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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NA Dec 16. 2016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없겠지

  너 또한 그렇겠지. 나도 그렇고. 잠들기 전 어둠 속에서 조금씩 밝아오는 천장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괴로운 만큼 너도 그럴까. 정도를 수치화시킨다면 누구의 고통이 더 클까.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리고 그 위에 팔을 단정히 놓아본다. 나는 분명 아무렇지 않게 잘 준비를 하는데, 마음속엔 슬슬 바람이 분다. 기억의 잔상이 여러 컷으로 나뉘어 떠올랐다. 몇 달이 지났음에도 나아지는 게 없다.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온다. 일상을 시작하기 위해 정신을 차려본다. 찬 공기에 목이 부었다.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온다. 기억과 함께. 그래서 무섭다. 코 끝이 빨개지고 입김이 나오는 겨울은, 웃고 있는 나의 얼굴만을 떠오르게 해 잔인하다. 이 계절은 이제 행복할 일이 없을 것 같다. 정말 도무지 그럴 것 같지 않다.


  사무실 의자에 앉아 가습기를 틀었다. 하얀 연기가 힘차게 뿜어져 나온다. 따뜻하지만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히터. 조용한 분위기 속 키보드 소리. 어제 했던 일의 연장선. 잠시 동안은 완벽한 일상 속에 묻어가 본다. 거래처 전화를 받고, 회사 동료들과 실속 없는 이야기를 하며 점심을 먹고, 일주일 전부터 풀리지 않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고, 사무실에서 마시는 커피가 제일 맛있다며 잠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면서 말이다.


  현관문을 열자 익숙한 집 냄새가 났다. 거실의 불을 켜고 외투를 벗을 땐 나도 모르는 작은 한숨이 나왔다. 습관적으로 핸드폰 시계를 들여다보며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한다. 허기는 지지만 즐거움이 없는 식사를 하려니 귀찮기만 하다. 겨우 프라이팬에 계란 두 개를 올려 뒤적거렸다. 노른자를 터뜨리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순간, 아주 뜬금없이, 그것은 정말 느닷없이 나를 덮쳤다.


  이미 노른자는 다 익었다. 오른손에 나무 뒤지개를 쥔 채 얼굴을 가리고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소리를 참아가며 흘려보냈다. 계란이 차라리 양파였으면. 그럼 이 눈물을 매운 눈물이라며 치부해 버릴 수 있었을 텐데. 식어버린 짠 물이 손과 얼굴에 얼룩졌다. 어떠한 동요도 없던 심장이 칼 날에 베어버린 듯하다. 새어 나온 피는 온몸을 빠짐없이 돌아 마치 몸살에 걸린 듯한 착각을 느끼게 했다.


  울음이 멈추고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그 순간을 경계하며 아주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수증기 가득한 욕실에서 거울을 손으로 한 번 훔치고 얼굴을 살폈다. 눈이 부었네. 내일 아침에도 이러면 안 되는데. 차가운 물로 세수하여 진정시킨 뒤 잠자리에 든다. 어둠 속에서 조금씩 밝아오는 천장을 바라봤다. 마음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없다. 너 또한 그럴까. 나는 이불을 한껏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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