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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m Essay Jul 25. 2018

무명

by 초안


어제보다 달이 짧다 

새벽은 옅은 치맛자락처럼 방 안을 훑었다 

맨발은 은색 포물선으로 시선을 구슬렸고 

꼭 들어맞는 유리구두는 시리게 엄포를 놓았다   


지상의 추위에 대하여 아느냐고 누군가 속삭였다 

그녀의 눈꺼풀은 커튼콜을 받은 발레리나의 걸음을 따라 내려앉았다 

나는 여기에 최고의 찬사를 보내며 입을 다문다   


이 아름다움을 뉘와도 나눌 수 없지 않겠느냐  

그대 그 고운 손으로 풍요로움을 보듬어주오   


인기척을 내던 창틀 위로 산 버들이 흐무러졌다 

누구는 아늑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아득하다 말했다   


등을 돌린 그녀의 베갯잇에서 눅은 귓자국을 발견했을 때 

내 귓바퀴는 이불 속에서 부풀어 오르던 중이었다 

고단하게 불어오는 소리는 밑창까지 나달나달했다 

맞닿은 목소리는 기어코 옷가지까지 물들였다   


질긴 산 버들에서 쇳기가 난다 

뭉그러진 솜털은 발림소리를 하며 떨어질 줄 몰랐다 

달의 입김을 걷어내자 당신의 모습이 보였다   


네깟 놈의 손에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들려있다 

참으로 오래 기다린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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