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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Jan 11. 2022

사고가 났다

20200116 


 2년 전 이맘때 있었던 일이다. 

브런치에 기록해두고 잊고 있던 날들의 기록. 






오후 다섯 시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님이 교통사고가 났다고 신용카드 번호가 보이게 찍어 보내달란다. 정신없는 목소리에 카드도 없이 엠블런스에 탔다며 수화기 너머로 급박한 상황이 느껴지기에 바로 사용카드 사진 찍어 보내고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퇴근시간까지 오지 않는 전화.

퇴근을 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하니 시어머니가 아침에 신호위반차에 받혀서 응급실에 갔다가 지금은 입원할 병원을 찾고 있다고 했다. 다행히 수술이 필요한 상태는 아니구나 싶어 안심했고 또 화가 났다.


 일주일 뒤에 친정엄마 칠순 기념으로 친정가족들과 다 함께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라니.

정신없이 시댁으로  갔다가 그 지역에 입원할 병원을 찾지 못했다고 다시 우리 집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온다는 전화를 받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서울과 경기도를 빙빙 돌아 병원으로 향했다.


 어느 병원이건 환자의 상태를 보고 입원을 결정한다고 해서 골반골절로 걷지도 못하는 어머님을 이리저리 모시고 다녔다고 했다. 이날 하루 사설 엠블런스에 쓴 비용만 수십만 원. 결국 마지막 들른 병원에서 입원대기를 걸어놓고 다시 시댁으로 향했다.


 다음날 다행히 병실이 나서 우리 집 근처 병원으로 입원을 하셨고 간병인이 붙었다.


이 모든 과정이 처음이라 남편은 처리하는 내내 신경이 곧 두서 있었고  온 가족들은 그야말로 정신을 놓아버렸다. 얼마 전에 인공심장박동 수술을 하시고 혼자 계실 고령의 아버님은 누가 챙기며, 간병인이 있다 하더라도 어머님 시중은 어찌할 것이냐 등등 모두 걱정이 태산이었다.

지방에 사시는 형님의 누나가 올라오고 우리의 휴가는 잠정 보류되었다.


 맞벌이인 우리는 당장 병원에 붙어있을 수는 없지만 출퇴근길에 매일 병원에 들러야 했고. 자잘한 심부름과 어머님의 어리광. 잔소리. 간병인에 대한 불만에 더해 간병인 핸들링까지 피로한 날들이 예고되었다.


노인들에게 최악의 경우라고 하는 골반골절이었지만 다행히 신경 쪽은 문제가 없는 듯해 이제 뼈가 붙기를 기다리는 상황인데. 어머님의 어리광과 잔소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데시벨이 높아지고 있다. 퇴근 후 잠시 들러보는 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질 정도로 불평불만을 쏟아내시는데 이걸 견디는 것이 쉽지 않다.


 어머님 본인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은 "내가 아프면 큰일이지. 누가 날 돌보고 아버지는 어쩌고" 하셨는데 이렇게 누워버리시니 정말 큰일이다.

골절이 언제 붙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끝이 없어 보이는 지금 답답하다. 양가 부모님이 아직 살아계신다는 것만도 아주 감사한 일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는데 앞으로 적어도 4번은 이런 병원생활을 겪어야 한다. 부모님이 고령이 되실수록 무서운 병원생활.


 사고소식을 듣고  입원 병원을 찾아다니고 입원하고 간병인을 구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남편이 제일 고생이고 안쓰럽긴 했으나 어쩐지 나는 방관자 입장에서 보게 되더라. 내 부모의 일이 아니어서 인지 아니면 그동안 어머님께 쌓인 미움 때문인지 난 자꾸만 참관자의 시선이 된다.


 시어머님은 평소에도 아버님 보필을 삶의 낙으로 사셨던 분인데 본인이 아파서 누워 있으면서도 "아버지 보필을 내가 해야 되는데" 라며 끝없이 말씀하신다. 이렇게까지 이타적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본인보다 아버지. 항상 아버지.

 결혼하고 처음에는 시댁의 모든 중심이 아버지로만 돌아가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비교적 수평적인 집안에서 자라 그런지 시댁에서는 아버지 말씀이 법이요 하는 분위기가 공산주의 같았고 아버지 말이 전부 다 맞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왕으로 군림하시면서 집안일도 일상생활의 모든 것도 아버지는 아무것도 몰랐다. 직장생활만 열심히 해서 집에 부족하지 않게 돈을 주었을 뿐,  생활 전반에 대한 모든 것들은 어머님이 전부 처리하셨는데. 어머님은 은행일. 집수리. 식사는 말할 것도 없고 양치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 3살 아이처럼 아버지를 보살피셨다. 난 정말 기함을 토했고 시간이 갈수록 남편도 아버님을 닮아가는 게 아닐까 싶어 무섭기도 했다.

 그런데 본인이 아프지 않은가.

불가항력으로 몸져누웠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남편을 걱정하는 건 대단한 사랑인가 집착인가.

공감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상황들이 있는데 나는 시어머니를 전혀 공감도 이해도 할 수 없었다.

뺑소니 사고를 당하고 누워있는 것은 본인인데 남편의 끼니 걱정이 되는 것이 정상인가?

50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유지하면 저렇게 되는 것인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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