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나의 아버지는 커다란 스피커를 마루에 놓고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들으시지만, 나는 내 방 책상 위에 디지털 음악 재생기기들을 늘어놓고 책상 의자에 앉아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나까지 세 명뿐인 작은 가족이지만, 각자 음악 취향도 다르고, 무엇보다 내가 음악을 듣는 동안 다른 가족들을 불편하게 하면 안 되니, 방 안에 앉아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눈치 보지 않고, 언제라도 큰 소리로 마음껏 들을 수 있으니 사실 나도 이 편이 더 좋다. 불평이 있을 리 없다. 헤드폰으로 음악을 감상하다 보면, 볼륨을 한 클릭 올린 순간 음향이 완전히 달라지면서 너무나 확연하게 소리가 좋아지는 때가 있다. 음량 한 단계가 만들어 낸 차이로, 바로 전과는 완전히 다른 고 품질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음향이 그에 비례하여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그 퀼리티가 갑자기 훌쩍 뛰어올라 버린다. 여러 소리들이 뭉쳐서 뿌옇게 들리던 음악이 프리즘을 통과한 햇빛처럼, 악기 하나하나가 또렷이 분해되어 주파수 별로 고막에 도달한다. 도약의 순간, 비연속적인 성장이다. 와인을 마실 때도 비슷한 도약을 경험할 때가 있다. 처음 코르크 마개를 열면 오랫동안 밀폐된 유리병 안에 보관되었던 액체가 공기 중의 산소에 노출되면서, 와인이 이른바 ‘숨’을 쉬기 시작한다. 에어레이션이라고 불리는 이 과정을 거치면서, 일부 와인의 경우 큰 차이로 맛이 좋아지기도 한다. 병에 잘 들어있는 와인을 별도의 유리병에 옮겨 따른다거나 (디캔팅), 술잔을 빙빙 돌려 잔 안의 액체를 찰랑거리게 하는 것 (스월링) 등도 호사가들의 괜한 허세이기는 하지만, 모두 술과 산소의 결합을 촉진해서 좀 더 맛있는 와인이 되도록 하는 실용적인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최근엔 소주를 에어레이션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돈 좀 있는 사람들의 호사라기보다는 주당들의 기벽(奇癖)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이처럼 에어레이션을 통해 와인이 열리는 순간도 단속적인 도약을 거치며 그 직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한 단계의 차이가 만드는 극적인 달라짐, 찰나의 순간에 괄목상대할 변화가 만들어진다. 99.9도까지 뜨거워지기만 했던 물이 마지막 한 단위의 에너지를 받아 100도에 이르면 이내 끓어오르게 된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에서 이런 도약의 순간을 경험할 때가 많다. 피아노를 배울 때, 될 듯 될 듯 되지 않던 한마디를 연주하기 위해, 며칠을 계속해서 연습한다. 풀리지 않는 한 단계를 넘어서기 위해 수 백 번을 반복한다. 충분히 틀리고 그래서 충분히 연습이 된 어느 날, 비로소 실수 없이 그 한마디를 연주할 수 있게 된다. 그 연습의 과정을 지나 한번 그 어려움을 넘어서면 좀처럼 틀릴 일이 없다. 성취의 기쁨은 그동안의 수고로움을 충분히 다 갚고도 남는다. 반대의 경우는 생각만으로도 안타깝다. 물이 끓어오르기 직전, 불이 꺼진다. 조금만 더 연습하면 음표에 맞게 손가락이 움직이게 되는데, 바로 그 고비를 넘지 못하고 두 손으로 건반 한 번 꽝 내려치고는 피아노 뚜껑을 닫아 버린다. 수영을 배우다 숨 쉬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고 그만둬 버리는 꼬마 아이처럼, 수영장 물만 잔뜩 먹고는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앞이 깜깜하고 한 발짝 나아가기도 힘들 때가 있다. 나아질 기미가 보여야,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어야, 이 힘든 노력을 계속할 수 있다고 변명하고 싶을 때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어려움은 더 큰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애초에 내 깜냥으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목표였으니, 오랜 시간을 노력하고도 지금 딱 여기에 정체되어 머물고 있을 터이다. 하지만, 그 목표에 닿기 위해 정말 딱 한 걸음만 남아있을 수도 있다. 내가 이루고자 원하는 목표가 그 과정에서 어떤 극적인 도약이 필요한 일이라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지간히 해서 될 일이었으면, 벌써 다 이루었을 것이다. 어지간히 해서 될 일이었으면, 지금처럼 간절히 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단속적인 변화라는은유가 희망이라고 하면 희망이다. 희망고문이라고 하면 고문일 수도 있다. 사실 볼륨을 키워봐야 귀만 아프고 음향이 좋아지지 않는 헤드폰도 많다. 애초에 공들여 만든 노래가 아니라서 명징하게 들어봐야 소음 거리인 음악도 물론 많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것인가? 스스로를 다독여 마지막 발구름판을 찾아봐도 좋을 것이다. 힘껏 굴러 마침내 날아오르는 순간, 그 도약의 짜릿함을 맛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