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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이응 Apr 22. 2021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보고

영화 속 보물찾기

이런저런 이유로 영화를 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사는 게 너무 바빠 영화 한 편 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다른 사람 다 보는 영화들을 챙겨보지 않게 되어 버렸다. 여전히 천만 관객의 영화가 나온다는데, 그런 영화들도 지나쳐 버린 지 몇 년째이다. <명량>도 놓쳤고, <기생충>도 통과, <미나리>도 계획에 없다. 이쯤 되고 나니 친구나 지인들이 흥행하는 영화 이야기를 화제로 삼아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지 못하게 되었다. 영화 안보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가끔 마음이 동하면 VOD영화 목록을 검색한다. 미뤄둔 영화가 짧아도 10년 치는 쌓여있으니, 그냥 하나 고르면 될 일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어서, 오히려 보지 않은 것들 가운데 최고의 하나를 뽑아야 할 것 같아 어렵게 느껴진다. 사실 보기로 한 작품이 내 마음에 딱 들기란 쉽지 않다. 배우가 멋지면 연출이 약하거나, 스토리는 탄탄한데 영상미는 부족한 경우, 감독의 작가주의는 이해가 되지만 너무 지루할 때도 있다. ​그래서 오랜만에 영화를 보더라도, 나는 욕심을 버리고 대신 보물 찾기를 하기로 했다. 잡동사니가 가득 들어있는 상자에서 쓸만한 물건을 골라내는 것처럼, 2시간짜리 영화 안에서 어떤 면이건 내 마음에 드는 포인트를 짚어가며 기왕에 투자한 시간을 후회 없게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영화를 고르면, 1년 만에 본 영화가 별로였다고 해도 실망을 덜할 수 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면서 두세 가지 기억할 만한 점들을 뽑아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영화에서 가장 찾기 쉬운 보물은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여자 주인공이다. 머릿속을 떠돌아 다니는 이상형의 조각들이 모여 한 명의 인물로 등장할 필요까지는 없다. 대신, 영화를 보는 동안 여자 주인공의 매력에 다른 사람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면 된다. 나도 잘 몰랐던 내 취향에 맞아 떨어져서 여자 주인공의 행복과 시련에 내 감정을 투자할 동정(同情)의 대상으로 부족함이 없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여자주연배우는 하마베 미나미, 2000년생 일본 배우다. 예쁘고 귀여운 여자배우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우아한 외모와 배우 자신의 존재감으로 영화 속 세상을 장악해버리는 아우라와는 아직 거리가 있다. 대신 극 중 여자 주인공 사쿠라의 매력은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여러 요소들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에서 오는 묘한 감정에 있다. 교실 안 최고의 인싸이더이지만, 친구 하나 없는 소심한 외톨이 소년을 마지막 친구로 선택한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사실 얼마 남지 않았다. 췌장이 고장 나서 죽음을 목전에 두었지만, 예상과는 다른 그녀의 마지막까지도 하나로 잘 어우러지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약속된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코를 찡긋하는 환한 미소와 함께 보이는 담담한 감정의 부조화가 나를 그녀에게 빠져들게 했다. 마치 기대한 것과는 살짝 다른 맛의 음식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위화감처럼, 예상을 벗어난 뜻밖의 자극은 사람의 감각을 예민하게 해서 그 자극을 음미하게 만든다.

캐릭터에게 기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보물 같은 즐거움은 나와 극 중 인물을 연결시킬 수 있는 공감(共感)의 고리이다. 나를 그 인물에 대입해서 자신을 투영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남자 주인공은 하루키, 맹장수술로 학교를 결석해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교실 안의 아웃사이더다. 맹장수술을 위해 갔던 병원에서 같은 반인 사쿠라가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다는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된다. 그 이후 사쿠라에게 나무같이 든든한 ‘사이좋은 소년’이 되어 벚꽃처럼 아름다운 소녀가 보내는 마지막 봄을 함께 한다. 그의 취미이자 특기는 학교도서관의 사서, 방과 후 시간의 대부분을 그 도서관에서 보낸다. 졸업 후 모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영화 속의 현재에서도 하루키는 예전의 도서관으로 돌아가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했던 첫사랑 사쿠라를 떠올린다.

친구들이 군입대로 하나 둘 학교를 떠난 대학교 3학년, 마땅한 갈 곳이 없었던 나는 중앙도서관 서가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입학 때는 학생들에게 책장을 공개하지 않고 제목을 적어 열람신청서를 제출하면 대출을 해주던 폐가식(閉架式)이었던 도서관이 마침 개가식으로 바뀌면서, 나에게 비로소 그 크고 낯선 학교 안에 정을 붙일 만한 곳이 생겼다. 하루 안에 다 읽지도 못할 숫자의 책들을 뽑아서 서가 사이 작은 책상에 쌓아두기도 하고, 멀쩡한 자리를 두고도 바닥에 앉아 책 읽기에 몰두한 척을 하기도 했다. 시험 기간에 읽는 소설책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탈이었고, 다 읽지 못한 신간은 엉뚱한 책장에 꽂아두고 다음 날 이어서 읽기도 했다. 학교에 가서 하루 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들이 며칠씩 이어졌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그저  쓸쓸하거나 외롭지만은 않다. 늦은 오후, 창을 넘어 들어오는 햇살 속 책꽂이 사이 뿌연 먼지와 그 열기에 스멀스멀 올라오던 오래된 종이 냄새는 어제처럼 선명하다.

영화 속 보물 찾기의 단골손님은 역시 오래오래 기억되는 한 줄의 대사이다. 글로 쓰여진 이야기와는 달리 영화에서는 영상이 묘사의 수단이 된다. 몇 개의 문장으로 적혀질 사건이 몇 초의 장면으로 대체된다. 그리고 목소리로 전달되는 대사가 있다. 영상은 시청자에 의해 해석된다. 하지만 대사는 여전히 만든 이의 의도가 제법 온전히 전달된다. 그래서인지 인상 깊은 한 줄의 대사로 영화 전체의 기억이 결정되고, 또 쉽게 다른 사람과 공유되곤 한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너나 잘하세요", "누구냐, 너" 같은 대사들은 영화의 내용이나 심지어 제목보다도 오래 머릿속에 남는다.
 
사쿠라는 하루키와 내장구이를 먹는다. 아픈 부위에 해당하는 음식을 먹으면 몸 안의 아픈 곳이 나을 수 있다는 오랜 미신 때문이다. 물론 병이 나을 거라 진지하게 믿지는 않는다. 오히려 췌장이 고장 난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비춰져 더욱 서글프다. 시간이 지나 하루키와의 사이가 조금 더 가까워졌을 즈음, 사쿠라는 자신이 죽으면 하루키가 자신의 췌장을 먹어도 좋다고 말한다. 영문을 몰라하는 하루키에게 사쿠라는 "누군가 죽은 이의 몸을 먹어주면, 죽은 사람의 영혼이 먹은 사람의 몸 안에서 계속 살 수 있어"라고 덧붙인다. 조금이라도 더 살아가고 싶은 그 아쉬움을 전할 때도, 사쿠라는 입고리를 올리며 엷은 미소를 짓는다. 영화의 마지막, 둘은 늦은 벚꽃여행을 떠난다. 약속 장소에서 사쿠라를 기다리며 하루키는 메시지를 보낸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도대체 영화의 장르를 의심하게 만드는 이 영화의 기괴한 제목은, 사실은 책만 읽으며 지내던 소심한 소년이 첫사랑 소녀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순수한 승낙의 표현이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기생충>도 안 본 사람이 챙겨봐야 할 영화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몇 가지 반짝이는 보물을 찾을 수 있었던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되었다. 친구들이 영화 이야기를 나누다 말할 거리가 떨어진다면, 나도 슬쩍 이 영화 이야기를 꺼내봐야겠다. 만약 누군가 이 심상ㅎ지 않은 제목의 영화에 흥미를 보인다면, 나는 살짝살짝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있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여자 주인공과, 어딘가 나랑 비슷해 보이는 아웃사이더인 남자 주인공에 대해 신이 나서 이야기를 이어나갈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아내를 대신해 딸아이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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