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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Oct 24. 2022

얼마만의 대성통곡인가

이런 씬!!!박한 꼰대 같으니 

 오전 11시 30분, 집으로 돌아가면서 울음을 꾹꾹 참았다. 

중년 여성이 길거리에서 울면서 다닐 수는 없다는 사회적 체면이 나를 붙잡았다. 


 시큰한 눈만 껌뻑 거리며 잘 참고 집으로 들어온 순간 그대로 터져버렸다. 

우아아앙하는 통곡과 함께 서러움은 그야말로 물밑들이 몰려들었고 나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집이 떠나가라 울고 소리치고 설움을 토해냈다. 


그러는 와중에도 손은 노트북을 켜고 당장 해결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더러운 밥벌이였다. 

대성통곡을 하면서 손은 일을 하고 코를 풀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남짓, 사무실에서 집으로, 집에서 일을 보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은 빠듯했다. 

차분히 울면서 나를 달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기에 손은 바삐 움직였다. 


최단시간에 일을 끝내고 노트북을 챙겼다. 

그리고 오전에 준비해 갔던 도시락을 주섬주섬 꺼내서 울면서 먹기 시작했다. 

오후에 일을 하려면 속이라도 든든해야 했다. 

속이 비어있으면 더 서럽고 더 고되다는 것을 안다. 

경험으로 안다. 

밥과 함께 눈물과 콧물을 함께 먹었다. 

밥을 씹고 넘기는 와중에도 서러움은 복받치고 올라서 내내 울음을 토해냈다. 

 

휴가를 내고 집에서 청소를 하던 와중에 나를 맞은 남편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내 주위를 서성였다.

대책 없이 우는 나를 보면서 그는 어쩔 줄 몰라했고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다. 


뭐, 한발 떨어져서 보면 별일 아니다. 

상사에게 욕을 좀 먹었고, 일을 해결해 오라는 지령을 받았을 뿐이다.


그 상사가 나보다 한참 어리고, 반말을 시전 하면서 내 말에는 무엇이든지 반대를 한다는 것과

퇴근을 해도 되는지 반드시 본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으며,

점심 회식으로 떡볶이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킨다는 것. 돈은 친절하게 던져주긴 했다. 

업무를 잘 모르는 내가 무엇을 물어보자면, 

이거 몰라? 이걸 왜 모르지? 대체 왜 이게 이해가 안 가는데? 를 내뱉으며

예의 따위는 밥 말아먹은 상사라는 것이 문제일 뿐. 


지난주는 내내 야근을 시켰다. 

월요일부터 8시에 가라고 하길래, 화요일은 7시에 먼저 퇴근해 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수요일 출근하자마자 회의 소집, 퇴근은 본인한테 허락을 구하고 가야 한다는 말을 친절한 척하더라. 게다가 퇴근 허락을 구해야 하는 이유가 가관이었는데 

노동법에 따라 주 52시간 이상 일을 시키면 안 되는데 한 명씩 따로 퇴근해 버리면 근무시간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애당초 야근을 시키지 않으면 될 것을 야근은 디폴트니 노동법에 접촉되지 않을 만큼만 일을 시키겠다는 논리였다. 

이 회의에서 가장 신박했던 말은 바로, 

- 미안하지만 52시간 이상 근무하는 건 양해를 부탁합니다 였다. 

야근도 불사하고, 주말도 출근하고, 퇴근은 허락을 구하고, 주 52시간이 넘어도 이해하고 넘어가 주라 는 논리였는데, 난 그 순간 지금이 80년대인가, 노동운동을 시작해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하루의 이른 퇴근 이후로 나는 미운털이 제대로 박혀서 고난의 길을 걷고 있다. 

익숙하지 않은 업무를 받아 진행해서 가져가면 온갖 것에 꼬투리를 잡히고, 존대와 반말을 섞어가면서 말은 친절한 척 하지만 뿜어내는 모든 에너지는 부정적이다. 

어쩔 수 없다 싶어 꾹 참고 참고 참고 참고 있는데.  


통곡의 시초는 이러했다. 

팀원 모두 동일한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도 준비가 안되었고, 함께 파견 나온  신입도 준비가 안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신박한 꼰대가 나만, 나만 오후 한 시까지 준비해서 오라는 지시를 했다. 다른 직원은 내일 준비해오라면서 아주 상냥하게 웃으면서 말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한들 먹히지 않을 것을 알아서 점심시간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사무실에 있는 동안에도 설움이 자꾸 밀려와서 잠시 감정을 추스르고 있자니, 직원들이 모두 있는 회사 메신저로 '업무에 집중해주세요'라고 쓰고, 내 컴퓨터를 탁탁 치면서 메시저 확인,  이라고 하더라.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서러움은 더욱 커졌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을 리가. 


그렇게 점심시간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집에 도착해서 대성통곡을 했다. 

이렇게 울어본 적이 언제였던지. 우아아앙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통곡을 했다. 화가 난다기보다 서러워서 쉽사리 그쳐 지지 않았다. 


모든 직장에는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다. 

새로운 직장에 출근한 지 벌써 9개월쯤 되었는데 그동안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또라이인가 싶을 정도로 출근이 부담스럽지도, 월요일이 오는 것이 두렵지도 않았다. 

이 신박한  꼰대를 만나지 3주가 채 되지 않았는데, 이제 출근이 부담스럽고 월요일이 두렵다. 

지난 일요일 저녁에는 공황이 올 것처럼 불안증세가 나타나더니 호흡이 가빠지는 경험까지 했다. 

내가 스트레스에 엄청 취약한 인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겨우 이 정도였나 싶어서 실망스러웠는데 일련의 일을 겪어보니 미움받는다는 것이 실은 꽤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젊은 꼰대라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설마 저런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내가 만난 지금의 팀장이 딱 그런 사람이었다

아주 신박하게, 꼰대의 모든 기질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팀이니 개인행동은 안된다, 퇴근은 다함께다. 점심도 다 함께, 주말 출근도 다함께, 본인은 담배 피우러 다니면서 내가 잠시 쉬는 꼴은 못 본다. 흡연자를 애정 한다 등등. 

세상 신박한 꼰대를 경험하는 중이다. 


불만과 불평이 점철된 글은 남기고 싶지 않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억울하다. 

나이 먹고 일하는 게 죄인 건지, 모르면 가르쳐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밥 말아먹은 꼰대 팀장, 너. 

뒤룩뒤룩 살 더 쪄서 배가 남산만 해져라.


- 누가 우리 회사 좀 노동부에 신고해주면 좋겠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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