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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Dec 30. 2023

가슴의 두근거림이 멈추길 바란다

나의 불안증


나이가 들어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조금 옅어지기는 했으나 삶에 대한 두려움은 그대로이다. 어쩌면 빈도가 적어진 것을 옅어졌다고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아직도 내가 모르는 것들이 많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을 접할 때면 몸을 벌써 반쯤 틀고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다.


나의 부모님은 정서적 울타리가 되어주지 않았다.

우리들이 한창 클 때는 먹여주고 입혀주는 것만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믿던 시기였고 넉넉하지 못했던 우리 집에서 정서적 보살핌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평소의 부모님은 대부분의 날들에  날이 서 있었고, 거의 매일 술에 취해 들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나를 불안에 떨게 했다.


일상생활에서 불안을 자주 느끼는 나의 성향이 성장기에 겪은  환경 때문이라는 것은 어른이 되고 난 이후에 알게 되었다.

정서적 교감, 지지, 친밀감, 스킨십 따위가 없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자존감과 자신감, 사회적 관계 맺기가 어렵다는 것.

나의  인간관계가 어려운 것이 학창 시절에 겪은 왕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것보다도 더 큰 원인은 성장과정에 있었다.


어른이 된 지금은 부모님들을 이해하지만

머리로만 하는 이해일뿐, 마음에서는 여전히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중년이 되어서도 새로운 환경, 상황을 맞닿뜨리게 되니 울타리가 갖고 싶다. 혹여나 잘못된 결정으로 삐끗했을 때 보듬어주고 해결해 줄 수 있는 부모라는 울타리.


오늘 있었던 상황을 말했을 때,

나는 그것보다 더한 것을 당하고도 이겨냈다거나 산통 없이 애가 나오지 않는다는 채찍보다 따뜻하게 데운 당근을 주는 울타리


가끔 아이가 없어서 여전히 어리광을 부리게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불안증이 도질 때면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을 원망하게 된다.

먹을 것과 입을 것 말고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자존감과 용기를 주셨다면 좋았을 텐데 라는 마음.


나는 여전히 삶이 두렵고

세상이 무섭고

사람들을 믿지 못하겠다.

살아가야 하는 것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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