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이들은 외제차를 타고 온다
당근 마켓 6개월 차
오래전 중고나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시절에는 단 한건의 거래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그런 내가 당근 마켓 입문 6개월 차에 처치곤란이던 집안 살림들을 꽤 많이 판매했다. 사은품으로 받았던 도깨비방망이를 시작으로 요가매트, 팔릴까 싶던 십자수 도구들, 화장품과 홈트 도구들을 거쳐 최근에는 공간박스와 소음방지매트까지, 사용하지 않아서 구석에서 자리만 차지하던 것들을 대부분 처리하고 소소하게 용돈벌이까지 했다.
첫 당근을 시작한 건 집안 정리를 하던 중에 버리려던 소가전을 올린 것이었다. 혹시 팔릴지도 모르니 아주 저렴한 가격에 당근에 올려두었는데 등록 후 두어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연락이 왔더랬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당근이세요?' 하던 첫 거래 이후 슬슬 자신감이 붙어 이것저것 등록해서 용돈을 벌었다.
올려둔 물건의 가격을 깎거나 약속시간에 조금 늦는 것쯤은 이제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구매의사도 없으면서 농담 따먹기 식으로 말을 걸어오는 것은 여전히 불편하다.
그런데 당근 거래를 하면서 가장 의아했던 것은 대부분의 거래자들이 고급 외제차를 몰고 온다는 것이었다. 약속 장소의 99%는 지하철역이었는데 나와 거래했던 분들은 90%의 분들이 모두 자차로 오셨더랬다. 차종은 벤츠와 bmw가 주를 이루고 국산차도 모두 고급 기종이었다. 중고거래니 편협한 고정관념으로 생각하기에 나처럼 짠돌이 짠순이가 나올 줄 알았는데 전혀 반대의 사람들을 만났던 것이다. 모두 귀티가 줄줄 흐르던 분들이었다.
이쯤 되면 내가 팔았던 상품이 고급 상품이었냐 싶겠지만, 전혀 아니었다. 사은품으로 받았던 요가매트는 오천 원에, mdf공간박스는 하나에 천 원, 스텝박스는 만원.
가장 고가에 팔았던 제품은 취미로 하던 십자수 용품이었는데 이만 원에 팔았다. 이런 저렴한 것들을 사러 오시면서 고급차를 몰고 오시는 분들을 보니 새 상품만 찾아 구매했던 내 행동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보다 훨씬 여유 있어 보이는 분들이 오천 원, 만원에 물건을 사겠다는 수고를 감수하는데 나는 귀찮다는 이유로 새 상품을 클릭 한 번으로 주문했다. 당근을 경험하면서 사는 건 쉬워도 파는 건 참 어렵다 싶었는데 당근을 이용하는 분들의 차를 보면서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경험한 당근이들이 부유한 분들이셨던 건지 아니면 대부분의 당근이들이 이런 분들인 건지 너무 궁금하다.
아니면 나만 빼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부자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