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일영 Dec 24. 2021

은퇴자처럼 살고 있습니다.

이대로 은퇴해 버리고 싶지만 

파이어족이라는 말이 익숙해진 요즘, 나는 그들의 일상이 어떨지 궁금했다. 

포털에 파이어족, 은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얼마를 모아야 하는지, 기간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재테크는 어찌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만 난무할 뿐 그들의 은퇴 후의 생활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다 카카오 사내커플에서 마흔에 은퇴한 김다현 님이 TV에 출연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고소득자였던 부부는 재테크 없이 오로지 근로소득을 모은 돈으로 마흔에 부부가 함께 은퇴를 하고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그들의 은퇴생활을 엿볼 수 있었는데, 오전 8시쯤 기상, 커피타임, 운동, 11시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오후는 각자의 시간을 갖는다. 이른 저녁 후에는 맥주와 함께 TV를 보는 삶이다. 


요즘 나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과 내가 다른 것이 있다면 나는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맞이한 돈 없는 백수라는 것. 


 한동안 기상시간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많이 괴롭혔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매일 새벽 6시 이후에 일어난 본 적이 없던 내가 백수 생활이 길어질수록 기상시간이 점점 늦어져서 요즘은 8시경에 일어난다. 더불어 취침시간도 늦어졌다.  지금까지 내가 초저녁 잠이 많은 사람인 줄 알았다. 저녁 식사 후 설거지를 끝내고 나면 바로 곯아떨어지던 내가. 요즘은 밤 11시, 12시까지 무료하게 핸드폰을 보고 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일상이 계속되면서 나에 대한 실망감과 자존감 하락은 부록처럼 따라왔다. 


  사회가 정한 규칙적인 바른생활을 좋아하는 나는, 이른 아침 운동을 마치고 사워를 하고 도시락을 준비해서 출근하고 경제활동을  한 후. 돌아온 집에서 내 손으로 밥을 지어먹는 일상이 언제나 고맙고 즐거웠다. 

그런 활동 중에 경제활동이 없어진 후의 내 생활은 불안하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상이 되었다. 모두들 일하는 중에 나는 놀고 있다는 상황은 점점 더 나를 고립시켰다.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불편한 나날들 


이력서와 경력기술서를 수정하고 또 수정하면서 다시 사회로 돌아가지 못할 수 도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은퇴를 하고 싶지는 않은데 원하지 않는 은퇴로 가고 있는 것인가 라는 마음이 들 때즘 내 생활이 지금 은퇴자와 다름없다는 의식이 들었다.  은퇴자금을 만들어서 계획적으로 은퇴한 분과 다를 바 없는 삶. 그들은 은퇴 후의 삶에 만족한다고 했다. 어떤 일이든 준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이런 느긋한 삶에 몸이 적응하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계획적인 은퇴를 한 분들은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느긋하게 지내고 마음의 불안이 없다.  만약 내가 기울어져가는 회사에 대한 애정을 끊고 퇴사를 준비했더라면 이렇게 긴 시간 허송세월 하면 보내지 않았을 텐데라는 후회도 함께 들었다. 

 

 만약, 그랬더라면 에 대한 후회는 계속되고 있다. 이것을 끊어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텐데 불안함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 아직은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은퇴자처럼 살고 있지만 마음은 지옥인데 속 모르는 사람은 내가 부럽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이븐에 나만 빼고 모두 행복한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잃어버린 반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