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는 그저 달력같이 아름다운 모습만 보고 지나치기에 바빴던 풍경들이 었는데, 그래서 감성만 충만했었는데. 양평에서의 계절은 어느덧 내 삶 속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리고 어리숙한 나에게 가르침을 주고, 또 유유히 다음 계절에게 시간을 건네준다.
농막은 괜찮나요?
주중에 농막 제작 업체에서 농막에 다녀가 문제가 되었던 동파로 파열된 파이프 교체와 뒤처리까지 모두 수습해주셨다. 농막을 구입할 때는 다른 업체 대비 약간 비싸다고 생각도 했지만, 진행 간 커뮤니케이션과 사후 응대는 정말 최고다. 네 알겠습니다. 해 드릴게요. 다 되었습니다. 문제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군말 없이 이렇게 대응해주시고, 비용 달라는 말도 전혀 없다.
그 덕에 이번 주말엔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봄날의 농막. 그리고 텃밭 개장을 예정대로 하게 되었다.
우리 동네의 봄 준비는
우리 농막과 텃밭이 있는 곳은 농막들로 촌을 이룬 곳이라서 양평'다도시'마을이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다. 안양, 수원, 서울 송파, 면목, 남양주 등 서울을 중심으로 주변 도시의 가족들이 모여있다. 주말이면 부릉부릉 차 소리가 도로를 메운다. 명절에 찾아오는 먼 친척 같은 느낌이랄까. 친근하지만 설레는 기분과 바쁜 삽과 괭이, 장화 소리가 어울려 동네를 밝게 만드는 느낌이 든다.
양평다도시마을이라고 이름 지어도 될 동네
봄을 사는 날
오늘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다. 바로 퇴비 주는 날.
아랫 농막 사장님 덕에 이장님과 잘 연결이 되어 우리도 저렴한 가격에 퇴비를 마련했다. 그뿐인가, 가축분료로 숙성된 퇴비라 냄새가 향긋하진 않은데, 차량에 직접 싫어서 옮겨주시기까지 해서 더욱 감사할 따름이었다. 퇴비를 다 옮겨놓고, 이장님 사모님께 퇴비 값을 드리려고 다시 이장님 댁으로 갔는데, 농막 사람들이 모두 사장님도 돈을 쥐어주고 퇴비를 실어가고 계셨다.
다른 농막들은 20포 30포씩 주문을 하던데, 우리는 10포만 주문을 했다.
왜 10포만 주문했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농막의 나무 틀밭이 딱 10개라서 그렇다. 나무 틀밭 하나가 약 1평 정도 되는 수준인데, 이장님을 통해서 구매한 퇴비는 1등급이긴 하나, 톱밥이 많이 들어간 퇴비라서 틀밭 당 1포씩은 써야 할 것 같았다.
다른 농막들도 퇴비를 실어오고 텃밭에 뿌리고 밭을 뒤엎느라 분주한 주말이었다. 우리 역시 분주한 퇴비 섞기 작업을 시작했다.
틀밭 당 퇴비 1포씩을 뿌렸다
퇴비를 언제 주나요?
나도 초보 농부라 아주 잘 알진 못하는데, 퇴비 주는 시기는 파종하기 2주 정도 전에 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남쪽 지방은 이미 한 2-3주 전에 줬을지도 모르겠지만, 양평 쪽은 꽤 추운 편이라 3월 초가 퇴비 주기에 적절한 시기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유럽처럼 흙이 검붉고 비옥하지 못한 터라, 땅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꼭 퇴비나 비료 등을 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좀 더 과학적으로 말해보면, 우리나라 땅의 약 70%가 산성토양이라서 이런 가축분료 퇴비(알칼리성)를 섞어줘야 중화(?)가 되어 작물들이 잘 자랄 수 있다. 하지만 화학비료를 준 밭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석회비료도 줘야 할 거고, 이것저것 챙겨야 하는 게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우리는 화학비료를 쓰지 않기로 했기에, 이장님을 통해 주문한 가축분 비료 외에는 직접 퇴비함을 만들어 충당하고 있다. 이번 주에는 그동안 쌓아왔던 채소, 과일 퇴비가 잘 되었나 뒤집어 보았다.
산에서 가져온 낙엽과 과일 채소 껍질을 섞어 만든 퇴비. 아주 질이 좋다.
아주 잘 되었다. 아내가 만든 퇴비함이 아주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퇴비도 작물을 키우며 잘 활용할 예정이다. 일단 오늘은 가축분 퇴비부터 뿌려보자.
아직 미숙 밭이라 흙이 좋진 않다
시골길을 지나가다 보면 가축분료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경우가 많은데, 농사를 시작해보니 이 냄새야 말로 봄의 시그널이고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봄바람의 알림이다.
퇴비도 잘 섞어줬고, 화단 정리도 조금 해뒀다.
오랜만에 밭 일이라 퇴비 몇 포 섞어 줬는데도 몸이 참 고되다. 하지만, 겨울 동안 수척해져 있던 땅이 다시 힘을 얻은 듯한 모습으로 보여서 뿌듯했다.
오전 일을 마치고, 숯불을 피워 고등어를 구웠다. 왜 그동안 고기만 구워 먹었지 하는 후회가 밀려올 정도로 생물 고등어구이는 정말 말도 안 되게 맛있었다. 다음에 또 해 먹어야겠다.
고된 노동 후의 점심. 오늘 점심은 고등어구이다
동네 식구들이 늘어난다.
이번 주에 보니 맞은편에 새로 분양된 주말 농지에도 농막들이 들어왔다. 직접 가서 보니 벌써 네 군데에 터가 잡혀 있었다.
자연의 풍경이 아름다워 좋은 곳이지만, 사람도 조금씩 늘어나니 작은 마을에 활기가 생기는 느낌이다. 그런 마을에는 어김없이 동네 마스코트가 생기기 마련. 우리는 새로운 방문자. 동네 고양이를 만나게 되었다.
농막에서 점심 먹으며 손질해 뒀던 고등어 머리와 꼬리 냄새를 맡고 찾아왔나 보다.
고등어를 구웠더니 고등어 냥이가 찾아왔다
아랫 농막 사모님께 들으니, 이 동네 인싸 길고양이란다. 애교도 많고, 사람도 잘 따르고 순하다.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지만 키우지 못해 아쉬워했던 우리 딸.
처음에 조금 경계하던 이 녀석도 딸아이의 애정공세와 생선 공세에 당해낼 재간이 없었나 보다. 저녁때가 되어서는 딸내미 품 안에 안겨서 그르렁그르렁 거리며 단짝이 되어 있었다.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이지만 딸이 만들어준 놀잇감으로 함께 잘 논다
주말초록생활 독자님들을 만나다
몰랐는데, 알게 모르게 동네에 내 매거진의 독자님들이 많은 것 같다. 이제 막 새로 농막과 텃밭을 시작하시는 송파에서 오신 부부 중 사모님이 인사드리는 날 보고 '팰럿님' 하며 인사하셨다. 그리고 맞은편에 농막을 준비하시는 한 가족도 인사드리는 날 보고 똑같이 팰럿 님이시죠?라고 물어보았다. 순간 당황.
아, 이렇게 내 일기장이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알려지는구나 ㅋㅋㅋ
처음엔 당황했지만, 자주 인사는 못 드려도 이렇게 글로 라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또 동네 소식 서로 전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