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remy Mar 30. 2021

작가가 되어보니 작가 지망생을 리스펙트

걱정 마세요, 당신은 이미 작가입니다

출판사, 그리고 잡지사에서 에디터로 살아가며 늘 꿈꾸었던 이름, 작가. 표지에 내 이름이 떠억 하니 쓰여 있으면 세상 그 어떠한 명함보다 영롱하게 빛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출판사 직원으로 근무할 때는 계약서 상 갑인 작가가 진짜 갑처럼 느껴졌다. 계약서에는 분명 OOOO년 XX월 YY일까지 원고를 제공하지 않을 시 서울지방법원이 결정하는 바에 따라 어쩌고 저쩌고가 많이 적혀 있었다. 그럼 계약서에 적힌 날짜가 지나면 계약을 위반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연락없이 작가가 그 날짜를 넘기더라도, 아니 조금 더 일찍 그 날짜가 다가와서 어떻게 되고 있는지 작가에게 문의할 때도 출판사 직원은 "작가님, 원고가 언제쯤 입고될 수 있을까요. 저희도 출간일정이 있어서요"라며 몸을 한껏 낮춰 을의 입장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표현한다. 계약서에 날짜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작가님의 일정을 최대한 예의주시하며 출판사의 일정도 맞추고자 이중으로 고민하고 고민하는 나날이 청산유수처럼 이어지고 또 이어져 갔다.  


출판사의 업종명이 무엇인지 아는지? 서비스업? 문화예술업? 아니다, 제조업이다. 많이들 놀라실 것이다. 사실 면세 혜택을 받고 있어서 그렇지만 출판업은 제조업니다. 책이라고 하는 재화가 만들어져야 그 물건을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매출이 발생하고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쉽게 말하자면 작가의 원고는 재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원재료라고 표현하면 정확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는 지극히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봤을 때이다. 


출판업을 쉽게 그렇게만 치부할 수는 없는 터. 지식과 문화 사업의 선두 주자라고 여기고서 대한민국 출판계에 크게 기여하고자 하시는 분들이 종종 출판계에 입문하시지만 큰 뜻을 품은 만큼 생각보다 괜찮은 작가를 만나기는 어렵고, 돈은 나가야 하고, 판매는 생각보다 이어지지 않아서 일찍 출판사 문을, 아니 회사 문을 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괜찮은 작가를 만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괜찮은 작가는 이미 유명 출판사가 다 선점하고 있거나 선점하려고 애를 쓰거나 아니면 선점될 것이다. 꽤 자주 높은 선인세와 엄청난 마케팅의 힘으로 인해, 아주 가끔은 좋은 편집자를 만났다는 순수한 행복감을 안고서.


그렇다. 작가의 위치가 1차적으로 갑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고를 써주셔야지 책을 만들 수 있으니까. 원고가 있어야 편집자가 책으로 만들고, 책이 있어야 마케터가 판매를 하고 등등의 지극히 일반 기업들이 운영하는 프로세스와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멋지게 금실로 짜놓은 이불 아래를 들춰보면 이런 대접을 받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갑을 가장한 을이나 다름없다. 원고가 부실하다는 이유로 계약 파기가 숱하게 이어진다. 계약서를 쓰기 전까지는 계속 을일 수밖에 없다. 어느 출판사라도 계약을 해줘야 책을 낼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그러한 Lucky Draw가 나에게 잘 돌아오지 않는다. 첫 책을 내는 초보작가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두 번째 책을 내애 하더라도 첫 책이 안 팔리면 초보작가나 다름없다.


많은 초보작가들을 포함하여 작가 지망생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작가로서의 꿈을 지울 수 없어 작가의 길을 걸어야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참 많다. 나 역시 뮤지컬 배우로 살지 못하면 죽을 것만 같아서 어떻게든 살긴 했으니 여한이 없긴 하지만 작가로 살겠다는 분들의 다짐을 마주하게 되면 한편으로는 응원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거절의 메일을 받고서 절망하게 될까 싶으니 마음이 두 배, 세 배 더 아프진다. 그 경험을 너무나도 잘 알고, 그 아픔을 내가 편집자일 때 어쩔 수 없이 많이 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쪽에서는 책내기가 열풍이다. 석사, 박사 학위보다 책내기가 더 위대하다고 부추기는 카피들도 많이 보았다. 일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겠다. 그 책이 바로 그 사람을 나타내는 것이니까. 하지만 왜 꼭 작가가 되어야 할까에 대해서 고민해보기 바란다. 글을 쓴다는 것이 단지 책을 내기 위한 수단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문장력도 꾸준히 늘리면서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지치지 않는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유명 온라인 교육 업체의 제안으로 글쓰기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다. 정말 많은 예비작가들을 만났다. 한 분, 한 분 나의 제자들이자 소중한 후배작가들이라고 조심스레 말해본다. 그리고 생각 이상으로 책을 출판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가끔씩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글쓰기 수업을 몇 개월 듣고나면 출판사에서 자연스럽게 출판을 해줄 거라 굳게 믿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 책을 내려면 내공이 쌓여야 한다. 내가 쓰려는, 아니 정확하게 출판하려는 분야와 비슷한 책들도 많이 읽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들이 있으면 그 책에서 지혜를 얻고, 그 책에서 놓치고 있지만 내가 쓰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책에 담을 수 있도록 잘 정리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한 문장을 쓸 때도 조심스러워야 한다. 비문인지 아닌, 맞춤법이 맞는지 아닌, 띄어쓰기는 잘되어 있는지. 물론 두 번 세 번 확인해도 틀리는 부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아, 자꾸 이런 말을 하게 되는 거 보니 선배작가랍시고, 아니면 글쓰기 강사랍시고 잔소리하는 것처럼만 느껴진다. 이러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다만 이 한마디만은 꼭 하고 싶다. 글쓰기에는 왕도도 지름길도 없다는 사실을. 꾸준히 나를 들여다보고, 부족한 점을 찾아서 메꾸고, 다시금 나를 들여다보고, 다시금 메꾸고 하는 과정의 끊임없는 반복인지도 모른다. 앞과 뒤가 구분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를 계속 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게 무슨 도 닦는 일인 것이냐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내가 글을 써보니 뫼비우스의 띠를 도는 것 같고, 도 닦는 일인 것만 같다. 글을 쓰는 것은 너무 괴롭고 지겹고 짜증나고 화가 난다. 하지만 글을 쓰면 행복해지고, 힐링되고, 나다운 내가 되는 것만 같다. 이 무슨 귀신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싶지만 분명히 그렇다.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한 명, 한 명 손을 꼬옥 잡고 제발 서두르지 말라고 하고 싶다. 꾸준하게 계속 쓰라고도 이야기하고 싶다. 전업 작가가 되겠다고 하던 일 다 때려치우는 일도 절대 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그냥 유튜브를 매일 보듯, 넷플릭스를 매일 보듯, 출퇴근길을 매일 왔다갔다 하듯, 점심식사를 하고 저녁식사를 하듯 그렇게 그냥 일상처럼 쓰다 보면 작가로서 '나의 길'을 찾아갈 수 있다. 


글쓰기의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다면 내가 벌써 조앤 롤링이 되었을 것이고, 김훈이 되었을 것이고, 조지 오웰이 되었을 것이며, 윤동주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다만 곁에서 당신이 지치지 않도록 응원해주는 러닝메이트와 같은 글쓰기메이트가 되어줄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충분하다고, 너무 큰 욕심을 내다가 글을 쓰는 것이 지겨워지고 싫어지지 않도록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다. 열심히 잘 달리고 있는데 채찍으로 내리치며 더 달리라고 할 자신은 없다. 천성적으로 그런 사람도 아니고...... 


하지만 쓰는 도중에 궁금한 것이 있다면 내가 알고 있는 바에 입각하여 잘 알려주고자 애쓰고 노력하고 싶다. 그리고 당신도 충분히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다고도 격려하고 싶다. 작가가 되어보니 예비 작가들을 더없이 리스펙트하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댓글의 무서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