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팰럿Pallet Mar 06. 2021

겨울에 농막을 방치하면?

초보 도시농부라 수업료가 꽤 비싸네요

아... 속상하다.

이 글을 쓰는 날의 원래 계획은 이렇다.

아침에 일찍 양평 근처에 하우징 업체에 방문해서, 양변기를 구매한다.

양평 농막에 와서 겨울 동안 깨진 변기를 제거하고, 새 변기를 설치한다.

산에 올라가서 땔감과 낙엽 더미를 구해온다. 땔감은 점심 솥뚜껑 주꾸미 삼겹살 불을 피우는데 쓰고, 낙엽 더미는 퇴비함에 채소 껍질들과 섞어서 잘 썩도록 만들어 준다.

농막 주변 청소를 한다. 텃밭 주변 정리를 한다.

텃밭 흙을 전체적으로 뒤집어주고, 썩힌 퇴비를 미리 섞어준다.

오랜만에 양평의 별을 보며 밤을 보내고, 겨울 동안 일부 무너져 내린 석축의 흙들을 정리한다.


이 계획을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절반은 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이 밤에 난 양평이 아닌 집에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아침에 양변기를 사 오고 설치하는 데까지 무난하게 잘 진행되었고, 날씨도 따뜻했기에 모두 순조롭다고 느꼈다. 양변기도 인터넷에서 봤던 것보다 저렴하고(7만 5천 원) 설치도 쉬워서 돈을 쓰고 산 건데도 돈을 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셀프 설치, 그리 어렵지 않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진 찍고 좋았지.. 그다음부턴 사진 한 장 찍을 정신이 없었다..

근데, 그때 아래 아래 농막 아저씨가 오셨고, 아저씨의 말을 전해 들은 아내가 말했다.

"겨울 동안 지하수 펌프 부품이 파열돼서 지하수 업체 부르셨는데, 혹시 우리도 문제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하시네. 같은 업체에서 했잖아."


"아, 그래그래."

건성건성 대답을 하고, 변기 설치를 마무리했다. 변기 설치할 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지하수 모터가 주기적으로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 물 안 쓰는데 모터가 왜 돌아가?"

아내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 맞다. 지하수 펌프!'

부랴부랴 지하수 펌프를 확인해보니, 이게 웬일.. 펌프 상단 부분에 크랙이 가 있었다. 좀 오래되었는지 녹이 슬었고, 물도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크랙이 아주 크지 않아서 솔잎이 들러붙었다고 생각하고 지나쳤던 30분 전의 나를 떠올려보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아래 아래 집에 왔던 지하수 업체 직원은 돌아가고 없었다.

서둘러 다시 업체를 불렀지만, 업체는 이미 밀린 작업으로 오후에나 올 수 있다고 했다. 아래 아래 농막의 케이스를 이야기해 주며, 어디가 파열되었는지 알기 어려우니 교체하고 현재 펌프는 부품 교체용으로 활용하는 게 좋을 거라는 제안을 받았다. 비용은 28만 원.


"여보, 어서 들어와 봐요!"

아내가 다급하게 불렀다.

그렇지. 좋은 일은 하나씩 가끔 찾아오지만, 나쁜 일은 한 번에 손잡고 와야지. 직감했다. 더 엄청난 일이 날 기다리고 있음을.



재앙의 서막

농막 안에 들어가 보니, 농막 바닥에는 물이 흥건했다. 원인은 농막 내부의 파이프 연결 관의 파열로 추정되었다. 농막을 쓰지 않는 동안 물을 뺀다고 빼뒀지만, 이번 겨울 너무 추웠기에 고여있던 물이 얼고 팽창하며 여기저기 크랙이 생긴 거다. 부랴부랴 지하수 연결 밸브를 모두 잠그고 바닥의 물을 닦아냈다.


농막 업체에 연락을 했다. 뒤통수에는 아내의 눈빛이 따갑다. 돌아보지 말고 통화를 한다. 농막 업체는 이런 일이 잦은 지 월요일에 방문해서 조치를 취해 주신다고 했다. 농막 업체는 사후 서비스 기간이 4년이니, 그래도 안심이긴 하지만, 작업이 커지면 또 비용이 나오겠지..


그렇게 순식간에 오전이 흘렀다.

미리 말려둔 장작은 왜 이리 불이 안 붙는지, 점심 불 붙이기도 평소의 2배 넘는 시간이 걸렸다.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하늘을 짙은 회색빛을 채웠고, 바람도 다시 겨울바람으로 바뀌었다. 이게 무슨 연극 같은 일인가. 나의 흔들리는 동공처럼 날씨와 주변 상황이 맞춰지다니...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지하수 업체 직원이 왔다.

지하수 업체 직원은 내가 얼마나 방한 대책을 허술하게, 대충 했는지 적나라하게 이야길 해 주었다. 조언해주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반박할 게 없었다고나 할까.

아직 비싼 수업료를 계속 내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농막을 준비하시는 분들의 겨울을 위해서. 그리고 쉽게 잊어버리는 이번 해 겨울을 나를 위해서 여기에 몇 가지 주의사항을 적어두어야겠다.



베테랑이 아니라면 꼭 지켜야 할 3가지 겨울 준비

겨울철에 농막을 자주(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이 자주다) 가실 것이 아니라면 아래 사항을 꼭 지키자. (보통의 겨울이라면 이런 수준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번 겨울은 정말 너무 추었고, 이런 추위가 또 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기 때문에 추운 겨울이 오는 지역 분들은 잊지 말자.)


첫째. 농막 안에 고여있는 모든 물을 빼자. 온수 탱크, 변기, 파이프 연결관.

요즘 농막은 바깥쪽에서 농막 안의 모든 물을 빼는 밸브가 있다. (보통은 그렇다.) 그걸 열어두고, 안에 있는 물이 나오는 모든 밸브와 수도꼭지를 열어두자.

내가 하지 않았냐고? 물론 했다.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이번에 비싼 수업료를 낸 부분은 모두 열어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하수가 농막으로 들어오는 밸브만 잠겨있다면, 모든 밸브와 수도꼭지를 다 열어두어야 공기압에 의해 물이 모두 빠진다. 나는 수도꼭지를 잠가뒀고, 일부 밸브도 잠가두어서 그 안에 물이 충분히 빠지질 못했고, 그 물이 내가 물을 모두 빼놓은 양변기로 일부 채워졌다. 그래서 결국 양변기도 동파되며 깨졌고, 농막 내부의 연결관 일부도 함께 크랙이 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두 열어둬야 한다. 그래야 동파되지 않을 수준이 된다.


둘째. 정말 겨울 동안은 가지 않을 거라면, 지하수 펌프도 아예 분리해서 창고에 보관해두자.

물론, 인버터 모터를 쓰시는 분들은 해당하지 않는다. 나처럼 심정모터와 물탱크가 연결된 지하수 펌프(기계식 모터)를 사용하시는 경우에 한정된다.

방한대책으로 이불을 채워 넣고, 이런 거 저런 거 다 해도 너무 추우면, 얼 수 있다. 방한대책을 할 거라면, 면이불이 좋다. 지하수는 기본적으로 겨울엔 외부보다 따뜻하다. 그래서 면이불이 아니면 오히려 물이 맺힐 수 있고, 추운 날씨로 인해 맺힌 물이 급격히 얼면 동파로 이어질 수 있다. 난 스티로폼과 솜을 활용했는데, 스티로폼 벽이야 그렇다 쳐도, 솜은 물을 흡수하지 못하니 그대로 성애로 변해버렸다.

얼면 펌프도 크랙이 갈 수 있고, 눈에 안 보이지만 쉽게 파손될 수 있다. 그럴 거면 몽키스패너로 파이프와 연결된 모터를 분리해서 따로 보관해두자. 그래야 모터도 오래 쓰고, 겨울 내내 걱정하는 일도 없을 것 같다. 이 팁은 지하수 업체분의 조언이다.


셋째. 너무 추워서 가기 어렵더라도, 가끔씩 방문하자.

사람이 오지 않는 겨울의 농막은 망가진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게 되었다. 가끔 가봐야 어디서 무슨 문제가 생기는지 알 수 있고, 그래야 그다음 겨울과 계절을 대비할 수 있다. 모든 농막의 주변 환경과 상황과 날씨는 다르기에 본인이 스스로 겪어보는 게 좋다.


벌써 한 40만 원 가까이 겨울 후회 수강료를 지불한 초보 도시 농부의 팁이다.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근데, 내 주변 농막의 절반은 나와 비슷하거나 같은 경험을 겪고 있다. 그만큼 다들 '나도 알고 있어'라고 간과하고 있다. 아니라고 하실 수 있다면, 그대는 정말 준비된 사람이다. 이제 귀농해도 문제가 없을지도!





매거진의 이전글 돌보지 않았던 농막의 겨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