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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팰럿Pallet Jul 26. 2020

고야(Francisco de Goya)에 대해

인간 내면을 파헤친 검은 광기의 연출가


그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도 가끔씩 그림을 접할 기회가 주어지곤 한다. 그런 기회들로 그림 앞에 서게 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내가 가진 지식으로 그림의 의미를 끼워 맞추거나, 보이는 그대로 보는 것. 그것뿐이다.

그렇게 그림을 보다 보면 이 화가 역시 작가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캔버스 위에서 고뇌하는 작가. 난 우연한 기회로 작가 중에 한 사람인 Francisco de Goya의 그림과 그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스페인의 독창적인 화가이자 판화가로, 엘 그레코(El Greco)와 디에고 벨라스케즈(Diego Velazquez)와 더불어 스페인 3대 거장의 한 사람이라고 한다. 고야의 그림들은 많은 부분 벨라스케즈와 19세기 프랑스의 거장인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20세기의 천재 예술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casso)는 고야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그의 명성으로 그의 그림을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의 그림에 묻어 나는 고야만의 특별한 분위기와 인상적인 색과 선, 그리고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력과 묘사력, 무엇인지 비이성적으로 느껴지는 주제. 난 그러한 것들로 믹스된 그의 매력의 붓터치에 빨려 들고, 그냥 지나칠 때 느끼지 못한 것들에 하나 둘 눈을 떴다.


내가 고야를 처음으로 접한 것은 중학교 시절에 조선일보사에서 주최하는 고야 미술전을 보러 조선일보 미술관을 찾았을 때이다. 그때 ‘고야 판화전’이 열리고 있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해본 미술관과 석판화를 무척이나 관심 있게 보았다. 그때까진 고야가 석판화가인 줄로만 알았다.


석판화에는 주로 투우 장면만이 묘사되어 있었는데 마치 종이 위에서 연필로 혹은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손을 마음대로 움직이며 그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자유로운 선과 묘사에 놀랐다. 황소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투우사의 날렵한 기교. 관중들의 긴장된 모습들이 마치 내가 투우장에 와 있는 듯한 생동감을 자아내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고야는 1824년 프랑스 보르도로 가서 석판화 작업을 시작했고, 내가 중학교 때 본 그 석판화들은 고야의 매우 훌륭한 작품의 하나로 꼽히는 연작(La Tauromaquia)이었다. 아래 그림은 그때 보았던 판화 중의 한 작품이다.

La Tauromaquia (출처 : www.comunidad.madrid)


처음에 석판화가로만 알았던 고야의 작품을 여기저기에서 많이 접하게 되었는데 그중에 같은 모델과 같은 포즈

로 된 두 작품 <옷을 입은 마하(The Clothed Maja)>와 <나체의 마하(The Naked Maja)>은 매우 궁금한 작품이다. 이 그림을 보고 고야의 생각이 매우 궁금했다.

옷을 입은 마하(The Clothed Maja)와 나체의 마하(The Naked Maja) (출처 : 위키피디아)

왜 같은 모델로 두 가지 형태의 그림을 그렸을까. 그림을 보면 옷을 입은 마하는 붓 터치가 거칠고 옷을 벗은 마하는 붓 터치가 세밀한 것을 볼 수 있다. 여성의 몸이 그만큼 섬세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까? 그는 어쩌면 인간 본연의 심리에 다가서서 이런 작품을 그렸을지도 모른다. 고야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검은 배경은 인간의 심리의 어두운 부분을 내비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두 작품은 그러한 어두운 인간 심리에서 타오르는 느낌을 대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옷을 입은 마하에서 옷을 거칠게 표현하고 옷을 벗은 마하에서 몸의 선과 부분 부분의 묘사를 세밀하고 섬세하게 함으로써 여성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대한 매력을 나타낸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매력은 배경의 어두움으로 남성이 여성을 보는 성적 매력으로의 표출이 아닐까. 아마 당시에 이 그림을 감상하던 남성들도 그러한 생각에 사로잡혔을 것이며 고야는 이러한 인간의 감성적인 본성에 대해 직접 물어보고 싶었기에 이 작품들을 그린 것은 아닐까.


인간의 본성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그림은 그 밖에도 여러 작품이 있는데, <정신병원(Courtyard and Lunatics)>도 그중 하나이다. 이 작품에선 달빛 아래 모여있는 정신병자 수용소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표정에서, 분위기에서 공포, 광기, 외로움, 소외, 절망 등을 나타낸다. 서로 싸우거나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마치 달빛에 의해 가끔 변화하는 인간들의 불안정한 감정을 드러내듯, 비이성적 환상을 보여준다. 어두운 조명만큼이나 인간 군상의 모습이 암울하며 절망적이다.

Courtyard and Lunatics (출처 :  위키피디아)

위에서 설명한 두 작품 말고도 여러 작품에서 고야는 인간의 본연의 모습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그의 질문이 짙고 어두운 배경으로 더욱 강하게 각인된다.


고야 말기의 작품인 <아들을 삼키는 세턴 (Saturn Devouring His Son)>도 신화의 내용을 다룬 고야의 독특한 방식이 인상적이다. 이 그림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련된 책을 읽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그림인데 볼 때마다 대체 누가 이렇게 잔인하게도 그렸을까 하며 궁금해했었다. 그리고 우연히 이 그림이 고야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고야답다고 생각했다.

Saturn Devouring His Son (출처 : 위키피디아)

루벤스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이 제작한 바 있는 이 주제는 '크로노스(Cronos)의 운명'을 다뤘다. 크로노스는 자신의 아들이 왕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자식들을 다 삼키지만 제우스가 레아의 도움으로 그를 처치한다.


이 작품에서 아들을 먹는 장면에서 보이는 광기와 공포는 다른 여느 작가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이다. 마치 늙은 괴물의 모습처럼 변한 목성은 눈을 번뜩이며 양손으로 아들의 몸을 움켜잡고 있으며 사라진 아들의 신체 부분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잔혹함에 경련을 일으키게 한다. 이게 아들을 먹는 모습이라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느낌이라 할까.

고야는 이 주제의 그림을 왜 이렇게도 잔인하게 그렸을까.

물론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보이는 크로노스의 인물됨과 잘 맞아떨어지긴 하지만 어느 한 부분 미화되거나 순화된 것 없이 이렇게 잔인하게 그려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러나 크로노스의 얼굴 표정은 잔인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무엇인가 두려워하는 듯한 표정이기도 하고 고독하고 우울해하는 표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 개인적인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크로노스가 마치 고야 자신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잔인함과 우울함과 두려움. 어쩌면 그 당시 힘들었던 고야의 내면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작품으로 보아야 하진 않을까?

(실제로 고야는 이 그림을 그리던 시기에 스스로 환청과 어두워 가는 청각 때문에 고생했고 정신질환에 시달렸다고 한다.)


<5월 3일 (The Third of May 1808)>는 실제 1808년 나폴레옹 군대에 침략받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담은 작품이다.

The Third of May 1808 (출처 : 위키피디아)

밤에 처형되는 무고한 마드리드 시민들의 모습을 역사화의 크기로 다룬 이 작품에서 고야는 작품의 좌우로 주제의 선명성을 더한다. 왼쪽에는 손을 들어 저항하는 마드리드 시민들의 모습을 통해 애국심을 나타내고 있는데 특히 흰색 옷을 입는 남자의 모습을 통해 신념이 확고한 시민의 저항성을 느낄 수 있다. 전경 좌측 하단에는 죽어서 질펀하게 피를 흘리고 있는 시체를 통해 전쟁의 잔인성과 참혹함을 느낄 수 있으며, 우측으로 일군의 사람들의 행렬을 통해 전쟁의 비인간적이고 냉혹함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그림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단연 흰 옷을 입은 남자이다. 그가 흰 옷을 입은 것도 눈에 띄는데, 이 그림에 조명은 그에게로만 쏠려 있다. 두 손을 벌리고 두려움이 없어 보이는 그의 표정에서 마치 성경 속의 예수를 보는 인상을 갖게 한다. 이 남자를 예수의 이미지로 생각해보면 그를 통해 죽음 앞에 선 스페인 시민들이 무고한 피해자이고, 나아가 인류를 위한 희생양이라고 볼 수 있다.

시민들을 종교적 순교의 위치로 표현함과 동시에, 연극과도 같은 효과의 부분조명, 붉은 피와 검은색의 대조, 그리고 딱딱한 자세와 개방된 제스처 등으로 본인은 쉽게 죽어 가는 그들의 상황에 동감하게 된다.


고야는 이와 비슷한 무대 세트의 그림과 판화를 많이 남겼다. 아래 그림은 역시 이 시기에 만들어진 석판화로 인데, 나폴레옹의 군대에 적극적으로 대치하는 성모 마리아와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Y son fieras (출처 : 위키피디아)


고야 그림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검은 배경의 그림인데도 불구하고 이 그림은 그 느낌이 매우 다르다. 비극의 선명성과 분노의 호소를 개인적인 부분에서가 아니라 민족적인 부분에서 일으키는 검은색의 이미지.

난 나폴레옹 군대의 침략을 받은 후의 그의 그림에서 또 다른 고야의 모습을 발견했다. 뭐랄까. 개인적인 고뇌와 갈망으로만 앓던 철학자에서 민족을 위해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민족주의자로 변모했다고 해야 할까. 그의 이런 민족주의적이고 저항적인 그림은 매우 인상적이다.


고야는 스페인의 자연주의적 회화 전통과 계몽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또한 자신의 자유로운 취향과 이성적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작가였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본 몇몇 작품에서는 누구보다도 더욱 충만한 상상력과 비이성적 감성으로 자신만의 낭만주의의 영역을 완성한 작가가 아닌가 생각된다. 내가 본 작품들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의 관심사는 상당히 독특하고 충격적인 장면들도 많은 것 같다. 당시가 계몽주의가 유행하는 시기인 것으로 생각해보면 그의 작품들은 매우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고야의 초상 (비센테 로페즈 포르타냐 작)

이러한 사회의 흐름에서 그가 남긴 작품들은 그 사회에서도 유럽의 여타 다른 나라에서도 매우 주목받거나 아주 잊혔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과 그가 매우 주목받고 엘 그레코(El Greco)와 디에고 벨라스케즈(Diego Velazquez)와 더불어 스페인 3대 거장의 한 사람으로 꼽혔다. 또 고야의 그림들은 20세기의 천재 예술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casso)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가 남다르고 확고한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진짜는 닮지 않는다.

공자는 이런 말을 했다. ‘논어’에 ‘惡紫之奪朱也’라는 대목이 있다. (참고 링크)

주색에서 떨어져 나온 자색이 싫다는 얘긴데, 붉기는 다 비슷하지만 주색이 정색이어서 이를 흉내 낸 자색은 본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슷하다고 해서 다 같지는 않다는 뜻이며, 진짜는 모방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이다. 어쩌면 고야와는 상관없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의 생각은 이렇다.


고야는 그 시대의 다른 낭만주의 작가들과는 색깔이 달랐다. 고야는 자색이 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그 자신만의 색깔을 갖추기 위해서 자신과의 싸움과 고뇌, 고독을 견뎌냈으며 완성하였다. 그리고 그의 색깔이 갖추어지고서 자기 자신의 안위나 표현에만 급급하거나 주변의 시선에 눈치 보거나 하지 않고 확고한 신념을 다져가는데 힘쓴 작가라 생각한다.


진정한 예술가라면 반드시 필요한 것. 예술가가 아니라도 한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것. 그것을 갖춘 진정한 예술가. 난 감히 고야를 그러한 작가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더욱 매력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대학교 1학년 때 적었던 감상문이 hwp 파일로 고이 저장되어 있었다. 그때의 기억과 감상이 새록새록하여 옮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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