를 닦달하고, 오해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입니다. 의사의 진단이 무게감 있게 내려지면 불필요한 분쟁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정신과 환자는 억울하게도 자기 탓을 하거나 혹은 "네 탓이네"라는 비난 어린 시선을 견디다 오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도 진단명은 "당신 탓이 아닙니다"라는 선언을 해줍니다. 재수, 삼수를 하다 우울증에 걸렸어도, 유전적 소인에 따라 조현병에 걸렸어도, 매일같이 야근하는 힘든 회사 생활을 견디다 불안장애에 걸려도 어떤 진단명도 "당신 탓입니다", "당신의 노력이 부족했습니다"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은 이 정도로 힘드셨네요"라고 말하고, "당신은 지금 돌봄을 받으셔야 해요"라고 말해줍니다.
일과 돈에 미쳐 하루 20시간씩 일하다 덜컥 과호흡 증상이 나타나 모든 것을 stop 할 수밖에 없었던 환자에게는 공황장애라는 진단명은 "당신 그렇게 살면 큰 일 나요"라는 따끔한 멘토 역할을 해줍니다. 주변의 걱정이나 조언에도 절대 멈추지 않던 사람도 그런 진단명을 듣고 나면 희한하게도 자신을 돌아보는 단계로 급격히 돌아서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신과에 오는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은 "그래서 진단명이 뭐예요?"하고 자주 묻습니다.
하지만 정신과 교과서에 나오는 진단명으로 우리의 고통을 모두 분류할 수는 없습니다. 진단명은 불필요한 오해나 과잉해석을 막고, 병의 원인과 치료에 대해 과학적 방법을 설계하며, 치료의 방향에 대해 관계된 사람들의 일치된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필요합니다.
"이 아이의 진단명은 '부모의 사랑이 받고 싶었으나 부끄러워 차마 말하지 못했고, 그게 쌓여 속병이 들어 결국 자존감도 낮아지고,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생각하여 결국 남이 자신을 함부로 이용해도 저항하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약해진 disorder'입니다. 이 아이의 상태는 이보다 더 짧고 단순한 말로는 표현할 수 없어요."
때로는 아이의 문제 행동을 비난하기 위해 문제행동에 걸맞은 요란한 진단명을 내놓으라고 성화인 보호자에게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부모에게는 아이의 진단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진단명은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