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더미
“같이 살 거면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정확한 문장이 기억나지 않지만 어머니는 적어도 시집에서, 저 표현으로 요약되는 삶을 사셨다. 어둑해질 무렵 시작된 이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얇은 실이 굵게 뭉쳐지듯 구체적인 형상을 띠며 귓속을 파고들었다. 처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한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어쩌다 가끔, 나와 깊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시어머니에 대한 서운함, 남편에 대한 원망, 시누이에 대한 미운 감정을 털어놨다.
어머니는 두 번의 유산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첫 번째 유산은 예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지만 두 번째 유산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엇 때문에 유산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머니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지만 당시의 감정을 특정한 단어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아니 물을 수 없었다. 큰 감정이 섞이지 않은 담담한 어투의 이야기만으로도 마음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유산 당시 어머니의 감정을 물을 용기가 나에겐 없었다.
내 마음이 저렇게까지 요동친 건 동생이 되었을 뻔한 존재를 잃었다는 분노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산이라는 사건에 함축된 고단함과 한스러움이 너무도 생생하게 다가왔기에 울렁거리는 마음을 붙잡을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의 말을 그만 멈추고 싶었다.
“할머니는 지금 벌을 받고 계신 거야.”
몇 해 동안 내가 할머니를 찾지 않은 것, 할머니가 편찮으신 것을 나는 ‘벌’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벌’은 어머니의 말을 멈추기 위해 급작스레 입 밖으로 꺼낸 단어였지만 어머니의 담담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릴 때마다 나는 인과응보를 떠올렸다.
할머니는 아버지의 나이만큼이나 오랜 기간 원불교를 믿으셨다. 그리고 그 종교에서 당신의 가족이, 또 자손들이 잘 살아가기를 언제나 빌고 비셨다. 내가 지금껏 무탈하게 살아온 것도 어쩌면 할머니가 수십 년 동안 빌어온 소망의 결과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와 달리 어머니는, 할머니 당신이 구축한 가족 구성원에 들어올 수 없는 이방인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어머니의 이야기가 끝난 뒤 나는 평생 답을 찾기 힘들지 모르는 의문에 사로 잡혔다. 인과응보를 핵심으로 삼는 원불교의 교리 속에서 어머니는 할머니의 인과의 사슬에 걸리지 않는 존재였던 걸까? 할머니는 어머니에게선 어떠한 응보도 발생하지 않으리라 믿으셨던 걸까? 할머니와 나 사이에 어머니라는 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지 못하셨던 걸까?
며칠이 지난 지금 그때를 떠올려 보면, 어머니의 이야기 속엔 시집에 대한 원망보다 할머니에게 가족으로 인정받길 바라는 마음이 더 강하게 담겨 있었던 것 같다. 필요한 존재지만 환영 받지 못하는 이방인이 아니라 따뜻하게 환대 받는 가족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