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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Jan 11. 2022

남편이 자꾸 과자를 사 온다

초코첵스 안 좋아합니다

 백수가 되고 거의 모든 시간을 집에서만 보낸다.

이런 내가 안쓰러운 건지 남편은 퇴근길에 자꾸 과자를 사들고 온다. 과자 좋아하게 생겼다면서 싱글벙글한 얼굴로 한가득 주전부리를 들고 오는데 나는 사실 과자를 썩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직장에서 해고된 상실감이 우울감을 계속 몰고 오고 있다는 걸 그는 눈치채고 있었다. 두어 달은 매일 눈물바람이었고 그 이후의 시간들은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한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이벤트일 수 있는 그 일이 나에게는 큰 아픔이었고 고립된 상태에서 혼자 견뎌내는 시간들이 꽤 힘겨웠다. 그런 나를 위해 달콤한 과자들로 그는 나를 위로하려  했다.


고된 매일을 보내고 온 후에도 항상 웃으면서 퇴근하고 간간히 과자를 한 아름 끼고 들어오면서 간식이라고 더 크게 웃었다. 그의 마음이 고맙고 감사했다.  과자를 안겨준 다음날은 간식으로 먹었냐면서 확인까지 하니 하나라도 먹는 시늉을 해야 했다. 좋아하지 않는 과자들을 끼고 몇 달을 지내다 보니 이제 입이 심심할 때면 바삭한 과자를 찾고 우울해진다 싶으면 초콜릿이 듬뿍 들어간 쿠키를 집어 든다. 모든 것이 남편의 계략이었던 것일까?


 사회로부터 멀어졌다는 상실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졌으나 간식으로 인한 군살을  얻었다. 천군만마의 군살을 얻고 다른 종류의 우울감을 맞닿드리고 있는데 며칠 전에는 초콜릿이 잔뜩 묻은 시리얼을 사들고 왔다. 요즘 우울해 보인다면서 달달한 시리얼 먹고 힘을 내란다.


-고마워. 근데 남편아.

  나 진짜 단거는 질색이야. 초코첵스는 정말 아니야.


내 체형은 어릴 때부터 통통에서 뚱뚱과 비만을 거쳐 지금은 간신히 통통 단계에 머물고 있다. 일반적으로  군것질 좋아하게 생긴 몸뚱이랄까. 남편의 말에 의하면 초코첵스나 아폴로 좋아하게 생겼다고. 단거 먹으면서 바닥에 누워서 게으른 거 좋아할 상이라고 한다.

 

남편이 상상하는 성향과  나는 딱  반대다.

 단 음식은 즐기지 않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채소 기반의 한식을 사랑하고 간식으로 생채소를 즐기며 가벼운 음식들을 좋아한다. 통통하니 게으를 거라는 그의 고정관념에서 나온 생각일 테지만 자꾸 들으니 단 걸 좋아해야 하나 싶을 정도다.  듣기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나는 그렇지 않은데 너는 그렇게 생겼어라는 말을 자꾸 들으니 내가 바뀌어야 하는 건가 하는 의심이 싹튼다. 어른들말이 틀릴 것이 하나도 없었다. 긍정적인 말을 들은 아이는 긍정적으로 변하고 부정적인 말을 들은 아이는 부정적으로 변한다는 것. 말의 힘은 엄청 크다. 

  긍정적인 방향의 말을 지속적으로 들을수록 그 방향으로 가게 된다. 간식 봉지에서 얻은 체득된 경험이다. 

 남편이 가진 고정관념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나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그의 말을 바꾸는 것으로 시작해봐야겠다. 


  그동안 집에만 틀어박혀있는 나를 위로하는 방식이 원치 않는 간식거리 배달이 지었지만 그 마음은  참 고맙다. 긴 상실감을 빠져나오는데 그 간식들이 꽤 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니까. 원치 않는 방식이었더라도 그의 마음만은 내내 따뜻했다. 그렇지만 이제 초콜릿 과자 좋아하게 생겼다는 말은 사절이다. 


좀 더 발전적인 단어로 나를 표현해주기를 부탁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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