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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Oct 11. 2021

잃어버린 반지

춘천에서의 두 번째 악몽


처음 춘천을 다녀온 건 20대 중반이었다.

코끝이 매캐하게 추웠던 날 오들오들 떨면서 시내에서 숙소를 찾아 헤매던 기억.


그리고 새로 생긴 케이블카를 타자고 갔다가 결혼반지를 잃어버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침부터 평소와 다른 행동들이 이어졌다. 토요일에 외출하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이 외출을 제안했고 나는 평소에는 잘 끼지 않는 결혼반지를 끼고 싶었다. 점심쯤 도착한 케이블카는 표가 매진되어 탑승을 못 했지만 기념품샵에 들렀다.  평소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 매장에서 풍기는 향이 마음에 든다면서 방향제를 둘러봤고. 각자 보던 우리는 같은 향을 골랐다. 신기하다 하며 방향제를 구입했다.

그리고 맛있는 커피까지 마시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의 반지가 사라진 걸 알아챘다.


출발할 때부터 손에 꽉 맞는 반지가 불편해서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었다는데 언제 어디서 빠졌는지도 모르게 반지가 사라졌던 것이다.  처음 사실을 알았을 때는 무덤덤하게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라고 말하던 그가. 집에 도착하고 점점 심각해지더니 다시 찾아보러 춘천을 가지고 했다.

집 도착시간은 밤 열 시.  그 시간에 경로를 더듬어간들 찾을 수 있을 리 만무하지만 우리는 새로 주유를 하고 반지원정대를 떠났다. 왕복 200킬로가 넘는 서울과 춘천을 다시 복기하기 위해 400킬로의 여정을 남편은 혼자 운전했다.


반지가 떨어졌을법한 장소부터 짚어가며  한밤중 춘천을 누볐다. 춘천댐 도착시간이 자정. 식당 주차장 도착시간이  12시 30분. 카페 주차장이 1시 30분. 예상대로 반지는 찾지 못했고 남편은 점점 말이 없어지면서 표정이 굳어갔다.  설상가상으로 흐린 날씨에 안개가 자욱해서 춘천에서 가평 양평까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쯤 되 잃어버린 결혼반지 생각은 점점 없어지고 집에 가고 싶은 생각만이 간절했다.

  우리가 가진 가장 고가의 제품이었고 반지 안쪽에 결혼 날짜와 이름이 새겨진 의미 있는 물건이었는데 피로가 내려와 될 데로 되라는 심성이었달까.  두어 시간 전만 해도 반지를 잃어린 남편이 원망스러웠는데 이젠 그의 피곤하고 자포자기한 모습이 안쓰러웠다.

어차피 잊어버린 물건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안녕을 고하게 되었달까.

그 역시 찾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밤중에 다시 돌아간 것은 포기하기 위한 절차였다고 했다.

 찾아볼 곳은 모두 찾아보고 나면 포기하게 될 것 같았다고.


  불운이라고 느끼면 불운이겠으나. 우리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불편하게 느껴졌던 반지가 떠나고 함께 고좋은 향기를 두고 갔다고

반지가 떠나면서 새로운 방향제가 들어왔다.

 잃어버린 것은 없는 것으로 하자고 했지만.

꽤 속이 상하고 찝찝한 건 쉽사리 없어지지는 않을 듯하다.




이틀을 꼬박 속상함에 서로 데면데면했다.

오늘 아침 외출을 준비하던 중 반지를 넣어두던 곳을 열어봤는데...  남편의 반지가 돌아와 있었다.

어리둥절하는 나에게 그는 반지를 잃어버린 것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서 자동차를 다시 또 찾아봤다면서 지난밤에 찾아서 넣어뒀다고!!

잊자 하니까 반지가 돌아왔다.

하루에 두 번 춘천을 왕복하는 고생이 있었지만 반지가 돌아왔으니 됐다. 바로 눈앞에 있었는데 보지 못 하고 이리저리 찾아만 다녔네.

멀리 돌았지만  반지원정대는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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