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더미
의사는 전염병이 돌고 있다고 했다. 치료를 한다고 해도 생존 확률이 절반을 넘지 않을 거라고도 말했다. 게다가 하루 입원비가 10만원인데 그 기간이 일주일을 넘어 열흘이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한 생명의 삶과 죽음을 선택하는 갈림길에서 기회비용을 셈하며 병원 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병원을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끼 고양이는 세상을 떠났다.
고양이를 묻기 위해 흙을 파면서, 나는 우리 집 앞마당에 처음 기거한 고양이의 4대째 자손인지 5대째 자손인지 모를 알록달록한 어미 고양이를 떠올렸다. 어미 고양이는 어미가 아니었던 시절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알록이’라는 이름을 얻은 고양이는 아침마다 어머니를 애타게 불렀고 어머니에게만 애교를 부렸다.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았을 때도 알록이는 여전히 같은 곳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어머니의 손길을 느끼길 바랐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흐른 시간만큼 새끼 고양이들도 하나둘 사라져 갔다. 독립할 시기가 아니었던 만큼 사라진 새끼 고양이들은 어딘가에서 삶을 마쳤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했지만 꽤나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흐르자 알록이 옆에는 겨우 한 마리의 새끼만 남아 있었다. 다른 자식들을 전부 잃은 알록이는 자신의 모든 애정을 하나 남은 새끼에게 쏟아부었다. 새끼도 어미의 사랑을 아는지 귀찮은 티 한번 내지 않고 어미가 하는 대로 따랐다. 하지만 전염병이 돌고 새끼 고양이가 죽어가던 날, 알록이는 구슬프게 울기만 할 뿐 새끼의 곁에 다가가지 않았다. 알록이는 멀리서 안타깝게 울기만 했다.
새끼의 입 주변에 거품이 퍼져나갈 때쯤 파리가 꼬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새끼의 몸에 파리가 들러붙지 않도록 팔을 휘저었지만 떨어져나가는 건 아주 잠깐이었다. 고양이의 숨이 약해질수록 파리가 더 꼬였다. 어머니는 작은 상자를 가져와 이젠 거의 숨을 쉬지 않는 새끼의 몸을 옮겨 담았다. 알록이는 그 모습을 보며 날카롭게 울었다. 전에 들어본 적 없던 소리였다. 새끼의 마지막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상자를 들고 알록이에게 다가갔지만 알록이는 더 크고 날카롭게 울며 도망쳤다. 평소에 어머니를 잘 따르던 알록이는 상자를 들고 있는 어머니의 손길을 거부했다.
땅을 파는 건 어려웠다. 돌이 없는 곳은 나무뿌리가 얽혀 있었고 나무에서 먼 곳은 큰 돌이 많아 파기 힘들었다. 몸집이 작은 새끼였지만 좀더 깊고 넓게 파고 싶었다. 땅을 팠다 다시 덮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서 적절한 크기의 매장지를 만들 수 있었다. 상자에서 꺼낸 새끼 고양이의 몸은 딱딱해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따뜻하고 유연했던 몸이 차갑게 굳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죽음을 맞이한 사체를 매장지에 넣고 돌을 골라낸 흙으로 그 위를 덮었다.
대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자 알록이가 빈 상자를 쳐다보며 울었다. 고양이의 입 밖으로 나온 공기의 파동을 분절된 언어로 의미화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하울링하는 듯한 슬픈 울음소리와 잔뜩 겁먹은 눈빛, 웅크린 자세를 보며 나는 고양이가 품고 있는 감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소중한 존재를 잃은 슬픔은 너나 사람이나 똑같이 느끼는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